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동성애자인권연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동성애, 양성애, 성전환, 간성, 무성애 등등……. 이런 성적 다양성을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어떻게 수용했을까? 동성애 욕망과 젠더 전환은 기독교를 배우지 못한 아시아 민족들의 미개함이라고 본 백인 연구자들과 원주민들의 성적 다양성 수용을 진지하게 고찰한 혁명가의 저서들을 통해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세계관을 간접적으로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 원주민들 사이에서 동성 간 애정 표현이나 성별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행동은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이런 사람들은 원주민들의 일상 생활, 특히 각종 의식을 치를 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이 지역에서 동성애, 성전환을 비롯한 섹슈얼리티 전반은 정신적,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해석돼 왔다. 남성과 여성의 중간 젠더를 가진 사람들을 가리켜 ‘두 개의 영혼(투스피릿, Two-Spirit)’이라고 부르는 북아메리카 지역의 토착민들과 유사하게 러시아 동부 지역의 원주민들도(이들은 역사적으로 아메리카 지역 토착민들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섹슈얼리티를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도 긴밀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 때문에 다양한 성 정체성은 샤머니즘 의식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고, 성소수자들은 원주민 사회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처음으로 시베리아 지역을 탐험하며 여러 민족들의 생활상을 조사한 식물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스테판 크라셰닌니코프(Степан Крашенинников, 1711~1755)는 1730~1740년대에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을 여행하면서 원주민들의 성전환 문화를 발견했다. 그는 1755년에 출판한 《캄차카 기술》이란 책에서 이렇게 썼다. “이른바 ‘코옉추치’란 사람들은 여자 옷을 입고 다니고, 여자들이 하는 일을 한다.” 이 ‘코옉추치’들은 남성들의 첩이 되기도 했는데, 크라셰닌니코프에 따르면 “(놀랍게도) 여자들은 질투하지도 않는다. 한 남자에게 부인이 둘이나 셋 있어도 자기들끼리 잘 지내며, 거기에 많은 남자들은 첩 대신 ‘코옉추치’들을 들인다.”
스테판 크라셰닌니코프(1711~1755)
캄차카 반도엔 ‘코옉추치’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캄차달족(캄차카 지방에 거주) 사람들은 남자가 바느질을 하면 ‘코옉추치’라고 의심하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크라셰닌니코프에 따르면 “캄차달족 사람들은 그들을 위대한 예언자로 간주했기 때문에 그들의 명령은 촌장조차 어길 수 없었고, 짐승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크라셰닌니코프는 캄차달족뿐 아니라 쿠릴 열도 원주민들과 코랴크인들(캄차카 지방 북쪽에 주로 거주) 사이에서도 ‘코옉추치’들을 만났다. 그러나 캄차달족과 달리 코랴크인들은 ‘코옉추치’들을 존경하지 않고 멸시했다고 크라셰닌니코프가 기록했다.
크라셰닌니코프와 동시대를 살았던 지질학자, 자연 과학자, 의사인 게오르크 빌헬름 슈텔러(Georg Wilhelm Steller, 1709~1746)도 비슷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비투스 베링(Vitus Bering)의 탐험단 일원으로 1737~1742년 캄차카를 여행했다. 그가 낸 책 제목도 《캄차카 기술》인데, 이 책에서 그는 “캄차카에선 여자들끼리 음핵으로 음란한 행위를 한다”, “남자는 부인들뿐 아니라 소년들을 ‘뒤에서’ 범하는데, 부인들은 질투하지도 않는다”고 적었다. 게오르크 슈텔러는 또 이런 기록을 남겼다. “그런 소년들은 여자 옷을 입어야 했고, 여자들 사이에서 그들의 일을 함께 수행하며, 여자처럼 행동했다. 예전에는 거의 모든 남자가 소년을 데리고 살 정도로 이 풍습이 널리 퍼졌다. 여자들은 매우 만족스러워했고, 그런 소년들과 매우 친하게 지냈다. 이런 남색 행위는 기독교를 수용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그들을 진짜 여자들과 구분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내가 캄차카 반도에 머무를 때 그런 비자연적인 죄악을 저지르는 음란한 이들을 많이 만났다.”
수십 년이 지난 18세기 말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이르쿠츠크 총독 아담 브릴(Адам Бриль)이 1770년 축치인(축치 반도에 거주)과 코랴크인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남자로 태어난 자들이 요술을 부려 여자 모습으로 변신하더니 자기들끼리 남색 행위를 하고, 결혼까지 한다.”
