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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당 문학상

제1회 육우당 문학상 당선작 <깊은 밤을 날아서> 작가와의 대화

by 행성인 2013. 12. 25.


제1회 육우당 문학상 작품집 출판 기념 문학의 밤 "깊은 밤을 날아서"에서는 당선작과 우수작 수상작가들이 참여해 낭독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 가운데 문학상 기획자 웅과 당선작가 이은미 씨의 대화를 지면에 소개한다.


웅: 인터뷰 기사를 보니 작품을 상당히 오래 전에 집필하셨다고 나오더라고요. 7년 전 쯤이었나? 사실 육우당문학상을 시작하고 아쉬운 점이 응모기간이 촉박해 작품을 쓸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건데. 접수를 받으면서 느낀 점은 육우당문학상을 노리고 쓴 글 같지 않았던 작품들이 많이 보였다는 거에요.(웃음) 뭔가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들, 평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작가님은 처음 어떤 동기로 쓰게 되신 건가요?


이은미: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어요. <깊은 밤을 날아서> 초고는 소설 전공 시간에 과제로 쓴 소설이에요. 그때가 2005년~2006쯤이었는데 그때부터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 의문이 많아지기 시작했어요. 엄청난 빈부격차, 생태계 파괴, 전쟁,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외치면 감옥에 갇히고, 목숨을 잃기도 하고……. 불합리하고 부당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졌어요. 처음 나간 이주노동자집회를 시작으로 반전 집회,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억압받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쓰게 됐어요. 그때 처음으로 집회 현장에서 동인련 무지개 깃발을 보기도 했고요. 그때 과제로 썼던 소설들에서 이주노동자,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했어요. 


그 가운데 처음으로 동성애자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는 예전부터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 그 당시에 청소년 성소수자가 학교에서 아웃팅을 당하고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마음이 많이 아팠고 소년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어요. 거기서부터 <깊은 밤을 날아서> 초고가 시작됐어요. 그리고 그 소설을 다 쓰고 난 다음 동인련 사무실을 우연히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이 소설 이야기를 꺼냈어요. 동성애를 다룬 소설을 쓴 게 있다고 했더니 사무실에 있던 상근자 분들이 무척 좋아하면서 꼭 보여 달라고 했어요. 얼떨결에 약속을 했죠. 그래서 이 소설을 언젠가 꼭 동인련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육우당문학상 당선이 되다니! 참 신기해요.





웅: 그럼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볼게요.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로얄고시원이라는 이름이나 버스 번호 등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혹시 실제 있었던 이야기인가요?


이은미: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 경험이 조금씩 묻어있죠. 경기도 포천이라는 곳에서 나고 자랐어요. 그러다 열아홉 살 때 재수를 하게 돼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고시원에 처음 살게 됐어요. 그 뒤로도 고시원에 여러 해 살았는데 로얄고시원은 대학교 때 일 년 정도 살았던 고시원 이름이에요. 작품 속의 로얄고시원처럼 허름하고 금방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학교 앞이라 밤이면 창문 틈으로 술 취한 학생들의 고성이 새어 들어오고 방음도 잘 안됐어요. ‘로얄’이라는 이름에 전혀 걸맞지 않는 곳이었죠. 그래서 로얄고시원이라는 이름이 인상 깊었나 봐요. 다른 고시원 이름들은 다 잊어 버렸는데 로얄 하나만 기억나요.


버스 번호 세기는 대학교 때 한동안 자주 하던 놀이에요. 학교 앞에 살았기 때문에 밤이면 혼자 밖으로 나와서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렸어요. 학교가 상도동이었는데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버스를 세기 시작 했어요. 그때 곁에는 가로수가 한 그루 있었어요. 저는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좋아하는데 가로수의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는 참 쓸쓸하게 들렸어요. 어쩌다 이렇게 삭막하고 갑갑한 도시에 와서 너도 참 외롭겠구나. 숨이 막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가로수를 자세하게 보게 됐죠. 그때 소설 속에서도 묘사된 가로수 몸에 박힌 은색 번호판을 처음으로 보기도 했고요.


웅: 소설에는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먼저 소설에는 소년과 도련이 등장하고, 이들의 만남을 그립니다. 소년은 좋아하던 친구와 몸을 섞다 친구 어머니에게 들켜 두드려 맞고, 남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져서 괴롭힘을 당하죠, 가족에게도 알려져 단절되고요. 한편 도련은 가난한 생애환경 속에서 졸업 하고 바로 취업을 하지만 동시에 졸업을 하고 바로 종로에 나가죠. 주변에 들었던 이야기들을 각색한 것인지, 그렇다면 주변 동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기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요는,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되셨나요? 그리고 소설을 쓰면서 참조한 이야기나 기사, 사건 들이 있으신지요?


이은미: 청소년 성소수자가 아웃팅을 당해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성소수자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는 엄청나게 힘들지만 청소년 성소수자는 더 고통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나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제도권 교육 안에서 일상적인 모든 것을 통제당하니까요. 사람을 사랑하는 일 때문에 손가락질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다 끝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 소년을 생각하니 소년의 고통과 아픔이 전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작품 속 ‘소년’이 만들어졌어요.


