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이승현)(전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활동가)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전반적인 이야기에 대한 기고를 부탁받고 어떻게 써야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2007년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의 1주년 행사 이름이 ‘트랜스젠더의 복잡다단함’이었듯이, 두세 페이지로 전달하기도, 한 사람이 전달하기도 쉽지 않고 그것은 5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 글은 많은 분들의 피드백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싶습니다.
1. 내가 나를 설명하고 명명할 수 있기까지의 시간들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 않는 언젠가부터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혹은 자신에 대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주위에서 나를 지칭하는 성별이, 나라고 지칭되고 있는 몸이, 내가 느끼는 나와 나의 성별을 가리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막연히 알게 됩니다. 주로 ‘어린 시절부터’나 ‘사춘기 2차 성징’이 나타날 때부터라고들 하지요.(물론 그 정도나 시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요.) 그래서 그 불편함과 위화감의 정체를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트랜스젠더’라는 단어가 사회 일반에 퍼진 이후에는 비교적 그 시간이 짧아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지난한 시간들을 거쳐야 합니다. ‘난 남자인가 여자인가’, ‘난 트랜스젠더인가, 동성애자인가’, ‘난 어떤 의료적 조치를 받고 싶은 것인가’, ‘난 수술을 원하는가’, ‘난 ‘성전환’하여 이 사회를 살아갈 자신이 있는가’ 등. 특히 나이가 많은 분들은 이러한 언어조차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을 납득시키면서 긴 세월을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는 사회의 요구에 따라 결혼하고 자녀를 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전에 어떤 분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하리수씨가 나오고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를 알게 되면서 ‘이제사 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라고요.
2. 가장 절실한 돈, 돈, 돈
중·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남녀교복, 남학교·여학교나 남녀분반, 같이 다니는 동성집단 등 성별이 부각되는 생활이 시작됩니다. 친구들과 어울릴 수가 없거나 교사나 학생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거나, 그렇지 않다하더라고 성별이 구분되는 시시각각의 학교생활공간 자체가 어느새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일부는 고등학교를 전후하여 집을 나오는 선택을 하기도 하지요.
집을 나온 뒤부터는 바로 주거와 생활의 문제가 뒤따릅니다. 여건상 제일 얻기 쉬운 일자리는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 등이 됩니다. 또한 트랜스여성/MTF의 경우 ‘여성’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인 유흥업소로, 트랜스남성/FTM은 비교적 ‘남성’적인 주유소·택배 혹은 숙식제공 공장 등에서 생활비를 벌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단 호르몬을 시작하면 외형의 변화와 함께 기존의 주민등록번호로 취직하기 어려워지고, 학업을 마치지 않았다면 일자리는 더욱 요원해집니다. 성별 문제로 쉼터 등 보호시설에 들어가기도 어렵습니다.
사실 학교를 그만두거나 집을 나오는 일은 만만한 결정이 아닙니다. 학교나 가족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없거나, 하였더라도 무시되거나 부정당하는 경험이 거듭되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공간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러고 나면 내 몸 하나 가지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여건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너무 절실한 시점에 이르게 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어집니다.
여기서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생계가 힘드니 보험적용이 안 되는 성전환수술을 할 수 없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주민번호(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가 바뀌지 않으니 취직을 할 수 없어서 생계가 어려워집니다. 물론 현재 법원에서 요구하는 기준의 수술까지를 원하지 않아서, 혹은 주민번호가 필요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성별 정정을 못 하거나 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법원이 불합리하게 높은 기준을 요구함으로서 외형과 주민번호가 불일치한 채로 고용에서 차별받는 대다수의 트랜스젠더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3, 의사들과의 애증관계(!)
우리나라는 트랜스젠더를 위한 의료 가이드라인이나 인프라가 없습니다. 의료 조치에 대한 욕구는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하지만 일찍이 의료 가이드라인이나 관련 법률이 있었던 유럽에서도 의료계나 법조계에서 그것을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결국 자신의 욕망보다는 사회의 요구에 맞추어 ‘성전환’의 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니 보수적인 의료 가이드라인이 존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병원이라도 ‘뚫을 수 있는’ 지금 상태가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호르몬이나 수술정보를 커뮤니티에서 얻다 보니 명확하지 않은 의료정보를 습득하거나, 일부 병원의 횡포가 있어도 묵인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의료사고가 있어도 표면화되지 않습니다. 당사자도 표면화시킬 힘이 없고요.
