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



죽은 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떠한 길을 걷다가 갔는지 잘 모른다. 그가 홀로 감당해야 했을 어둠의 깊이를 짐작할 수 없다. 육우당이 떠나고 이제 십 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밤은 아직 깊다. 그것은 아직 충분히 변하지 않았다. 삶은 계속되는 것이기에 우리들은 화려한 행진을 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지만, 그 모든 몸짓은 오늘날 우리의 삶을 두른 어두움의 깊이와 무관하지 않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합은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일이니, 누구에게나 그리 되어야할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그 마땅함은 우리로부터 너무 멀리 있어서, 누군가는 그들의 존재와 행복의 가능성을 넓은 광장에서 펼쳐보여야 했다. 그 현장에는 어김없이 혐오라는 이름의 오물이 뿌려졌다. 2013년의 한국이다.


그런 시절을 사는 우리가 모였다. 저마다의 사랑으로 핍박받는 자들, 여성, 장애인, 노동자 그리고 팍팍한 오늘을 사는 여느 이들이 모여 앉았다. 스스로를 우리의 친구이자 동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찾아와 노래를 부르고 함께 놀았다. 테이블에 꾸며진 꽃들은 그 본래의 쓰임을 모욕하는 이 시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름다웠다. 11월의 어느 밤이다.


문학의 밤 포스터


봄날의 벚꽃 향기처럼 달콤한 사랑노래가 있었고, 식은 커피처럼 순식간에 그 맛을 잃은 커밍아웃의 경험, 청소년 성소수자의 사랑 또는 그 정확한 이름을 몰랐던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 학교 울타리 안팎에 펼쳐진 다양한 모습의 폭력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보편적인 감정들, 그러나 보편적일 수 없었던 상황들이 많이 읽었다.


이 날 모은 이야기들에 특별히 위대한 점은 없지만, 그 모든 문장들이 우리의 이야기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성적 소수자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이지만, 또 너무나 다르기도 한 우리가 모여서, 스스로의 목소리로 각자의 삶을 꺼내놓았다.


문학집 내용 속 '병균' 연극을 하는 청소년


준비한 영상의 순서는 바뀌었고, 마이크를 떨어뜨리고 꽃병을 깼지만 그 어느 것도, 따뜻했던 그밤의 공기를 밀어낼 수 없었다. 서로 모르는 이들이 이유없이 저마다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또 끌어안는 그런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더있을까. 더없이 소중한 순간이었다.


깊은 밤이 있다면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이렇게 어두운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이번 행사에서 만난 작품과 사람들은, 우리의 밤이 어둡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 하지 않는다. 그 어둠이 두렵다는 사실도 감추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우리를 둘러싼 어둠의 깊이를 한탄하지 않고, 작은 초 하나를 켜 그 어둠을 조금 덜어내려 한다. 당연하다는 듯이.


이 밤을 있게 한 모든 이들의 헌신과 노력에 깊은 감사를 보내며, 당선작의 고백으로 글을 마친다.


‘숨 막히게 답답해서 진절머리가 나는 이 방이지만 너랑 함께 있으니까 그래도 이 방이 처음으로 견딜만해. 네가 옆에 있어서 좋다.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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