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운동과 동성결합 소송

Posted at 2013.10.22 23:29// Posted in 동성결혼

'동성결합' 소송, 어떻게 할 것인가?


곽이경 (동성애자인권연대)

(이 글은 <'동성결합' 소송,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의 발제문입니다)



법을 바꾸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일 뿐이라고, 제도적 변화에 집중하는 운동은 많은 한계를 가진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가져왔다. 어쩌면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경험에서 우리가 이룬 제도적 성취란 아무래도 미미하고, 그런데도 힘이 집약되었던 운동의 과제들은 하나 같이 ‘법’의 변화를 노리는 목표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전히 규모가 작고 가시적 성취가 더디고, 많은 경험을 축적하지 못했으며, 운동의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성소수자 운동에 ‘법’을 통한 운동이 어떤 쓸모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따져보는 것이 내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거친 결론부터 말하자면, 얼마만큼의 제도적 성취를 이룰지는 운동의 힘과 사회 여론의 상황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어떻게 운동으로 표현되느냐는 운동이 지향하는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제도적 성취가 ‘결과’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것을 향한 여정에서 변화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운동이 성장하기 때문에, (설령 제도적 변화가 더디게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장기적으로는 중요한 성취인 것이다.



왜 지금인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많은 부분 김승환-김조광수 커플의 결혼으로 인해 동성결합이라는 쟁점을 사회적으로 제기하는 방법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시작할 시점에 왔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김김커플의 결혼식이 한국 최초의 공개적 동성결혼식은 아니다. 2002년 레즈비언 커플의 공개결혼식이 보도된 바 있고, 2004년에는 게이커플이 공개결혼 후 혼인신고서 수리를 구청으로부터 거부당한 사례가 있으며, 간헐적으로 언론을 통해 동성결합의 모습이 보도된 바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성소수자 단체들은 동성결합과 관련한 사례 연구 및 행사 개최 등을 통해 논의를 이어왔다. 결국 동성결합과 관련한 논의는 갑자기 튀어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을 구체적인 운동의 과제로 고민해보진 않았다. 그러면 왜 지금, 동성결합 권리를 위한 운동적 실천과 전략이 중요한 토론 주제가 되고 있는가?


1. 할 이야기들은 많다. 최근 동성결합과 관련한 토론회가 빈번하게 개최되고 있다. 우리에게 막연한 주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가족구성권 연구모임 등 각 단체에서 그동안 축적한 논의의 결과물을 내어놓고 이 쟁점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벌이고 있으며 대중적 관심을 받고 있다. 할 얘기가 많다는 것은 지금 이 상황이 하나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을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 된다. 오히려 ‘지금’이라는 이 시기를 잘 활용하여 논의를 풍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더, 동성결합을 둘러싸고 이것을 바라보는 관점과 실천의 방향에 대한 논쟁이 보다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동성결합 과제가 이성애적 결혼제도로 수렴될지 모르는 우려부터, 그 안에서 계급계층, 성별 등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결혼을 선택할 수 있는 동성애자와 그렇지 않은 동성애자로 나눠질 가능성에 대한 문제까지. 이런 고민들은 운동의 방향성을 둘러싼 현실적 고민들이며 인권운동이 충분히 고려해야할 지점이다. 쟁점이 운동으로 현실화되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현실적인 고민들도 더욱 구체화되는 것이다.


2. 한국 성소수자 운동이 성장했다. 동성결합을 운동이 성취해야 할 과제로 삼기 위해서는 운동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가도 중요하다. 불과 5년 전에는 눈에 보이는, 또는 해볼만한 운동의 과제가 아니었던 것들이 이제는 ‘싸워볼만한’ 문제가 될 수 있는 힘은 운동의 역량에 달려 있다. 또한 지금의 사건이 운동과 어느 정도 연결고리를 가지고 진행되는지, 그 연결고리를 운동이 어떻게 활용하고 개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단지 셀레브리티여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사자들이 성소수자 단체의 구성원이며, 문화연대라는 사회단체가 결혼식을 공동으로 기획했다. 연관 맺고 있는 인권사회운동이 이 결혼식을 지지했으며, 결혼식을 통해 성소수자 인권센터를 설립하겠다는 계획 또한 중요하게 다뤄졌다. 그래서 이 결혼식은 그 동안 성소수자 운동이 경험하고 축적해온 성과와 연결망에 기반하여 진행되었다고 봐야 한다.