호르몬을 포함한 의료 조치의 과정에서 의료계의 이해와 지원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특히 법적 성별변경을 위한 법안 마련에 있어서도 절실합니다) 호르몬은 수년에서 수십 년 동안 투여해야 하고, 수술은 수차례에 걸쳐 진행되곤 합니다. 그러한 의료 조치들 자체는 물론 그 과정 전후의 육체적·심리적 건강에 대한 케어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몰이해한 의료계만큼 위험한 존재도 또 없기 때문에 단순히 의료 가이드라인과 전문 클리닉이 생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편견 없이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의료계의 움직임이 절실합니다.
4, 사람들과의 관계맺기의 어려움
호르몬을 포함한 의료적 조치의 시작, 즉 여성에서 남성,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행의 단계를 거치면서 기존의 인간관계에는 일정정도 단절이 생기곤 합니다. 상대가 피하는 것도 있겠지만, 일단 자신이 피하게 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더는 과거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여 주지 못한다면 상처받을 것 같아서, 더는 과거에 받아들여졌던 성별로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일체 없는 공간에 안착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적인 성별변경까지 끝나면 커뮤니티에서 홀연 사라지는 사람이 속출합니다.
이렇게 몇 차례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가운데, 가족과의 관계는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남습니다. 자식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는 없습니다. 함께 상처받고 거리두기를 반복하면서 원망도 생기고, 미안함도 생깁니다. 여태까지 사람들을 만나면서 경험상 발견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부모(가족)의 이해 및 수용정도와 그 사람의 현재의 경제적·심리적 상태가 정비례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별정체성이 받아들여지는 공간과 인간관계를 경험하는 것은 곧 자존감과 안정으로 이어집니다. 이행의 단계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곤 하는데, 자신이 남성(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공간,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알고 있는 공간, 자신이 여성(남성)으로서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모르는 공간... 그러한 공간들 안에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들 자체가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 됩니다.
5. 연애하고 싶다! 그런데, 괜찮을까...
애인을 어디서 만나고 결혼은 어떻게 해야 할까. 트랜스젠더임을 애인에게 알려야 할 때 버림받을 것에 대한 공포로 숨기는 것이 당연한 현실, 단절이 거듭된 삶 속에서 사람 만날 공간이 없는 현실, 성별정정이 안 돼 있어서 이미 대외적으로 ‘기혼’이지만 법적으로는 남남인 현실, 나의 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자괴감, 자녀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미안함... 연애와 결혼은 그러한 고민들을 안고 있습니다. 이성애자의 경우 결혼할 상대에게 숨긴다 하더라도 불임인 이유를 거짓으로 지어내야 하고, 숨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가족과 친척이 모두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은 이상 양가 부모가 만나는 것은 위험한 시도입니다. 결혼식에 부를 사람들을 모두 트랜스젠더임을 모르는 사람으로 채우기도 쉽지 않지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의 경우도 파트너를 만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게이 모임 카페들이 본인확인 된 ‘남성’, 즉 주민번호 1로 시작하는 사람만 가입되게 설정되어 있고, 여성으로 패싱될 수 있는 외모가 아니면 레즈비언 바에 들어가는 것을 저지받기도 합니다. 비트랜스젠더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트랜스젠더 동성애자는 진입자체가 힘들고, 들어가서도 커밍아웃하기는 더더욱 힘듭니다.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도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임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두 커뮤니티 어딘가에 끼인 존재가 되지요. 작년 아시아태평양 아웃게임즈에 참가했을 때 미국의 한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단체에서 발행한 팸플릿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도 같이 접히는 팸플릿으로 게이 커뮤니티에 나누어 주는 것이었는데, FTM 게이와의 섹스가이드를 보기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지요. 우리나라도 수년 후에는 종로의 게이바 한 켠에 그런 팸플릿이 비치될 수 있을 정도로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되고, 그리고 또 수년 후에는 임신한 레즈비언 커플과 게이커플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트랜스젠더는 이행의 단계 후에 성적지향을 다시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동시에 찾아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성애주의를 내면화하거나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이 사회에서 나의 성별정체성을 증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적지향이 자기 자신과 주위를 설득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지요.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위해 법원에 내는 자기진술서와 법원의 결정문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꼭 들어갑니다. ‘어릴 때부터 여자(남자) 선생님을 좋아했으며 ... 현재 자신을 이해해주는 여자친구(남자친구)와 동거하고 있고...’
