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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지향 · 성별정체성/트랜스젠더

누구를 위한 수술인가 - 성소수자 관점에서 본 한국의료의 문제점

by 행성인 2013. 6. 8.


발표: 최은경(서울대학교)

정리: 이혜민

(이 글은 2013년 5월 3일 "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청책학회 2013 봄 학술대회 <한국 보건의료의 질: 시장과 불평등은 어떻게 작동하나>"에서 최은경님의 발표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2006년 인도네시아 요그야카르타 주에 모인 성소수자 인권단체들과 국제법 전문가들에 의해서 ‘성적 지향과 성평등에 관한 국제법 적용에 대한 요그야카르타 원칙(이하 요그야카르타 원칙)’이 채택되었다. 이 원칙에는 ‘제18원칙 의료남용으로부터의 보호, 즉 누구도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그 어떤 형태의 의료적 또는 심리적 치료나 시술, 검진을 강제 당하거나 의료시설에 감금되어서는 안 된다. … 개인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그 자체는 의료문제가 아니며, 치료되거나 교정되거나 억제될 수 없다.’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성소수자의 의학적 권리는 역설적으로 성소수자가 의학적으로 병리화하는 시선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그들이 의학적 대상이 아님을 먼저 인지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문화적 역량으로서, LGBT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성소수자들은 건강불평등에 불합리하게 노출되어 있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인이나 의료 문화 내의 편견으로 인한 의료 서비스에 대한 부담과 의도하지 않게 아웃팅(Outing)[각주:1]되었을 때 또는 의료 서비스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커밍아웃(Coming-out)[각주:2]했을 때 이에 따르는 사회적 차별과 낙인, 배제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로 인한 스트레스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각종 정신적 장애는 사회적 지지망이 부재한 가운데 흡연이나 알코올 또는 비만 등의 위험-추구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소수자는 위험-추구 행동으로 인한 건강상 위험요인이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보다 클 가능성이 높고, 사회적 지지망의 부재로 인한 자살과 정신 건강의 문제 그리고 사회적인 배제와 낙인으로 인한 신체적, 성적 폭력과 HIV와 같은 성감염증에의 취약성 등과 같은 건강 문제를 지니고 있다. 


특히 성소수자 중에서도 트랜스젠더[각주:3]는 고가의 성전환 수술과 의료에의 접근성 부족(일부 병원에서만 시술이 이루어지며, 성전환 전 과정을 관장하는 의료진은 극소수이다), 전형적인 비보험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개인이 시술의 위험을 전부 부담해야 하는 구조 그리고 이러한 위험 노출에도 불구하고 성기재건까지 포함한 성전환 시술이 이루어져야만이 호적 변경이 가능한 법 현실의 모순 속에 놓여있다. 


성전환 의료과정은 1) 정신과 진단, 2) 자기 주도의 호르몬 주입, 3) 외형 수술(1차 수술, 성기를 제외한 인체 중 외형 부분에 대한 수술), 4) 성기 제거 및 재건 수술(2, 3차 수술)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다. 정신과 진단에서는 단순히 증상 자체에 대한 진단 만이 아니라 트랜스젠더에게 사회에서 겪는 낙인과 차별로 인한 우울증, 불안, 적응 장애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보통 장기간의 상담과 의학적 치료가 필요하다. 또한 자기 주도의 호르몬 주입 과정에 있어서 트랜스젠더는 주치의의 지도와 처방 아래 주사 놓는 방법에 대해서 교육받지 못하기 때문에 한 번 쓴 주사기를 다시 쓰는 등의 위생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고, 호르몬 처방 후에 생기는 신체상의 변화와 사회적 역할의 변화 등에 대한 지지나 상담 등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적절한 호르몬 수치 및 변화량에 대한 환자-주치의 간 협상과정 부재하다. 현재 대법원의 성전환자 호적정정 판결은 성기 재건까지 마친 후에야 호적정정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사회적 성을 주민등록번호와 일치시키기 위해 위험한 수술을 감내하고 거액의 경비를 들여야 하는 실정이다. 사회는 이러한 위험한 수술을 개인이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요하고 있다.