3. 동성결합이 제도화의 급물살을 타면서 한국사회도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사실 세계는 양극화되고 있다. 러시아나 아프리카, 중동 지역에서는 동성애혐오와 폭력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반동성애적 법률이 제정되는 한편, 유럽, 미국 사회 등에서는 동성결합 권리가 급속히 확대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프랑스에서 이성애자와 동등한 내용의 동성결합을 인정하고, 미국에서 결혼보호법(DOMA)이 위헌판결 나면서 세계적으로도 동성결합이 인정되는 추세라는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인식 변화와 함께 동성결합이라는 과제가 이전보다 현실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운동이 그 동안 이 쟁점을 사회적으로 충분히 제기하거나 공론화하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위 같은 변화 때문에 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동성결합과 관련한 운동의 과제를 점검하고 방향성을 토론하는 시기로써 지금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결혼식이라는 사건은 위와 같은 배경에서 진행되었지만 그것을 사회운동에서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는 앞으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입법운동과 관련한 성소수자 운동 경험과 동성결합 


법에 호소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동인련 회원 중 한 명이 탄원서는 왜 받는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 이거 받아서 뭐가 바뀌느냐고. 나또한 실제로 법이 우리 삶의 무엇을 바꾸어 놓는가에 대해 자주 의문을 가지곤 했었다. 사회운동에서 소송운동을 포함하여 법적 논리들을 가지고 운동을 할 때 그것이 얼마나 어떤 면에서 효과적일지를 염두에 둘 것이다. 실제로 법으로 다투어 이기는 것을 포함하여, 그 과정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참여 방법들(서명, 탄원, 청원 등)을 동원하여 캠페인을 벌이고 사회적 지지를 모아내는 방법도 효과성을 따져보는데 포함될 것이다. 법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할만한 어떤 대상으로 여겨진다. 공정해 보이는 탓에 약자들에게는 매달려볼만한 것이기도 하고 성소수자들에게는 우리의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법적 인정을 위해, 법에 호소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일반적으로도 법은 좀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지금까지 성소수자 운동의 주요한 쟁점들은 법적 변화를 둘러싸고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 차별금지법은 물론, 가장 인상적이었던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과정에서 삭제될 뻔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지키는 싸움까지, 법조문을 만드는 것, 지키는 것, 바꾸는 것, 없애는 것과 관련한 투쟁이 주요했다. 우리가 먼저 시작한 싸움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소송의 방식과 입법의 방식 둘 다 활용되었다. 


1. 기억에 남는 소송은 2001년 엑스존 사이트에 대한 청소년 유해매체물 결정 처분에 대한 것이다. 당시 대법원 상고까지 이어지고 나서도 최종 패소하는 과정까지를 지켜보면서 “아, 소송이란 이렇게 지루하면서 피말리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또 하나는 소송 비용 문제였다. 엑스존은 소송비용 마련을 위해 후원을 많이 조직해야 했고 그것도 성소수자 단체들의 활동 가운데 하나였다. 공익적 소송의 성격이었다 할지라도 쉽게 끝날리 없는 소송 비용에 대한 대책을 세워두지 않고서는 소송 당사자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엑스존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2002년 가을에는 성소수자 단체들이 청소년보호법 상 동성애자차별조항을 인권위에 진정하였고 그 과정에서 이 조항은 결국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여 삭제되었기 때문에 소송의 승패여부를 떠나 이 사건은 쟁점을 이어갈 수 있게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군형법 92조 위헌 소송 또한 결과적으로는 이기지 못했다. 군대에서 일어나는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실제로 드러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중적으로 탄원을 조직하는 등 이 소송은 중심적 역할을 했다. 


