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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차별 혐오/학생인권조례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 이라는 꿈.

by 행성인 2011. 10. 14.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 이라는 꿈.

*9월 8일 열린 서울시교육청 서울학생인권조례초안 공청회에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이른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얼마 전 온갖 역경을 헤치고 주민발의 성공이라는 기적을 이룬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과 함께 제출될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초안에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차별금지내용과 성소수자 학생 보호 내용들이 모두 삭제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이런 식으로 차별금지 사유에서 빠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성소수자들은 2007년 말에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을 제출하는 과정에서 기독교 우파들의 공세에 너무 쉽게 무릎 꿇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번번이 자신의 이름이 차별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명단에서 삭제되는 상황은, 아무리 겪어도 학습효과가 소용없다. 기껏해야 이거 하나 넣자는데 참으로 인색하게 구는구나 싶어서 또 마음이 상한다.


특히, 이번 문제는 청소년과 학생의 인권 문제였다. 청소년은 동성애하고만 얽히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려야 했다. 어떻게 보자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식으로 동성애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려던 시도는 2000년대 초반의 청소년 보호법 상 동성애자 차별조항 삭제운동 때도 그대로 나타났고, 그 이후로도 학교의 이반 검열 문제를 거쳐 최근 영화 <친구사이?>의 청소년 유해 논란에 이르기까지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언제나 청소년은 보호와 통제의 대상이었고, 미완의 존재였다. 그래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갈 곳이 없었다. 비행 청소년과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동의어였던 시절도 있었고 온갖 놀림과 폭력에 노출되기도 했다. 자발적으로 학교를 떠난 이들도 있었다. 학교에서 성소수자는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각자의 생존 방식을 터득하면서 살아나갔다. 그러다가 탈락되기도 했다. 경쟁에서도, 주류에서도 탈락된 이들 중 일부는 해맑은 영정 사진으로 남았다. 청소년 성소수자는 이름을 가진 적이 없다.


조급한 마음으로 학생인권조례초안 공청회 장소로 달려갔다. 퇴근이 늦어서 앞에 진행된 발표 순서가 거의 지나갔지만, 플로어토론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할 수 있었다. 처음 나선 발언자는 강릉에서 왔다는 66세의 퇴직 교사였다. 그녀는 자신이 교직생활 41년의 베테랑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교복 자율화 반대한다. 교복 안 입히면 패션 퍼레이드 된다. 핸드폰 뺏는 것도 못하면 학교가 어떻게 되겠는가. 학생인권조례 절대 만들 필요도 없고 그런 거 만들면 불량학생 양성소가 되고 말 것이다. 인권 이런 것 안 해도 애들은 이미 지 멋대로 하고 있다.”


공청회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일장 연설을 하며 속사포 훈계를 늘어놓은 41년 경력의 퇴직 교사는 ‘아이들에겐 인권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당연하게 하고 있었다. 그것이 진정한 문제다.


뒤이어 청소년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한 청소년이 “자신은 학교에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레즈비언”이라고 얘기했다. 뭐지? 이 헉~! 하는 청중석의 분위기는. 옆을 봤다. CTS 카메라가 와 있었다. 무엇인고하니 기독교TV방송이다. 어째서 이 분들이 서울학생인권조례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걸까? 레즈비언 탈학교 청소년이 학생인권조례를 옹호하니, “역시 불량학생들이나 학생인권을 옹호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무려면 어떠랴. 나는 그녀의 대찬 커밍아웃에 짝짝 박수를 쳤다.


그 때, 공청회에 참석했던 한 동인련 회원이 질문을 했다.


“조례 초안에서 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성소수자가 모두 삭제된 것인가”


이 중요한 질문은 공청회 말미에 “건의로 받아들이겠다”는 동문서답으로 돌아왔다. 플로어 토론이 이어졌다. 40대로 보이는 여성이 조용히 일어났다. 그녀는 중학생 아이 둘을 둔 부모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교복에 대해, 복장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멋도 좀 부리는 게 낫지, 복장 때문에 마찰 빚고 부딪히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오히려 문제는 아이가 학교에서 이런 일로 상처받는 것이다. 존중받고 자란 아이가 존중할 줄도 안다. 그 아이가 자라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할 수 있다. 이 점을 생각해서라도 인권조례가 제대로 제정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녀의 잔잔한 연설은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았다. 인권은 가장 보편적인 권리이다. 그녀는 그저 그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존중받고 자란 사람이 존중하는 방법을 터득한다고 말이다. 다음으로 내 옆에 앉아있던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성이 일어섰다. 그녀는 고등학생이었다.