1820년대에 이 지역을 방문한 페르디난트 브란겔(Фердинанд Петрович Врангель, 1796~1870) 장군도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자유로운 동성애에 대한 글을 남겼다. 그는 1841년에 출판된 《1820~1824년 시베리아 북부 해안과 북극해 기행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발견한 아주 기묘한 현상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바로 축치인 남자들끼리 행하는 남색이 아주 일상적일 뿐 아니라, 그들은 이것을 조금도 숨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우리가 왜 불편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떳떳하다고 생각했고, 각자 자기 취향을 따랐다. 이런 비자연적인 정욕이 어떻게 이 민족에게 뿌리박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 민족 여자들은 부족할 것이 없으며, 야쿠트족(야쿠티아에 거주)이나 유카기르인(동시베리아에 거주)처럼 혼인 전 신랑이 신부 집에 돈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러시아 극동 지역의 지도
표도르 리트케(Фёдор Петрович Литке, 1797~1882) 장군도 축치인들의 동성애, 성전환 문화에 대해 썼다. 그는 자신의 저서 《1821~1824년 4차례에 걸친 북극해 여행》에서 “그의 가족 중에 우리 눈에 띈 자는 얼굴은 남자인데, 아주 깨끗한 여자 옷을 입고 있던 사람이다. 아직 기독교를 배우지 못한 모든 아시아 민족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야쿠티아에는 두 가지 부류의 샤먼이 존재했는데, 창조를 담당하는 백(白)의 샤먼과 파괴를 담당하는 흑(黑)의 샤먼이 있었다. 후자는 여자처럼 행동했으며, 머리도 여자처럼 길렀고, 웃옷에는 가슴을 묘사한 원 모양을 그려 넣었다. (참조: V. A. 비류코프의 《문화의 일부로서의 성전환 현상과 사회 통합》)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 원주민들의 성적 다양성 수용을 진지하게 고찰한 것은 혁명가이자 뛰어난 인류학자였던 블라디미르 보고라스(Владимир Германович Богораз, 1865~1936)와 블라디미르 요헬손(Владимир Ильич Иохельсон, 1855~1937)이었다. 보고라스는 축치인들에 대해, 요헬손은 코랴크인들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 보고라스는 축치인들의 성전환에 대해 많은 글을 남겼다. 그는 남자가 여자로 변하는 현상과 그 반대로 여자가 남자로 변하는 현상을 모두 발견할 수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로 변하는 경우는 좀 더 드물어서 보고라스 스스로는 본 적이 없으며, 축치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알고 있었다. 보고라스의 기록에 의하면, 성전환은 주로 성적으로 성숙하는 시기에 항상 ‘켈레’라고 하는 영혼의 명령에 따라 행해진다.
블라디미르 보고라스의 연구에 의하면, 이 지역에서 성별 전환은 4단계 과정을 거쳤다. 1) 머리 모양 바꾸기, 2) 옷 바꾸기, 3) 습관, 의무, 성격 바꾸기, 4) 자신이 태어날 때 가졌던 성별과 같은 배우자를 얻는 것으로 끝나는 완전한 성전환. 이는 보고라스가 낸 《축치인들》에 소개되는 것이며, 이와 유사한 내용이 191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판된 N. F. 칼린니코프의 《우리나라 극동북지방》에도 나온다.
여자로 성별을 전환하게 된 청년은 모든 남자 일을 그만두고 여자 일을 배웠다. 총과 창을 버렸고, 더 이상 순록을 길들이지 않았고, 바다표범을 사냥하지 않았다. 대신 바느질을 하고, 가죽을 벗기는 일을 했다. 그들은 새로운 성별에 부여된 임무를 아주 빨리 배웠는데, 이는 “항상 영혼이 돕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졌다. 축치어는 같은 단어라도 남성과 여성이 다른 발음을 내는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성별을 전환하게 되면 새로운 성별에 맞추어 발음도 바꾸었다. 몸도 바뀌었는데, 외모가 바뀌지 않는다면 적어도 능력과 성격이 바뀌었다. 호전적이고 거친 성격 대신 수다스러워지고 갓난아이를 아주 좋아하게 됐다.
보고라스는 성전환자들의 연애, 결혼에 대한 기록도 남겼는데, 그에 의하면 성전환자들은 “영혼의 도움으로” 남성들의 사랑을 아주 쉽게 쟁취했고,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들의 마음을 쉽게 정복했으며, 그중에 애인을, 나중에는 남편까지 골랐다고 한다. 이들의 결혼식은 축치인들의 전통에 따라 치러졌고, 결혼 이후 이들의 삶은 다른 일반인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런 커플은 그 관계가 매우 끈끈하여 보통 죽을 때까지 연인 관계가 지속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성별을 전환하고 나서도 예전의 이름을 그대로 썼다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보고라스가 만난 성전환자 중 한 명만이 이름을 아몰렌에서 케르아몰렌으로 바꿨는데, 이 새 이름은 ‘여자처럼 입은 아몰렌’이란 뜻이다. (아몰렌은 남자 이름이다.)