2. ‘성적지향’과 같은 성소수자 관련 조항이 입법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 과정이 처음이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인권위법을 제정하는 과정에 개입했고 그 과정에서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금지가 포함되었다. 법 제정 이후에는 기획 진정이 이어졌다. 인권위법은 아주 제한적이지만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을 호소하거나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로 활용되고 있다. 그 후 입법운동은 크게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성전환자성별변경특별법 제정 노력처럼 실제로 성소수자의 제도적 필요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면서 법안을 만들어간 경험이다. 다른 하나는 입법 과정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로써 일부 조항이 빠지거나 삭제되는 상황에 개입하거나, 매우 차별적인 조항들을 바꾸거나 없애야 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싸운 경험이다. 차별금지법안이나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이 그런 예다. 이 경우 제도를 통한 권리의 확장이나 회복 등을 기대하기 보다는, 기본권 침해나 존재부정에 맞서 싸우게 되었다. 서울학생인권조례투쟁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결국 뜨거운 논쟁 끝에 삭제될 뻔한 성소수자의 존재가 당당히 조문 안에 새겨지게 되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운동의 힘과 연대의 확장을 확인한 것이 기억에 남았고 서울시의회에서 동성애 논쟁이 그렇게 뜨겁게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드디어 우리가 공론의 장에 진입했다는 묘한 감정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조항 지키기 싸움’이 실제로 성소수자의 삶에서 어떤 가시적 변화를 가져다 줄까 생각해보면 좀 갑갑한 것도 사실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몇몇 사람들이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질문했지만, 답해줄 것이 별로 없었다. 후퇴하지 않기 위한 싸움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지리함을 참아내야 하고, 한발짝 전진하는 것이 힘든 상황을 수차례 만난다. 그래서 이러한 투쟁과 관련해서는 성소수자들 자신이 ‘나를 위한 법’이라고 느끼기 보다는 ‘차별에 맞서야 하는 법’으로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활동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법의 실효성’을 따지기 보다는 ‘이 법을 지켜야 하는 (선언적) 의미’로써 접근하게 되는 것 같다. 


4. 동성결합과 관련한 소송은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의미로 읽힌다. 결합의 권리는 기본권의 문제이면서도 사회 경제적 권리와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만약 동성결합 제도화가 이루어진다면 눈에 보이는 변화들이 나타날 것이다. 결혼이 규정하는 여러 제도들이 동성커플들에게도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제도들 속으로 ‘결혼한 동성커플’이 들어오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 아무튼 구체적인 동성애자 권리를 제도화하라는 요구는 이전까지 성소수자 운동이 해왔던 존재 인정 및 기본권 보장 등의 요구와는 다른 층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왜 동성결합 소송인가?


김승환-김조광수 결혼식을 앞두고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무지개행동>에서는 내부 간담회가 열렸다. 사실 성소수자 단체들은 지금껏 동성결합에 대한 입장을 꺼내놓고 이야기하거나 정리해본 적이 없다. 현안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은 현안인가? 이와 관련하여 결혼식을 앞두고 느꼈던 약간의 혼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결혼식은 분명하게 동성결합을 제도화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자 운동적 실천의 일환으로 준비되었다. 하지만 성소수자 단체들은 오히려 이 상황에 좀 뒤늦게 뛰어들었거나 개입의 정도나 입장에도 저마다 차이가 있었다. 이 결혼식 이후 혼인신고와 소송으로 이어지는 수순은 당연하게도 동성결합의 제도화를 위한 요구와 실천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상이한 관점의 각 단체가 충분한 토론 없이 당위적 지지를 보내기 어려웠고 동의지점을 찾기 까지도 많은 토론이 필요했던 것이다. 