“(인권조례는) 청소년에게 권리만 주고 책임은 안 주는 거라 위험하다고 한다. 물론 권리와 의무는 함께 가는 것이지만 학생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의무만 있을 뿐이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정작 학생들은 토론해볼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이 문제를 학생들에게 알려야 한다. 학급회의를 통해서, 공론장을 통해서. 그리고 공청회에선 다른 사람을 존중했으면 좋겠다.”


‘맞아. 알려야지. 학생 자치권도 학생인권조례에 포함되어 있는 중요한 권리이지.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야’ 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이어서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한 청소년이 나와서 발언을 시작했다. 그녀는 학생인권이 신장되면 교사 교권이 침해된다는 논리에 대한 반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에서 가장 큰 논란을 빚어왔고,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표적 논리에 대한 반대토론인 셈이다.


“교권은 인권이고, 교사 노동자로서의 권리여야 한다. (학생을 억압하는 것이 교권은 아니라는 말씀!)”


라고 말하자마자, 청중석 뒤편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교사가 어떻게 노동자냐! *&%$^#%!!!!"


헐? 10대의 어린 여자애가 ‘감히’ ‘선생님’께 ‘노동자’운운 하는 게 참을 수 없었던 한 중년 남성의 포효가 내게는 딱 그렇게 들렸다. 그는 여성을, 나이가 적은 사람을, 그리고 노동자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게 교직생활 30년이 넘는 ‘베테랑 선생님’들의 인식 수준이라는 것에 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쨌거나 그는 청중석에서 삿대질을 하며 (반말을 섞어가며) 고함을 쳤고, 발언대에 선 그녀는 떨리지만 강단지게 하고자 하는 말을 계속 했다. 나이주의, 가부장적인 학교, 청소년에게 붙은 미성숙이라는 꼬리표. 하나같이 꼰대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참으로 들어주기 어려운 말들이었으리라. 교사가 노동자라고 하는 이야기에 특히 분개하는 교사가 있는 나라. 학생 위에 교사가 군림하듯이, 자본가가 노동자 위에 군림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라. 그러한 풍경을 극적으로 목격한 것만 같아 속이 쓰렸다.


누군가 또 손을 들었다. 아마 아까 소리 지른 그 교사였던 듯하다. 발언권을 획득한 그가 또 가만히 듣고 있기 힘든 주장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른’의 입장에서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이란 어떤 존재일까? 그렇다면 ‘학생’의 입장에서 저 이야기들은 어떤 기분일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그는 발표자석에 학생 대표로 앉아있는 한 남학생을 지칭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 학생은 학생회장이다. 저런 모범학생만 있다면...... 인권(법)이 없어도 되는 학생은 무수히 많다. 불량 학생의 인권을 주장할 때 교사가 설 땅이 없다. 조례가 만들어지면 애들을 바람직하게 키워야 하는데 교사의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조례가 제정되면 학습 분위기가 저해된다..... 학생이 보호받으려면 교복을 입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흡연을 해서 폐가 썩고 있다. 공부 잘하고 모범생인 학생들에게는 인권조례 필요 없다. 오히려 소수 문제아들이 인권조례를 제정해달라고 하는 거지.”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꼰대였다. 아, 정말 개탄스러웠다. 대한민국에 교사들이 설마 다 이런 건 아니겠지? 이런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가장 무서운 것은 우리 모두 어느새 청소년을 모범생-일반학생-문제아로 구분 짓고 있다는 것이다. 이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모범생들은 어른들의 칭찬을 받는 쪽으로 행동할 수 있겠지만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인권(법) 없이도 살 사람’의 아이콘이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정말 모범생에 인권이 필요 없을까? 그 다음은 일반학생. 일반학생은 존재감이 없다. 그냥 관리와 통제가 손쉬운 학생들이라고 생각되는 것 같다. 마치 이 사회의 노동자들 같다. 일반학생의 반대편에 ‘문제아’가 있다. ‘문제아’들은 그 교사의 말을 따르자면 인권을 주장하는 애들이다. 심지어 학교에서 집회를 여는 것조차 그가 보기에는 엄청난 문제 행동이다.


학교는, 이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사회의 축소판이다.


