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성애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이 분들이 어떻게 해고 되었고, 어떤 활동들을 해왔는지 더욱 구체적인 내용은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볼 수 있습니다.
약속 지키기 위해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고 윤주형 조합원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9254
[기획대담] 기아차 해고자들을 만나다
정파주의와 조합주의를 넘어 새로운 희망으로
http://sanosin.jinbo.net/Publish/magazine.php?ex=article&b_fn=RD&gotopage=1&pkno=674
노동조합을 만든 사람이 조합원이 아니라고?
[인터뷰] 기아차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이동우
http://sanosin.jinbo.net/Publish/magazine.php?ex=article&b_fn=RD&gotopage=1&pkno=703
*인터뷰는 2013년 3월 30일에 했고, 이상욱 동지는 지난 4월 복직 되셨습니다
처음에는 투쟁 경과나 연대의 의미 같은 것들을 질문했어요. 이런 저런 답을 해주시다가 이상욱님이 “그래서 이 인터뷰의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여쭤보셨지요. 그 이후로는 우리가 궁금한 걸 마구 물어보는 정신없는 인터뷰가 되어버렸답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에서는 성소수자 노동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팀이 있어요. 그래서 연대를 통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관계를 맺어왔지요. 예전까지는 공장 밖의 활동에서 성소수자로서 연대했다면 작년에는 ‘공장 안으로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감이나 희망이 있었던 거 같아요. 2009년인가 저희가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랑 같이 일터에서 성소수자 차별하지 말자는 내용의 포스터를 제작해서 뿌린 적이 있거든요. 노동조합과 성소수자 이슈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돼요.
이상욱: 그런 맥락이라고 하면 기아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이하 해복투)가 했던 활동중에 “제목달기”라는 게 있었어요. ‘연대투쟁을 왜 하는가’, ‘연대투쟁을 어떤 식으로 하는가’, 고민을 하면서 우리가 제목을 달았던 게 “용감한 사총사 외부 연대세력되기”였어요. 공장의 많은 노동자들은 연대투쟁이 무엇인지를 모르죠. 매년 의례적인 임금단체협상(이하 임단협)투쟁 싸이클에 젖어있는 대공장 조합원들은 연대투쟁이 자신들의 생활과 정신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전혀 모르는 거죠. 저희들은 탄압받은 소수자, 해고자로서 극복에 대해 고민할 때 “좀 더 힘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대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 이후 투쟁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공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하고 그런 것이 왜 필요한 것인지, 고립된 현장에서 밖으로 나와서 노동자들을 만났을 때 공유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 있었거든요. 희망뚜벅이, 희망광장 같은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이 ‘이걸 공장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 하는 부분들이었어요. 2000년대 초반에는 지역사업장들 모아가지고 경기도청을 타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연대투쟁이 거의 없죠. 그런 것들을 조합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거냐. 이 메마른 공장에서 노동자들끼리 따뜻하게 연대한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고, 희망광장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가져와서 공장안에서 조금이라도 이야기의 씨앗을 만들고 싶었어요.
감수성을 자극하고, 민주주의나 소수자 문제든, 여성주의의 문제든, 장기투쟁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의 문제와 만나고, 경찰과 대치하고, 함께 어울리고 지금의 대공장에서 줄 수 없는 것들을 해복투가 그나마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고민들이 있었어요. 어떻게 다수 대중들을 움직일거냐라는 태도가 아니라, 소수라 할지라도 감흥을 느끼는 부분을 끊임없이 찾고 행하는 활동, 당연히 실패하거든요. 하지만 함께했던 동지들과 그 느낌을 소중하게 계속 연장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사실 동인련에서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내부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지 궁금했어요. ‘왜 저런 데서 인터뷰하자고 하지?’라던가 누군가는 하지 말자고 했을 수도 있을 거 같고.
이동우: 제가 먼저 이야기 들었고요. 편하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웃음) 동인련이 어떤 단체인지 이상욱 동지도 알고 있고 김수억 동지도 알고 있었고요. 동인련 노동권팀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고 하니 다들 그냥 “가자. 할 수 있다.” 했지요.