각 단체들이 동성결합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일면 당연하다. 결혼 및 가족제도에 대한 서로의 입장이 달라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성결합으로 가는 여정에서 우려되는 수많은 지점들이 있고, 그 중 많은 부분은 이미 동성결합의 권리가 쟁취된 사회에서 확인되어왔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중에서 동성애자가, 그중에서 남성이, 좀 더 부유한 사람이, 또는 동성결합을 통해 동등하게 보장받을 무엇이라도 가진 사람이 동성결혼의 실질적인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동성결합은 어쨌든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정상가족 중심으로 짜여진 사회 구조 속으로 동성가족이 잘 섞여들어갈 수도 있으며, 동성결합을 제도화한다고 해서 가족 바깥의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 것은 맞다. 하지만 동성결합을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이것이 분명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흔들 수도 있고, 가족 바깥의 삶을 배제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기회를 크게 열 수도 있다. 무엇보다 많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실질적 필요와 박탈감으로부터의 회복, 평등에의 요구 때문에 동성결합을 지지할 것이다. 


소송의 결과가 어떻든 사회적 파급력은 클 것이다. 소송이 진행되면 호모포비아들과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자들은 이 소송 자체를 비난하고 공격할 것이다. 법적 다툼이 시작된 이상, 동성결합 쟁점은 또다시 좌우를 가를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선택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동성결합 제도화를 둘러싸고 운동의 방향과 전략을 함께 논의하는 과정에서 위 같은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


승소가 목적인 싸움?


앞으로 이어질 동성결합 소송은 이런 열망을 일정하게 반영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송에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에서의 운동적 실천과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 소송은 하나의 캠페인이기도 해야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법은 보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이 변화하는 것은 마지막 순간이며, 사회여론과 힘의 추가 어디로 쏠려 있느냐가 법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후퇴시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동성결합을 소송이라는 방식으로 제기할 때 여기에 너무 많은 중요성을 두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이기고 지는 사람이 존재하는 싸움인데 우리는 사실 많이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패소하면 나쁜 선례가 되어버릴 가능성도 우려되지만, 소송에 치우친 나머지 동성결합에 대한 어떤 논의는 살리고 어떤 논의는 죽일 것인지에 대한 취사선택을 하게 되는 것도 걱정이다. 법적으로 의미 있는 소송을 만들기 위해 삶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동성결합의 주체들을 ‘기획’안에 맞추어 넣어야 한다면, 중요한 여러 면을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동성결혼 소송이라고 하면 흔히 미국을 떠올린다. 최근 미국의 혼인보호법(DOMA)이 위헌 판결을 받은 뒤 미국 전역에서는 줄소송이 잇따르면서 전역에서 동성결합 인정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난 이걸 보면서 DOMA 위헌 소송의 원고였던 에디 윈저가 거의 4억원 가까이 되는 상속세를 부과받았다면 이 사람은 얼마나 부자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미국에서 소송을 걸 수 있는 당사자는 어떤 사람인가? 일단 찾아야할 권리가 많은 사람인 경우이지 않을까? 실상 사회적 자원이나 권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찾아먹을 것도 없어서 소송에도 적합지 않은 것 아닐까? 한국은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미국과 같은 경로를 걸을 것인가? 많은 부분이 다를 것이다.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소송이라는 방식을 더욱 주되게 활용하는 나라인 점도 다르겠지만, 무엇보다 실천을 만들어갈 사회운동의 경험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가 고려할 지점도 다른 나라들과 다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다음 절에서 좀 더 언급하겠다. 


요컨대 ‘한국사회 최초 동성결혼 기획소송’이라고 하는 타이틀에 너무 압박을 받지 말았음 하는 바람이다. 첫 싸움은 패소하더라도 아마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례들이 물 위로 올라올 것이고, 우리는 지속적인 캠페인을 통해서 ‘동성결합’도 꽤나 당연한 삶의 모습이며 평등할 권리가 있음을 효과적으로 설득해낼 시간과 기회를 더 많이 보장받게 될 것이다. 소송이 시작되면, 그 이후에는 지속적인 캠페인, 그리고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 



동성결합 권리 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가?


결혼을 진짜 ‘선택’할 권리로 만들기 위한 논의도 중요하다. 