나는 모범생 축에 속하는 학생이었다. 부모님 속을 썩이지 않았고 선생님들에게 자주 혼나지 않았고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학급 임원도 하며 교복을 한 번도 변형하지 않은 모범생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정말 하고 싶어서 한 것들이 별로 없다. 혼자 독서실에 틀어박혀 공부 대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어른들이 보기에 나는 매일 독서실에 늦게 까지 공부하는 모범생이었다. 별보기를 좋아해서 천체관측서클에 들어간 이후로 관측여행을 가게 되면 밤에 맥주도 먹고 다른 학교 남자아이들과 미팅도 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걸 몰랐다. 앞머리에 파마를 하고 학교에 갈 때는 들키지 않으려고 드라이기로 쫙쫙 펴고 갔다. 나는 다시 그 때를 살라면 적어도 더 하고 싶은 것 하며 살고 싶다. ‘인권’이 없어도 되는 모범학생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


그 자리에서 발언한 많은 어른 교사들이 이야기하듯이, 학생의 지식은 그리 ‘얄팍’하지 않았다. 한 중학생은 “헌법에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고 되어있다”고 했다. 학생도 국민의 일부인데 어째서 교육이라는 이유로 권리에 제약을 받아야 하느냐고 반론했다. 덧붙여 인권은 자격이나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인권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얄팍한가?


내가 어쩔 수 없이 ‘어른’이라는 사실은 얼마나 경계해야 할 것인가. 청소년기는 누구나 겪지만 우리는 그 때의 기억을 자주 잊곤 한다. ‘어른’으로써 ‘어른’의 생각을 가지고 ‘아직 어른이 안 된 아이들’을 평가하고 재단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어른의 생각’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의 생각이라는 것 또한 얼마나 위험한가. 나는 책임감을 느꼈다.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모든 일에 쉽게 유혹당하며 통제받아야 한다는 그 편견이 나에게도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그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토론이 너무 격렬해진 나머지, 사회자는 끊임없이 “워~워~”를 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학생생활지도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이 정리 발언을 하였다.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 때부터 소수자들과 같은 편에 서온 그는, 이번 서울학생인권조례 초안에서만큼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모두 삭제해버리는 안타까운 결정을 해버리고 말았다. 물론 최근 자문위원회는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을 복구시켰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는 고등학생 딸의 아버지로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울고 있는 딸을 생각하면 인권조례가 필요하다.”


이 발언은 이후로도 동인련 내에서도 가끔 회자되곤 했다. 굳이 말하자면 성소수자 자녀들은 더욱 많이 울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건 정말 사실이다. 한국은 그리 알려져 있는 편이 아니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에 대한 적대와 폭력 때문에 더 많이 죽고, 더 많이 피해를 입고, 더 많이 울고 있다. 울고 있는 순으로 따지자면 청소년 성소수자라는 이름은 학생인권조례에서 삭제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 편으로 좀 더 씁쓸했다. 음. 어째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입장이, 가족의 입장이 학생인권조례에서도 그렇게나 강력한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의 입장에서 자신의 자녀들이 인권을 존중받으며 학교생활을 하길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 절실한 문제다. 하지만 나같이 자녀도 없고 결혼 안한 성소수자도 학생인권조례를 열렬히 지지하고 청소년과 학생들이 자신의 인권을 지킬 수 있기를 누구보다 바란다. 사실 그렇게 보자면, 단지 어떤 관계인가를 넘어, 우리 모두는 하나의 인간으로 한 인간의 권리를 옹호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면서 위계도 넘어서는 것 아닐까?


공청회가 끝나고 우리는 달궈진 얼굴을 바라보며 저녁 노을 진 초가을 거리를 함께 걸어갔다. 정말이지 귀를 씻어야 할 정도로 불편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야 했던 자리였지만, 동시에 어떤 희망도 발견한 듯해서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현실에 똑바로 직면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둘레둘레 진심을 외면하며 문제 일으키지 않는 순한 학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버린 내 모습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세상은 아직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일구어가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희망의 측면이다.


근 십년 전에 성소수자 운동의 최대 이슈는 ‘청소년 보호법’이었다. 청소년 보호를 빌미로 동성애 차별 조항을 담은 이 법을 바꾸기 위해 싸웠고, 그러다가 한 명의 청소년 동성애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때에도 세상은 여전한 것 같았다. 시간이 좀 더 흘러, 학교들이 이반 검열로 떠들썩했고 동성애를 하면 벌점을 받고 처벌을 받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문제가 정말 중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운동을 만들어나간다는 것은 선뜻 상상되지 않았다. 나의 인식 속에서도 청소년 성소수자는 피해자에 불과했었나 보다. 그리고 이제, 학생인권조례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모임을 하면 십 수 명씩 모여 앉아 대책을 이야기하고 활동 계획을 짜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발언하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물론 이 곳 저 곳에서 만나 자긍심을 이야기하고 서로 고민도 들어주며 어깨도 토닥이고, 때로는 머뭇거리며 엽서를 돌리거나 서명을 받기도 했던 그 역사들이 쌓여서, 이제 드디어 무지개 봄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서울학생인권조례를 제대로 만들기 위한 이 움직임들이 더욱 소중하다.
지금 이 순간은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 이라는 ‘꿈’이 움트는 순간들로 기억될 것이다.


이경_ 동성애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