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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에세이

'그래서 뭐 어쩌라고'

by 행성인 2011. 12. 21.


크리스마스가 벌써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12월3일 2시30분, 시청 앞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점등식을 위한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그리고 대한문 앞에서는 어김없이 수문장 교대 의식이 열렸고. 광화문 부터 시청까지는 경찰의 차벽이 견고하게 세워지고 있다.) 



크리스마스 하니 생각나는 이야기 하나.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에 캐럴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팝
송이 영국의 팝 듀오인 Wham!이 부른 Last christmas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 아일랜드를 제외한 그 어느 나라에서도 1위를 차지해본적은 없지만 발표 이후 25년이 넘게 각종 차트에서 끈질기게 그 이름을 올리고, 크리스마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팝송. 지금 들어도 너무 좋은 이 노래를 쓰고 프로듀스했고, 미치도록 섹시한 목소리로 부른 조지 마이클이 꽤 널리 알려진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 



어젯밤, 친구와 함께 양꼬치를 철근처럼 씹고 쏘주를 마치 찬물처럼 벌컥벌컥 들이키며 서로를 맞디스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요즘 한창 여기저기 깔때기를 들이대고 있는 정봉주 전 의원 따위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조지 마이클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기도회가 열렸다는 얘기가 나왔다.



사적 이익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가카의 치세 4년차를 맞아 어지간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안하는 나로서도 이 쯤 되면 한판 붙어보자는
얘기인데 싶어, 살짝 구글링해보니. 어라. 이거 진짜다.



현재 조지 마이클은 심각한 폐렴에 걸려 투어를 모조리 취소하고 생사기로에 놓여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제발 그가 살아나길. 너무 많은영웅을 잃어버렸어. 젠장) 그런데 CFAMA라는 듣보잡 기독교단체에서 그가 죽어버리길 바라는 기도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트위터에서 엄청난 악플을 달아대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http://www.georgemichael.com/gallery/


"조지 마이클이 죽는다면, 그건 새로운 반-sodomy(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원문으로 쓴 이 단어는 성서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얘기인데, 타락하고 퇴폐적이고 어쩌구저쩌구, 어쨌든 '졸라 나쁜' 뜻이다) 광고에 가장 적당한 시점이 될거야. 이런 생활스타일은 확실히 위험해"



"그는 악마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했고 반드시 '적당한' 죽음을 맞아야해"



"그는 동성애를 퍼트리고 이것을 정상적인걸로 받아들여지도록 노력하고 있어. 이건 sodomy와 에이즈를 퍼뜨리는 일이지"



물론, 이게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의 단순한 악플이라고 치부해도 된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트윗을 보면서 소위 말하는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두려움이 생각보다 훨씬 깊고 또 견고하구나 싶어서 섬뜩했다. 생각이 다른 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욕하고 심지어 죽어버리라고 저주하는 사람들. 



이미 오래전부터 게이라는 단어가 모욕적인 욕으로 쓰이고, 단지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폭행당하고 살해당하는 사람들의 수도 많다. 노동
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음지에 숨어있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박해받는 그들이, 이차대전 때 단지 유태인이고 집시이고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당한 사람들과 다를게 뭐람.



근데 진짜 무서운게 뭐냐면, 그 혐오감이란게 애초에 타고나는게 아니라 공적이든 사적이든 그가 속해있는 집단을 통해 학습된 감정이라
는 점이다. 선을 긋고 편을 나누어 희생양을 만들고 물어 뜯는걸 너무나 당연한 일인 양 교육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는 동성애가 무슨 큰 죄나 되는 줄 알고 있었다니깐.  



나는 동성애자인 오랜 친구를 두고 있는 이성애자이다. 그 친구가 커밍아웃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였는데, 사실 그 녀석이 동성애자라서 그 녀석과 나와의 관계가 딱히 변하지는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지 않는가. 물론 동성애자 친구가 내 절친이라 해서 내 정체성을 버리거나 의심한 적도 없다. 



그 후 그 녀석을 통해서 알게된 많은 동성애자 친구들은 나와 취향이 조금 다를 뿐 어디서나 만나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맘에 드는 친구는 오랫동안 연락하고 아껴주고 있으며, 맘에 안드는 친구와는 싸우거나 연락을 끊기도 했다. 이성애자인 사람들을 만나는것과 하나도 다를게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은 정말 편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거다. 아니, 더 명확하게 얘기하자면 굳이 이성애자니 동성애자니 나눌 필요가 없더라니깐.



나는 사람들이 좀 서로를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쓸데없는 오지랖은 정중하게 사양한다. 편을 갈라 소수자를 탄압하고 공격하는 교육도 이제는 좀 그만해줬으면 좋겠다. 누가 누굴 만나든 누가 뭘 하든 뭔 상관이래. 



그리고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그런 관념적인 건 나중에 생각하고, 모든 개인이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 살고 다른 개인의 그 노력을 인정
하는 세상이 좀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의 교육이 적어도 모든 개인이 스스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양심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그마한 소망 하나. 그 친구녀석이 나를 좀 자주 만나줬으면 좋겠다. 워낙 바쁜 녀석이라 얼굴 보기가 너무 힘들거든. 그 녀석과 양꼬치를 철근같이 씹어먹으며, 쏘주를 찬물처럼 벌컥벌컥 들이키며 붕어라느니 꼴통이라느니 하며 유쾌하게 서로를 디스하고 싶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손발이 오글오글거리는 말 한마디. 그 오랜 시간동안 내 친구가 되어 줘서 고마워.



ps. 위에 언급한 그 트위터 아이디는 @GodsWordIsLaw 이다. 혹시나 해서.



kei_ 동성애자인권연대 후원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