치료와 교정의 대상, 트랜스젠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 제2조 제1항에서는 “성전환증”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는 성전환에 대한 암묵적인 소극적 태도를 유지하게 하여 당사자의 성정체성 결정 혹은 성정체성의 선택이라는 자기운명 결정 내지는 행복추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그래서 헌법 제10조에 따라 국가는 이를 “최대한 보호할 의무”를 지게 되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병리적 현상, 즉 치료와 치유에 의해 언젠가는 교정되어야 할 대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각주:4] 


국내에서 성소수자의 의학적 권리에 대한 인식은 아직 미약한 실정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면’ 비성전환-이성애자와 동일한 권리로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 성적 지향 또는 성별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순간들이 다양하게 있으며, 일단 드러낸 이후에 겪는 고통과 어려움은 개별적으로 감내해야 할 몫으로 남겨진다. 


최근(2013년 3월 15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성기제거수술만으로도 성별정정을 허가한 판례가 있었다. 


성전환자가 기존 성 제거 수술을 했다면 성기성형 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도 법적으로 성별을 바꿀 수 있다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16일 성소수자 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가•연구가 모임인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등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은 유방, 자궁 절제 등 기존 성 제거 수술은 받았지만 성기 성형수술을 받지 못한 성전환남성 ㄱ(49)씨 등 5명이 성별란을 ‘여’에서 ‘남’으로 바꿔달라며 낸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신청을 지난 15일 받아들였다. ㄱ씨 등은 작년 12월 “전환된 성에 부합하는 성기성형을 요구하는 것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에 있어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과도한 의료적 개입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성별정정 허가 취지에 반한다”며 성별 정정 신청을 냈다.

ㄱ씨는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1990년대 유방•자궁 절제수술을 받고 남성호르몬 요법 등을 통해 현재 남성으로 살고 있다. 남성의 외관과 남성 정체성을 가진 그는 아내와 23년째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법적 성별을 바꾸지 못해 혼인신고도 할 수 없었다. 대법원은 2006년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을 허용할 수 있도록 결정했지만 허가요건으로 ‘반대 성으로서의 외부성기’를 갖출 것을 명시했다. 법적 성별정정 요건인 남성 성기 성형수술은 요도협착•피부괴사 등 의료적 위험성이 크고 재수술 가능성이 높은데다 수술비용도 수천 만원에 달한다.[각주:5]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정정 시 요구되는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도 무리한 의학적 수술을 강제하지 않음으로써 좀 더 성소수자 친화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자유 vs 사회 질서, 안정 그리고 국가에 의한 국민 통제, 관리 


진중권의 『생각의 지도, 진중권의 철학 에세이』 5부 ‘n개의 정체성’에서는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아직 형성되지 않은 추상적 개인을 호명하여 그를 ‘주체’로 만들어준다. 이렇게 한 개인을 주체로 찍어내는 데 물론 가정, 학교, 직장, 언론을 포괄하는 ‘이념적 국가기구’가 관여한다. 개인은 호명에 응하여 주체가 됨으로써 비로소 사회 속에서 생각하고,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 라캉(J. Lacan)의 거울에 해당한다고 할까? 우리가 거울을 보고 자의식에 도달하듯이, 인간은 이데올로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호명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율적 ‘주체’란 실은 ‘이념적 국가기구’라는 타율을 통해 만들어진 ‘객체’에 불과하다. 신이 제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듯이, 자본 역시 제 형상대로 인간을 찍어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이념적 국가기구’는 가치관의 다양성을 허용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사회도 제 안에, 자신에 반대하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의 존재를 묵인한다. 물론 그 이데올로기가 부르주아의 관용을 넘어 체제를 위협할 정도에 이르면, ‘이념적 국가기구’ 대신에 곧바로 ‘억압적 국가기구’가 출동할 것이다.[각주:6]

 

국가의 간섭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국가에게 권력이 부여된 이유 그리고 국가의 존속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는 국민 즉, 개인들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무엇이 ‘공공의 이익’인가? 여기서 ‘공공’은 무엇인가?