이상욱: 윤주형 동지가 그렇게 가고 나서 많이 힘들어 하고 있고, 사실 요즘은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있어요. 저는 ‘열사가 난 힘든 사업장에서 동지들 관계가 왜 파탄날까, 그것이 개인과 노동조합, 조직이든 단체든 관계의 단절 문제일까?’ 하는 고민이 계속 들어요. 특수한 상황이라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에요.
이동우: 윤주형 동지가 살아있었다면 아마 이 이야기를 하면서 제일 재미있어 했을 거예요.
본인들 스스로 이성애자라고 생각하시는지. 본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이상욱: 저는 일단 기혼인데요. 여성활동가와 부부로 13년째 살고 있는데. 애초에 이성애적 취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사랑하고 결혼생활을 유지해나가고 있겠지요. 최근 들어서는 성적취향의 다양성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하고 있어요. 다른 한 동지가 이성애자였다가 새롭게 성적취향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여성동지와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그 동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랑이 뭘까? 서로의 호감과 관심, 이야기를 나누고 삶을 공유하는 그런 것이 기초이고, 그 속에서 성적취향들이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들이 들더라고요. 또 ‘성적취향이 바뀔 수도 있겠구나. 행복을 추구하면서 동성과 성생활을 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스스로 확신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할 수도 있고, 취향은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좀 더 행복하고 진실한 삶을 위해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결혼이라는 제도적인 형식으로 나누는 건 정말 쓸모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지금은 이성애적 사랑을 하고 있는데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고,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이동우: 20대 초반까지 이성애자라는 말도 몰랐고. 20대 초반에 학생이었는데 여성동지가 “동성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저한테 물어봤어요. 그때도 운동을 조금 하고는 있었으니까 “나쁘게 말하면 안 될 거 같은데” 했지요. 그 때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나요. “취향인 건 어쩔 수 없는데 나한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돼.”라고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어처구니없지요. ‘나랑 다른 성적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하는 걸 전제로 하는 말이잖아요. 성적 취향 때문에 나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죠. 이성애자인건 맞는 거 같아요.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조금씩 저랑 다른 성적 취향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거 같아요.
예전에 노동조합 활동을 하시는 분들과 간담회를 한 적이 있는데 공장에서 성소수자 이슈로 무언가를 하기는 굉장히 힘들다고 하셨어요. “오히려 언론이나 사회적인 차원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많아지면 그때 조금 바뀌지 않을까”라고 하셨죠.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권리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고민이 되더라구요.
이동우: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2000년대 초반까지 여성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여성이나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주저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사건이 몇 개 있었고, 부족하나마 여성주의 관점에서 풀어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고. 지금은 ‘2차가해’라는 말도 내용은 모르지만 “야 이것도 2차가해야?”라고 한단 말이예요. 그전에는 스스럼없이 했다면 지금은 조심하게 된 거죠. 피해자의 치유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회사측 빼고는 없어요. 조금씩 바뀌는 거죠. 캠페인을 통해서든 다른 방법을 통해서든 계속해서 소수자에 대해 이야기해야 바뀌는 거죠.
이상욱: 맥락없이 진행된 것은 아니었고 꾸준한 사건들이 있었어요. 지반이 없었기 때문에 지반을 만들려고 했는데 부딪혔죠. 노동조합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고 관료적으로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했죠. 우리는 부족하게 마무리하는 것보다 피해자 치유가 먼저라는 쟁점을 부각시키고, 2차가해란 무엇인지 문제를 제기했어요. 피해자 치유를 이야기하니까 대책위가 만들어지고, 조직에서 달라붙고, 그러면서 어느 정도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었죠. 노동현장에서 성소수자 노동자의 이슈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냥 선전의 문제로 알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느끼게 하는 게 어떤 것이 있을까’하는 고민은 머리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이동우: 작지만 할 수 있는 실천들을 꾸준하게 이어나간다면, 큰 사건이 일어나났을 때 지지해줄 사람이 많아지겠지요. 이 주제의 주목도가 커지면서 반향이나 역풍도 엄청나게 커지지만 그러면서 “저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하는 생각도 하게 되니까.