앞서 동성결합이 사실 ‘제도화’를 전제하는 쟁점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제도가 명확하게 눈에 보이고 딱 그려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만큼 결혼과 가족의 모습에 익숙해서일까. 그런 이유로 제도화는 다른 여러 부분으로의 상상력을 가두기도 한다. 단지 동성결합만 제도화하려고 했을 때 여전히 결혼이라는 제도 바깥에 남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의식적으로 동성결합과 더불어 사회보장 및 사회안전망을 가족 바깥으로 확대하려는 진지한 시도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하나의 예만 들어보자면, 병원에서 동성파트너의 의료친권을 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호자를 두는 제도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장애인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중요하다. 사회보장을 가족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로 바꾸고, 실질임금 명목으로 주어지는 가족단위에 유리하게 설계된 임금체계 및 복지를 개인에게 평등하게 고칠 수도 있다. 이런 논의는 동성결합 쟁점 자체와 직접적으로 결합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분명 중요하게 고려되어야할 지점이다. 


동성결합은 제도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압축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차별금지법도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동성결합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의 시선도 강력해서 성소수자가 사회에서 맺게 되는 인간관계의 전면에 등장하기 어려운 조건인 것도 사실이다.  동성결합이 상대적으로 낯설거나 시기상조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동성결합관계가 가시적인 사회적 관계로서 충분히 보이지 않는 상황 때문일 것이다. 동네에서 공공연한 이웃으로 존재하거나, 가족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등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오픈되어 있는 동성결합관계가 드러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당장 이 관계들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동성결합권리가 급속히 진전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가 앞으로의 과제 중 하나가 될 것인데, 소송이라는 방식으로 다양한 관계를 드러낼 수도 있고 사례를 차곡차곡 모아가는 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 어쨌든 당장에 동성결합이 제도화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사회 속에 동성결합이라는 관계를 어느 정도 ‘당연한 관계’들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사람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계가 보여야 하고 쌓여야 한다. 사회적 관계에서 자리 잡는 밑거름 없이 동성결합의 제도화는 장담하기 어렵다.


‘평등’은 동성결합의 중요한 키워드다.

‘평등한 사랑, 평등한 권리’는 사실 해외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에서 보고 따온 것이긴 하지만, 동인련에서 수년 동안 사용 중인 슬로건이다. 평등에 대한 요구가 단지 이성애자와 ‘동등’해지기만을 바란다고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차별받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동등해지길 바라는 것은 당연한 욕구다. 내가 하는 사랑이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 동성파트너와 함께 살아도 세간의 시선에서 자유롭기를 바라는 것, 결합을 통해 그간 이성커플에게만 제공되는 권리를 나도 똑같이 제공받기를 바라는 것. 동성결합 요구에는 그 동안 무시당했던 존재들이 존중받고자 하는 열망과 박탈감을 극복하기 위한 바람, 누구에게는 주고 누구한테는 안주는 치사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욕구가 녹아 있다. 그만큼 동성결합은 평등할 권리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이 가능하게 한다. 결혼을 원하건 원하지 않던 간에 성소수자로 살면서 가족 바깥의 고립감과 박탈감을 느껴본 사람은 더 없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용기를 이끌어내는 운동, 과정에서의 변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동성결합은 지금 벌어져 있는 다른 어떤 성소수자 운동 과제들보다 응집력이 높은 쟁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위의 지점들을 세심하게 고려하더라도 결국 운동의 당면 목표는 동성결합을 제도화하는데 고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지를 확대하고 성소수자들의 열망을 모으고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동성결합은 충분히 강조점을 두고 조직할 수 있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결혼은 당사자들이 용기를 가지고 기꺼이 동성결합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첫 번째 케이스가 되었다는 점에서 반갑다. 이들의 용기로부터, 처음에는 하나둘 구체적인 사례를 만들고 사회적으로 공감될만한 차별을 고발하는 과정을 거치겠지만 주체들이 용기를 가지고 나설 수 있는 장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할 것이다. 이번 계기로 우리 목소리로 끊임없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기를 바란다. 소송이 스타트를 끊었다면 그 이후부터는 과정에서의 운동의 질적, 양적 변화들을 주목하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혐오에 맞서 연대를 확장하기 위한 좋은 과제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혐오에 맞서는 방법으로 동성결합과 같은 이슈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제도화 그 자체보다 과정으로서의 캠페인과 여론 확대, 사회적지지 확보가 비할 바 없이 중요하기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동성결합 소송이 본격화되면 분명히 부도덕한 존재, 가족 및 사회붕괴의 주범으로 매도하는 세력들이 동성결합 운동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식에서 오물을 뿌리는 것과 같은 호모포비아의 돌출행동이 지지를 받을 것 같아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종북 마녀사냥과 함께 다시 한번 매카시즘의 공포가 이야기되는 요즘, 우연인지는 몰라도 성소수자에게 우호적인 보도가 늘어나는 만큼, 동성애를 부도덕하고 공포스러운 낙인 집단으로 몰아붙이는 보도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집권 이후 마녀사냥과 함께 기세가 등등해진 우익들이 노골적으로 반동성애 정서를 조장하거나 일상적으로 우리가 여는 행사나 집회에서 행패를 부릴 가능성도 커졌다.(국정원 집회와 관련한 가판을 용감하게 뒤집어 엎는 우파들도 생겨났다) 

