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웠던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트랜스젠더들과의 만남
8월25일은 제10차 아시아태평양 에이즈대회 커뮤니티포럼이 대규모로 개최된 날이다. 청소년, HIV감염인, LGBT, 성노동자, 마약사용자, 종교, 여성, 이주민 등 다양한 주제의 포럼이 행사장 곳곳에서 열렸고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들도 자유롭게 관심있는 주제에 참여했다. LGBT포럼 오후 분과토론 중 하나가 ‘Transgender Health’였고 정욜과 오리는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토론에 참여하였다. 다음은 이 토론에서 오간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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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활동가들이 모였는데, 트랜스젠더가 생각보다 많았다. 진행하는 분부터 자신을 성노동자이자 트랜스젠더라고 소개했다. 시작하기 전에 용어부터 정리하는 게 좋겠다며 각 나라에서 트랜스젠더를 칭하는 말을 소개했다. 15명 정도 되는 나라마다 모두 용어가 따로 있었다. 기억나는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faafafini파파피니(사모아제도) facafine파카피네(니우에섬) Maknai막냐(말레이시아) fakaleiti파카레이티(통가제도) Vakasalewalewa바카사레와레와(피지) Hijra히즈라(인도,파키스탄) 등 매우 흥미롭게 들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어서 영어스펠링을 그대로 불러주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쩌면 일부 알파벳이 틀렸을 수도 있다. 현지 용어가 있다는 건 서구의 용어와 개념이 들어오기 전부터 그 문화에 고유의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에는 트랜스젠더를 칭하는 고유의 용어가 따로 없다니 다들 놀라워했다. 어쩌면 한국도 우리가 잘 모르는 용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소개를 할 때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를 몇 분이 이야기해주셨다. 어떤 분은 자신의 sister가 성노동자인데 입국을 거부당해서 올 수 없었기에, 자신이 대신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전해주려고 여기에 참가했다고 했다. 다른 분은 출입국 심사하는 데서 자신의 여권 성별 칸에 줄이 그어져 있는 걸 보고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난소와 정소가 다 있는 것이냐는 등의 성기형태를 묻는 짓을 해서, “그럼 보여줄까?” 했더니 그러지는 말라고 하더란다. 결국 한 30분을 잡아 세워두고는 나중에 자동차 면허증에 여성으로 표기된 것을 보고서야 보내주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못 왔을 거라며 분노를 토했다. 또 다른 분은 비행기를 오래 타고 오느라 화장을 못해서 얼굴이 엉망인 상태로 출입국심사를 받는데, 여권을 보고 자기를 한참 쳐다보길래, “무슨 문제 있냐?”고 쏘아줬더니, 아니라면서 그냥 통과시켜 줬다고 한다.
각국의 상황은 너무나 다양했다. 네팔은 최근 제3의 성이 인정되었고 스리랑카는 주민등록에서 성별을 바꾸는데 수술이 필요 없고 단지 외모를 보고 판단한다고 했다. 인도에서 오신 활동가는 자신의 지역에서는 인구조사를 할 때 남성과 여성 외에 자신들을 위한 칸이 따로 있다고 했다. 이것은 히즈라들이 운동을 통해 만들어냈다며 적극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히즈라는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경제적 기반을 요구하면서, 히즈라에게 일정 비율 할당되는 직업도 따로 만들어냈다고 한다. 반면에 트랜스젠더 조직 자체가 없는 나라들도 있었다.
트랜스젠더 건강이 주제여서 이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왔는데, 각국의 상황이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했다. 대체로 편견과 낙인으로 병원을 이용하기 힘들었다. 병원을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그만큼 편견과 낙인은 별로 없다는 것 같다), 트랜스젠더를 위한 수술은 힘들다는 곳도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13개주에 HIV를 다루는 특별병원이 있는데, 트랜스젠더 환자들에 대한 민감도가 낮아 잘 찾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트랜스젠더들의 의료접근권에 대한 관심이 없는 현실을 비판하였다. 호르몬치료와 ARV(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도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누구에 의해 트랜스젠더 프로그램이 운영되는가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제레미 활동가(PD파운데이션 소속)는 막냐Maknai들이 대부분 거리에서 성 노동을 하기 때문에 HIV/AIDS에 노출될 위험이 많다고 했다. 공동체가 별도로 있고 자신이 활동하는 모임 내부에 막냐를 지지하는 팀이 있다고 했고 막냐가 막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했다.
트랜스젠더가 MSM(남성과 섹스하는 남성) 하위 범주로 있느냐는 질문에도 다양한 답이 나왔다. 주로 국제적인 기금을 받아 활동하는 것 같았다. 에이즈 관련 기금은 MSM으로 받기 쉽기 때문에 MSM으로 기금을 받아 트랜스젠더활동가가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활동을 하기도 하고, MSM이 주도적으로 운동을 하고 트랜스젠더의 운동은 잘 보이지 않기도 하고. 어느 지역에서는 MSM과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이 그리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지도 않다고 한다.
이번 ICAAP에서도 그렇지만 국제적인 기관들에서는 여전히 트랜스젠더들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그 내부에서부터 나올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그곳에 트랜스젠더가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들은 이를 ‘우산Umbrella’이라고 표현했다. 즉 MSM에 가려서 트랜스젠더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HIV/AIDS 기금을 집행하거나 활동하는데 있어서도 MSM/TG로 표현되기 때문에 리서치, 인권옹호활동, 정책변화, 건강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트랜스젠더들의 독립적인 활동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리_ 정욜,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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