성폭력 사건이라는 것이 사실 이전에 없던 일이 아니고 이전에도 계속 있었지만 그게 어쨌든 이슈가 되면서 공감대를 얻고 운동으로 만들어나간 거잖아요. 성소수자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거든요. 일터에서 끊임없이 혐오와 차별 발언을 듣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고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이것도 큰 이슈로 만들 만큼의 운동으로 만들 수 있는지 고민이 들어요. 지금 사회에서 힘든 게 사실이니까요.
이동우: 사회 문제는 공장 안 뿐만 아니라 공장 바깥에도 있잖아요. 저희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데, 공장 안에만 계속 갇혀 있으면 노동조합의 질서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죠. 공장 바깥의 이슈들을 어떻게든 끌어 들이려고 노력해요. 공장 밖의 사회 문제들을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는 내용으로 바꿔서 조합원들을 설득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잘 안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죠. 공장 안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들이 아니라, 예를 들어 홍석천이 라디오스타에서 나와서 한 이야기를 끌어들여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면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해볼 수 있게 되는 거죠.
스스로에게 사랑과 우정은 어떻게 다른가요?
이동우: 사랑과 우정 사이를 생각해봤는데요, 친구들이랑은 지속적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과는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친구는 일주일만 같이 살아도 집에 갔으면 좋겠어요.
이상욱: 저는 잘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냥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는 성생활이 핵심일 것 같아요. 한 사람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성생활하는 것이 우정보단 좀 더 끈끈한데, 그럼 우정은 끈끈하지 않은가? 끈끈할 수 있어요. 사랑과 우정에 성생활이 곁들여진 관계가 훨씬 더 끈끈한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랑과 우정을 비교하면 사랑이 좀 더 심오하고 고차원적고 이야기할 재료들이 더 많은, 더 깊은 감정의 공감대를 교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우정은 성생활이 동반되지 않은 관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것만큼은 교류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투쟁을 하면서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게 있다면 뭘까요? 요즘 느끼는 것이든 예전부터 생각하던 것이든. 투쟁하면서 ‘이 부분은 절대 놓치지 말고 가야겠다’하는 것이나, 또는 끊임없이 자기를 경계하게 되는 것이 있나요?
이동우: 저는 요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내 자신을 지키고 싶어요. 그리고 나를 지지했던 동지들을 지키고 싶은데, 그건 결국 동지들이 지지해준 저의 모습을 잃지 않고 싶은 거죠. 조금 추상적인 표현이긴 한데, 요즘은 ‘예전의 나’로부터 많이 무너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뭐 어때’하는 자포자기 심정도 있고,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것도 있고. 계속 내 안에서 싸우고 있죠.
20대 초반의 저와 작년의 제 모습은 많이 달라요. 20대 초반에는 성에 대해 대단히 보수적이었는데, 여성주의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는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이런 변화들 속에서도 계속 가지고 있던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그런 태도들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이걸 뭉뚱그려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제가 가져왔던 태도나, 동지들이 봤던 모습들이 지금 한 두달 동안은 정지상태인 것 같고, 그런 의지들이 사그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죠.
이상욱: 저도 요새 자아가 대단히 말랑말랑해져 있어요. 정리하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정말 구체적인 것으로 끌어 당기려고 하는, 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고 싶은 욕망이 여전히 있어요. 그 형태나 태도가 다를지라도, 여전히 인생의 신념을 갖고 있는 거죠. 그 신념을 잃고 싶지 않아요. 지금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힘이에요. 만약 이 신념을 잃는다면 공장을 떠나겠죠.
만약 공장에서 어떤 성소수자 노동자가 커밍아웃을 한다면 어떻게 하실 것 같아요?
이상욱: 공장에서 어떤 용기 있는 분이 목소리를 낸다면 당연히 같이 할 것 같아요. 스스로 커밍아웃하면서 일어나신다면 당연히 같이 해야죠.
이동욱: 만약 커밍아웃을 한다 해도 커밍아웃 자체가 어려운 일인데, 특히나 대공장 남성중심적인 공장에서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죠. 그런 일이 일어나면 당연히 지지해야 한다고 봐요. 사람들이 지지할 수 있게 만드는, 인식의 점진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여러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가 되었든 해야 할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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