 

국가가 개인의 성별정체성 혹은 성적지향성 이라는 자유를 침해하는 이유는 이성애 중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동성애 혹은 트랜스젠더로 대표되는 성소수자들보다 이성애자들이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이성애적 문화)에 맞춰나가야 한다’, ‘그것이 곧 사회적 안정 및 통합을 위한 그들의 작은 희생이다’라는 식의 주장을 함으로써 국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섹슈얼리티에 대해 (정당한 사유 없이) 억압을 하고 또 사회적으로 더 갈등을 일으키고 조장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렇게 국가가 개인의 성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정당성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1)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2) 사회통념상 등이다. 2)의 ‘사회통념’을 판례에서도 쓰고 있는데, 그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전환된 성을 그 사람의 성이라고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과의 신분관계에 중대한 변동을 초래하거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아니하여 사회적으로 허용된다고 볼 수 있다면, 이러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람의 성에 대한 평가 기준에 비추어 사회통념상 신체적으로 전환된 성을 갖추고 있다고 인정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할 것이며,[각주:7]

 

또한 국가라는 전체 사회가 아닌 개인(전문가로 분류되는 의사, 판사 등)이 또 다른 개인의 성적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올바른가?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재량은 어디까지로 인정할 수 있는가? 



동성혼 합법화의 국제적인 흐름, 그리고 한국


2013년 4월 17일 13번째로 뉴질랜드[각주:8]에서 그리고 14번째로 프랑스[각주:9]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이로서 현재 동성혼을 인정하는 나라는 아르헨티나, 벨기에, 캐나다,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남아공, 스페인, 스웨덴, 덴마크, 우루과이, 뉴질랜드, 프랑스가 있다. 세계 곳곳에서 동성간의 결혼이나 동반자 관계 보장을 요구하는 성소수자 단체들의 운동이 전개되고 있고, 이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국가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기존의 시민권으로서 가족구성의 권리는 또 다른 방향으로 갱신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2007년, 2010년 2차례에 거쳐 법안을 상정하려고 시도했던 ‘차별금지법’이 2013년에도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를 가장 큰 반대 이유로 삼는 세력으로 인해 법안을 발의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지어 ‘군대 내 동성애 행위 처벌법’이라는 군 형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며, 성적 지향의 이유로 청소년들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학생인권조례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이렇게 한국은 정확히 거꾸로, 세계의 흐름을 정 반대로 거스르고 있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65년 전, 1948년에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에 제시된 내용이다. 약 65년 전의 세계적인 상식으로서 제정된 내용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권감수성을 지닌 한국사회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은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차별을, 특별히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거부합니다. 누군가 성적 지향을 이유로 공격받고 학대 받거나 감옥으로 보내질 때, 우리는 반드시 이에 맞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각주:10], "우리는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며, 공격하고 심지어는 살해당하는 일들에 분노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는지에 따라 구금되고, 공격받는 많은 일들이 무시되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이러한 심각한 인권침해는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커다란 도전임이 분명합니다."[각주:11] 라고 호소했다.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로서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의 현 주소에 대해서 그리고 왜 이렇게 부당한 상황이 초래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1. 타인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혀지는 행위 http://ko.wikipedia.org/wiki/%EC%95%84%EC%9B%83%ED%8C%85 [본문으로]
  2. 성소수자가 스스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http://ko.wikipedia.org/wiki/%EC%BB%A4%EB%B0%8D%EC%95%84%EC%9B%83 [본문으로]
  3. 트랜스젠더(transgender)는 문화적, 관습적 성 역할에서 벗어난 형태의 개인, 행동, 집단을 통칭하는 일반적인 단어이다. 트랜스섹슈얼(transsexsual)은 신체적인 성별과 반대의 젠더를 성 정체성으로 가지기 위해 수술을 한 사람을 일컫는다. [본문으로]
  4. 퀴어이론문화연구모임 WIG 공저.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 2008. 사람생각 [본문으로]
  5. 2013년 3월 16일자 경향신문 기사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3161155431&code=940301 [본문으로]
  6. 진중권. 2012. 『생각의 지도, 진중권은 철학 에세이』5부 ‘n개의 정체성’ p.155-156. 천년의상상 [본문으로]
  7. 대법원 판례 2006. 6. 22. 자200442 전원합의체 결정 [본문으로]
  8. http://amnesty.or.kr/6880/ [본문으로]
  9. http://www.nytimes.com/2013/01/10/world/europe/france-debates-gay-marriage-law.html?_r=1& [본문으로]
  10. 반기문 UN사무총장, 2010.12.10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처벌 철폐' 행사에서 연설 [본문으로]
  11. 반기문 UN사무총장, 2013.04.15 '인권, 성적 지향, 성 정체성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연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