아직 동성결혼이 괜찮은 것인지 확신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성결혼이 출산이나 육아, 건전한 가족제도 유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거라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주장에는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혐오하는 우파들의 얼굴만 쳐다보며 서로 싸울수만은 없다. 그보다는 사람들에게 지지를 확대하고 연대를 넓힐 수 있는 우리 운동의 과제를 설득하는 것이 혐오를 넘어서는 중요한 전략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우회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동성결합의 권리는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동성결합 소송이 시작되면 논란이 시작될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논란을 만들어내야 하며, 이것을 잘 살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동성결합이 시기상조인가 아닌가 하는 논의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고 다들 생각할 것이다. 다만 이 운동의 방향을 어디로 정할 것인가? 우리 운동의 역량에서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무엇을 당면한 과제로 삼아야 할것인가? 에 대한 많은 토론과 합의점 도출이 필요하다.


많은 질문이 남는다. 차후 동성결합운동과 관련한 연대틀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지개행동과 같은 상시적인 성소수자 인권단체 연대체는 이 운동에 함께 결합할 수 있지만, 이 쟁점에 특별히 강조점을 두고 활동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연대를 확대하는 틀로서도 ‘차별금지법제정연대’처럼 당면한 과제를 함께 이루기 위한 목표를 거는 연대틀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틀이 언제 필요할지, 실제로 운동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무엇이 갖추어져야할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들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


서대문구청에서 김김 커플의 혼인신고를 일단 받고 법원 판단을 기다리겠다고 한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분명 이전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마레연에서 열심히 싸워서 구청들이 눈치를 보는 것 같다는 의견도 들린다. 조금씩이지만 변화가 보이고 있다. 한번 뛰어들어보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이 더 많이 보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동성결합권리를 지지하는 이유로 이전에 썼던 글을 인용하여 끝맺겠다. 나는 진심으로 이 권리가 누군가에게 자신이 인간으로 존중받고 있음을 증명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가족제도가 지긋지긋하고 싫다. 내 동성 파트너의 투병 기간 동안 전적이고 실질적인 보호자였던 나는 단 한번도 수술동의서나 치료 결정에 서명할 수 없었다. 나의 파트너가 세상을 떠나고 장례 절차에서조차 완전히 배제된 다음에야, 다른 나라의 동성 커플들에겐 ‘배우자의 시신을 처리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것도 규정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합할 권리만이 아니다. 나는 성소수자가 모든 면에서 동등하기를 원한다. 내가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있음을 증명하는 모든 경제, 사회적 권리를 원한다. 성소수자의 이 모든 권리들은 정말로 ‘가족제도’에 도전하는 것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껏 견고한 가족제도 때문에 배제되고 소외된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형태의 가족을 꾸릴 수 있기를 똑같이 바란다. 그것은 이 사회가 야비하게 박탈한 권리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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