성전환자들을 비웃는 이웃들도 있었는데, 대놓고 그런 말을 하지는 못했고, 귓속말로 소곤거려야 했다. 사람들은 평범한 샤먼들보다 성전환 샤먼들을 훨씬 더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성전환자에게는 인간 남편 외에도 초자연적 보호자(영혼 남편)가 있다고 여겨졌고, 이 가정의 우두머리는 인간 남편이 아니라 성전환자의 영혼 남편이었다. 따라서 이런 가정에서는 ‘아내’의 목소리가 더 컸고, 남편은 종종 자신의 이름에 아내의 이름까지 덧붙이곤 했다. 예를 들면, 성전환자와 결혼한 야티르긴은 틀류비-야티르긴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는 ‘틀류비야의 남편 야티르긴’이란 뜻이다.
남자에서 여자로 성별을 바꾸는 것과 반대로 여자에서 남자로 성별을 바꾸는 것도 가능했지만, 이런 경우는 좀 더 드물었다고 블라디미르 보고라스는 전한다. 이는 임신과 출산이 샤만으로서의 힘을 빼앗는다는 축치인들의 관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라스는 생각했다. 뛰어난 샤먼이 되기 위해 ‘남자 같은’ 여자들은 출산을 거부해야 했지만, 이 길을 택한 자는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보고라스는 여자에서 남자로 성별을 바꾼 한 축치인을 소개했는데, 자녀를 셋 둔 그녀는 “남자로 변하라는 영혼의 주문을 받아” 머리를 자르고, 남자 옷을 입고, 남성들이 내는 발음을 냈으며, 창과 총을 다루는 법을 매우 빠르게 터득했다고 한다. 그는 바로 젊은 여성을 만났고, 그 여성은 기꺼이 아내가 되겠다고 했다. 이 커플은 둘 사이에 아이를 갖기 원했기 때문에 이웃의 젊은 청년과 ‘임시 결혼’을 맺었고, 실제로 3년 사이에 아들 2명을 낳았다. 추코트 지역의 임시 결혼 관습에 따라 이 아이들은 성전환자의 합법적 자녀로 인정되었다. 어머니로서 아이를 낳았던 그는 이제 아버지가 된 것이다. (참조: 블라디미르 보고라스의 《축치인들》)
보고라스의 저서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기록은 성전환자들과 여성들의 다른 사회적 위치다. 원주민 사회에서 여성들의 위치는 결코 높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자가 남편이나 아버지의 노예였다거나 아무런 권리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여자는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고 살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족에서 우두머리 자리는 아내가 아닌 남편의 몫이었다. 이와 달리 예언 능력이 뛰어나다고 간주된 성전환자는 일상 문제를 해결할 때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다. 축치인들의 사회에서 성전환자의 결정이 최우선시되었다고 보고라스는 기록해 놓았다.
위에서 언급된 바 있는 블라디미르 요헬손은 코랴크인들에 대해 기록을 남겼는데, 그는 당시 코랴크인들이 축치인들과 달리 성별 전환 의식을 더 이상 치르지 않는다고 썼다. 코랴크인들의 성별 전환 의식은 전설과 신화를 통해서만 구전되고 있었기 때문에 요헬손은 직접 그런 의식을 보지 못했다. 코랴크인들의 성별 전환에서 특징적인 것은, 성별을 바꾸어도 이름은 바꾸지 않는 야쿠트족과 달리 이들은 이름까지 바꾸었다는 것이다. (참조: 블라디미르 요헬손의 《코랴크인들》)
폴란드 출신의 인류학자로 시베리아 토착민들을 연구한 마리아 안토니나 차플리츠카(Maria Antonina Czaplicka, 1884~1921)는 1914년 출판한 《토착민의 시베리아》에서 많은 샤먼들이 전통적인 남성상에서 벗어나 여자 옷을 입고, 여자들의 행동을 따라하고,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다고 적었다. 또 차플리츠카는 시베리아 토착민들의 복잡한 섹슈얼리티를 이렇게 묘사했다. “특히 아주 위대한 샤먼들의 성별 전환에 관한 문제는 신체적인 것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그들 중 몇몇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동성의 배우자와 함께 비밀리에 이성 파트너와 관계를 맺기도 하는데, 일부는 아예 성별 구분이 없는 사람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샤먼은 성별 구분이 없을 수도, 금욕주의자일 수도, 동성애를 느낄 수도 있으나, 일반적인 정상인일 수도 있다.” 