6. 일상, 숨막힘의 연속, 그러나 그것이 당연해져 버리는 어느 때에
성별이 구분되는 모든 공간은 많은 트랜스젠더들에게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화장실, 목욕탕, 탈의실, 병실, 각종 보호시설, 유치장, 교도소 등등. 그리고 법적 성별정정이 되어있지 않은 이행의 단계에서는 주민증을 통해 ‘본인확인’이 되어야 하는 모든 상황이 문제됩니다. 예를 들면 은행에서 온 전화를 받으면 어김없이 나오는 대답, ‘OO님 본인 부탁드립니다’나 ‘OO님 배우자되십니까’. 어쩌다 병원 다인실에 입원하게 되면 사람들의 난감한 반응들,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어서 사람이 다니지 않는 화장실을 찾아 헤매거나 용변을 참는 일상들. 이러한 상황들은 사실 조금 참거나 이리저리 피해나가면 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이 오랜 기간 반복되면서 불편과 압박은 고스란히 몸 안에 쌓입니다. 마치 얼굴 위에 휴지를 한 장 한 장씩 올리고 물을 뿌리는 것처럼, 언젠가부터 일상 자체가 질식사할 것 같은 분노로 차기도 합니다.
지난달 동인련의 <우리 지금 만나? - 장애를 ‘다시’ 이야기 합니다>에 다녀왔습니다. 장애인과 트랜스젠더가 가진 연대 지점이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나누고 싶었지요. 이야기를 들려주신 초대손님은 처음 신체장애인이 전동휠체어를 탓을 때 사고가 날 정도로 속도를 내며 이리저리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활동보조인이나 주위 사람들이 당황할 정도로요. 그만큼 움직임에 대한 갈망이 터져 나온 것이죠. 그 이야기는 무척 공감이 되었습니다. 문득 얼마 전 이성애자인 트랜스젠더 친구와의 술자리가 떠올랐습니다. 가볍게 술 한 잔 하다가, 2차로는 어디든 좋으니 이반바로 가자고 합니다. 그냥 거기가 편할 것 같다고 하네요. 택시를 타고 이동한 바에서 친구는 힘든 일상의 울분을 큰 소리로 토해냈습니다. 그냥 연애와 일상에 대한 이야기로 일반 술집에서도 할 수 있을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꼭꼭 쌓아 넣고 있는 분노들을 풀어내는 방법이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수용할 수 있다는 믿음이 드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트랜스젠더의 이행을 종종 여행에 비유합니다. 이성애주의와 성별이분법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적극적으로든 수동적으로든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부정하는 주민증을 가지고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하고, 생계를 꾸리고 수술비를 마련해야 하며, 의료정보를 모으고 수술의 종류와 방식과 병원을 선택해야 합니다. 나를 거부하는 모든 공간과 상황을 해결하는 전략을 습득해야 하고, 내 안의 분노와 슬픔을 희석시켜야 합니다. 나의 꿈과 인생설계는 내 ‘성별’을 찾아오기 전까지 미뤄지고 때로는 그 과정에서 지쳐서 아예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관계를 단절하거나 새로운 사회에 적응해야 하며, 이행의 과정에서 나에 대한 정체감을 재설정해야 하고, 성적지향을 다시 고민해야 합니다.
7. 많이 이야기 하고 많이 공유하기
조금은 ‘전형적’인 트랜스젠더들의 고민들과 부딪히는 문제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수술을 하지 않기로 생각한 사람, 여성·남성의 어느 한 편에 속하지 않고 ‘트랜스젠더’로 정체화 하는 사람, 태어난 당시의 공부상 성별로 결혼을 한 경우나 자녀를 가지고 있는 경우, 병역이행을 위해 군대에 간 경우, 성노동자로서 삶을 꾸리는 경우와 HIV 감염인이 되는 과정, 생물학적 성기관을 이용하여 아이를 가지고 싶은 경우 등 많은 다른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마치고 가족관계등록부도 정정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이지요.
이렇게 복잡다단한 많은 이야기들을 할 공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GLBTI라고 하지요. 우리나라는 주로 LGBT를 많이 사용하지만요. 이 순서는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동성애자 안에서 양성애자는 잘 보이지 않고, 동성애자/양성애자의 이야기 안에서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은 가려지며, 트랜스젠더 속의 어딘가에 인터섹스가 숨어있습니다. LGBT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그 안에는 T가 없기도 하고, I는 아예 적혀 있지도 않곤 합니다. 그것이 아직 우리 사회의 한계이자, 앞으로의 나아가야 할 운동의 방향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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