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동성애자인권연대)


두 번째 만나는 시간이어서 약간 걱정했어요. 지난 프로그램이 별로여서 안 오면 어쩌지? 새로 온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첫 번째 시간처럼 15여명 정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시작 프로그램은 “내가 처음 만난 여성주의/페미니즘은?”이었어요. 각자 기억을 더듬었죠. 그 만남을 드러내는 단어나 문장을 종이에 적어서 한 명씩 이야기를 했어요. 모두 달랐어요. 누구는 “여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가 그게 뭐니?” 같은 말들을 듣고서는 여성주의를 떠올렸고, 누구는 엄마가 가사노동을 다하는데도 아무런 경제적인 권력이 없다는 걸 보고 여성주의 책을 찾아봤어요. 또 다른 누구는 “요즘은 여자를 배려해 줘야 장가간다고. 짐은 당연히 남자가 드는 거라는” 소리를 여성주의자에게 들었다고 했고, 누구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진 여성주의자를 만났지요. 또 다른 누구는 책을 통해서 여성주의를 만나고, 신문의 칼럼, 강의를 통해서 만나기도 했고요.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여성주의도 엿볼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잠깐 쉬고 본격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세 가지 주제를 먼저 소개하고 이에 대한 의문이나 생각들을 포스트잇에 써서 주제별로 모아 붙였어요. 그리고서는 하나씩 풀어가면서 이야기를 진행했어요.

 

첫 번째 주제는 “부치와 팸”이었어요. 부치와 팸은 뭘까? 단순히 스타일이라거나, 섹스 포지션이라거나, 복합적인 요소들이 함께 있다거나, 부치와 팸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많은 이야기들 사이에서 쥬리가 개인적인 고민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보았어요.


부치가 뭔지를 물어보는 질문에 시작부터 막혔어요. 외형적인 조건을 이야기하다 이리저리 설명하다가 요즘은 ‘긴머부(긴머리 부치)’가 유행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지요.


부치와 팸으로 나뉘는 게 나쁜 성별 이분법(남자역할, 여자역할)을 따라하는 것 같다는 생각들이 있는 것 같아요. 부치 역할 팸 역할을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지만 누구는 “부치가 이렇게 해야 돼”가 아니라 그냥 “내가 해서 좋은 것이 부치”라고 했지요.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동성애건 이성애건 “남자도 남자를 따라하고, 여자도 여자를 따라하”는, 두 가지 성역할이 대세인 세상에서, 남/녀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그러면서 동성애자 이성애자 이런 구분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신체적 페티쉬로 개개인의 세세한 취향을 표현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도 나왔지요. 부치애자도 있을 수 있고, 여성애자 남성애자라는 구분 방식도 있을 수 있고. 지금의 여성/남성 이분법을 흩트리자는 거지요.


총여학생회 대표를 나간 여성이 유세할 때 치마를 입었다고 여성주의 교수가 비판한 적이 있대요. 여성의 고정관념을 유지시킨다는 거겠지요. 그것이 강요가 되고, 거기에 지나치게 많은 정치적 의미가 부여될 때 부딪힘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드랙이 성소수자 운동에서 정치적 의미를 가지지만, 동시에 모두에게 드랙할 것을 권장할 건 아니잖아요.



두 번째 주제는 “게이문화의 여성비하적인 부분”이었어요. 게이들이 여성적이라고 여겨지고, 놀림 받으면서도 스스로 가지고 노는 문화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그와 동시에 여성적인 게이들, “끼순이”를 욕하거나 배척하는 건 또 뭘까,란 고민들을 형태가 풀어 놓았지요.


첫 번째 주제에서 나왔던 이야기들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우리의 문화도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인데 개인의 취향, 기호로만 봐도 될 건가?라는 의문이 있었어요. 게이들이 “이년 저년”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자신에게 하는 것만 아니면 기분 나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라도 완전히 개인의 문제이지만은 않다는 의견도 있었지요. 대부분의 욕이 소수자를 비하하는 용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거지요.


사회에서 강요되는 남성성을 게이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여성성을 분출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여성비하적인 것들을 끌어와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자기비하를 극복하는 놀이로 만드는 것 같아요. 마치 여성들 사이에서 사용하는듯한 느낌으로 “미친년”이 사용되는 것이죠. 그런 맥락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어떤 단어를 쓰지 말자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맥락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는 계속 부딪힘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특히나 이 사회에서 남성의 입에서 나오는 그 단어들이 가지는 의미들을 생각해보면요. 그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쓰는 것은 아무문제가 없는 걸까? 라는 고민도 들고요.

 

세 번째 주제는 “여자방, 남자방 나누다가 생겨난 고민”들 이었어요.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캠프에 갔는데 공동샤워실을 이용해 집단반발을 받았던 이야기, (겉에서 보기에는 남성으로 보이는) 수술하지 않는 트랜스젠더 여성과 같은 방에서 자는 것이 불편했던 경험에서 생겨난 고민을 이경이 풀어보았어요.


여자, 남자 구분이 너무 문제가 많다. 남녀 구분 없는 1인 화장실, 더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하는 방 나누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단 이야기도.


그러다가 방을 어떤 식으로 나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의 문제라는 이야기도 나왔지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놀러가서 방을 나누지도 성역할을 정하지도 않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같은 정체성 사이에서도 성폭력은 일어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있는 규칙들과 서로간의 합의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가 나왔지요.


여기에 여성이 ‘남성의 형상’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회이기에 이 지점을 놓고 갈 수는 없다. 여성이 남성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있었지요.


원래 마무리로 이반지하의 ‘오염’을 듣고 싶었어요. 구할 수가 없어서 못 들었지만. 답이 딱 떨어지는 문제들은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우리가 이야기한 세 가지 주제들에 대해서요. 좀 더 서로에 대해 알고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서로를 더 오염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서 ‘오염’을 같이 듣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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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경
    2012.05.09 11:50 신고 [Edit/Del] [Reply]
    우리지금만나는 딱 떨어지는 답 같은 건 한번도 준적이 없다. 그런데 재밌더라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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