이는 차플리츠카가 시베리아 토착민들의 성적 다양성을 설명하려 하는 부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기술 역시 이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저서에서 또 흥미로운 부분은 동성애가 수반되지 않는 샤머니즘도 존재했고, 샤머니즘이 수반되지 않는 동성애도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즉 동성애가 시베리아 토착민 사회의 종교적, 신비주의적 영역 밖에서도 수용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차플리츠카는 성전환과 샤머니즘이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은 샤머니즘이 원래 여성들의 분야였기 때문이라는 블라디미르 트로샨스키의 가설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여성의 몸으로 태어난 샤먼들이 남자로 성별을 바꾼 사실을 설명해 주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마조리 바즐러(Marjorie Mandelstam Balzer)에 따르면,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성전환은 토템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많은 성전환 샤먼들이 신성한 동물들 영혼의 도움을 받아 성별을 바꾸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야쿠트족의 믿음에 의하면, 가장 위대한 샤먼들은 3년이라는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바로 이때 이들은 여성의 모습을 띠게 되고, 신비로운 잉태를 하게 되는데, 까마귀, 곰, 늑대 같은 신성한 동물을 낳게 된다. 일부 여성 샤먼들은 성별 전환의 욕구가 매우 강한데, 자신들의 신성한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말로 변신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참조: 마조리 바즐러의 《Sacred Genders in Siberia: Shamans, Bear Festivals, and Androgyny》)
성전환과 토테미즘의 연관성은 원주민들의 전설에도 잘 드러나 있다. 코랴크인들의 신화 중에는 ‘벨라야 키티하(하얀 고래)’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남자로 바뀌어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된다. 또 다른 신화에서는 한 남자 샤먼이 ‘보론(까마귀)’이라는 남자와 결혼하는데, 보론은 여자로 바뀌게 되고, 그녀의 아들은 나중에 소년을 낳는다.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동성애적 욕망과 젠더 역할 전환의 욕구는 또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오브우고르 민족들은 토템 동물인 곰을 바치는 제사 때 술을 마시면서 춤을 췄는데, 이때 공연에서 여성 역할은 모두 남자들이 맡았다. 이들은 남자들끼리 서로 성관계를 하는 흉내를 내기도 하고, 나중에는 서로 옷을 벗기기도 하였다. 니브흐족(극동 지방, 아무르강 하류 지역, 사할린, 홋카이도에 거주)의 경우, 축제 기간에 남자들이 여자들의 장신구를 하고 옷의 앞뒤를 거꾸로 입고는 뒤에서 곰을 잡거나 입맞춤을 하는 시도를 벌였다. 이런 젠더 ‘전복’은 자유와 다양한 세상을 상징하여 복을 불러오는 것으로 간주됐다.
시베리아 샤먼들의 화려한 의상은 종종 동물의 이미지와 자기와 반대인 젠더의 의상을 혼합한 것이다. 유카기르인, 에벤크족(시베리아와 중국 북부에 거주), 코랴크인 남성 샤먼들의 외투, 모자, 신발은 여자 옷에 토템 동물의 징표를 더한 것이다. 남자에서 여자로 바뀐 축치인 샤먼들은 토템 동물을 상징하는 옷을 입지 않았지만, 여자에서 남자로 바뀐 축치인 샤먼들은 가끔 가죽 허리띠에 순록 다리뼈로 만든 인공 남근을 차고 다녔다. (참조: 《Guardians and Spirit-Masters of Siberia》)
지금까지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 원주민들이 성적 다양성을 수용해 온 방식을 살펴봤다. 러시아 퀴어 블로그 운영자 안드레이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고대로부터 전해져 온 이런 순박한 생활 양식은 당당히 제자리를 차지했다. 소위 문명화된 민족이라는 우리는 너무나 힘든 여정을 거쳐야 했는데 말이다. 거대한 우리나라(러시아)의 동부 지역에서 살아 온 사람들이 인간의 성질을 바라본 방식대로, 우리도 섹슈얼리티와 그 다양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순수하게 수용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PS. 이 글은 러시아 퀴어 블로그 ‘무지개색 블로그(Блог цвета радуги)’의 자료들을 번역, 정리한 것이다. 번역, 게재를 허락해 준 안드레이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안드레이가 한국의 성소수자 친구들에게 건네는 10월 11일 ‘커밍아웃의 날(Coming Out Day)’ 축하 인사도 대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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