도련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캐릭터로 만들고 싶었어요.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게이라고 하면 여성스럽고 야릇한 말투에 독특한 차림새들을 상상해요.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진 한 ‘사람’을 보지 않고 미디어가 만들어낸 ‘게이’라는 이미지를 보는 게 안타까웠어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련을 통해 성소수자가 내 주변 친구, 가족, 동료인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캐릭터만 설정해 두었지 정작 기사를 찾아보거나 따로 자료를 찾아보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주위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만한 성소수자들도 없었고.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몇 개 되지 않았어요.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 게이들에게 종로란 장소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 그리고 성소수자로 살아가려면 온갖 모욕과 혐오를 받아야 한다는 것. 이런 상황들을 가지고 나머지는 상상을 해서 쓴 거예요. 내가 소년이라면? 내가 도련이라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떻게 행동했을까? 내가 성소수자라면 내 둘레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그러면서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들의 사랑은 어떨까?’ 생각한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사랑과 ‘그들’의 사랑을 나누는 것 자체가 함정이고 편견이었어요.


물론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이 만연하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고 숨겨야 하지요. 그래서 자기들만의 내밀한 문화가 생긴다던지 이런 식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건 다를 수 있겠지만 사랑하고 마음을 나누는 건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같은 거죠. 본질적인 건 다르지 않잖아요. 그걸 깨달은 다음부터는 억지로 상상하지 않아도 됐어요. 내가 도련이 되고 소년이 되면서 둘의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어요.


웅: 관계가 단절된 생활 속에서 소년은 나무와 관계를 맺고, 도련은 그림책을 꿈꿉니다. 소설은 고립된 생활 속에서 저마다 자기세상 속에서 꿈을 꾸고 평소에는 인지하지 않았던 감각적인 관계, 감각적인 경험을 하는 부분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인지 소설에는 감각적 표현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히 맥주를 머금은 나무가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잠깐 낭독을 해보겠습니다.


(낭독)

일 년 전이었던가. 소년이 맥주를 마시다가 나무에게도 맛을 보여 주려고 남은 맥주를 조금 부어준 적이 있다. 그런데 술은 처음이었던 나무가 바로 취해버렸다. 술에 취한 나무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나뭇잎들이 소년의 머리 위로 후두두 떨어졌다. 그리고 나무는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노랫소리가 무척이나 묘했다. 땀에 젖은 살과 살이 부대낄 때 나는 끈적한 소리 같기도 하고, 알이 꽉 찬 열매의 알이 톡톡 터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노랫소리가 어땠냐가 아니었다. 나무의 노랫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지나가던 아저씨도, 손을 잡고 걷던 연인도, 둥근 안경을 쓴 아줌마도 모두 가슴이 쿵쾅거리고 젖꼭지가 바짝 서고 팬티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당황스러운 건 소년도 마찬가지. 소년도 호흡이 가빠지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년의 그곳이 대책 없이 서기 시작했다.


웅: 저는 이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도대체 무슨 노래이기에 사람을 저토록 ‘젖게’ 만들까.(웃음) 방에서 혼자 듣고 싶기도 했고. 혹시 이 부분을 쓰시면서 귓가에 맴돌았던 노래가 있는지?


이은미: 특별한 노래를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청각적인 걸 염두하고 썼다기 보다는 노래가 주는 반응, 감촉, 느낌 이런 것에 더 집중했어요. 나무가 노래를 부르고 소년이 듣는 것은 나무와 소년이 교감하는 것을 뜻해요. 동시에 그 노래는 세상과 단절돼서 고립당한 소년의 간절함이 만들어낸 환상이기도 해요. 노래 안에는 소년의 욕망이 담겨있지요. 그래서 그 노래는 특정한 노래가 아니라 이 세상 그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여야 했어요. 오직 소년만이 알 수 있는 노래여야 했고요. 소년이 그 노래를 듣고 잠시나마 황홀하고 달콤한 기분에 도취되길 바랐고, 소년의 은밀하고 끈적끈적하고 강렬한 욕망을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치 나무와 소년이 교감을 하듯이.


웅: 고시원생활 속에서 나무는 소년과 도련을 엮어주는 매개가 됩니다. 도련은 가로수 옆에 노상 앉아있는 소년을 바라보며 가로수를 그리죠. 평소 옆모습이 맘에 들어서, 특히 “밥 먹을 때마다 움푹 들어가는 왼쪽 보조개”가 맘에 들어 넋 놓고 보기도 했다고. 관계가 단절된 공간 속에서도 사랑이 싹트기 위해서는 일단 비주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아무튼 소년과 함께 있는 가로수를 그리면서 보고 도련은 놀라죠. “어, 진짜 나무네.” 소년은 도련이 그려놓은 그림이 맘에 든다고 말을 잇고. 한번 읽어볼까요.


(낭독)

“저, 이 나무 그림 가져도 돼요?”

“어, 이거요? 잘 그린 것도 아닌데…….”

“마음에 들어서요. 꼭 가지고 싶은데요. 주시면 안 될까요?”

도련은 그러라고 한다. 소년은 “고맙습니다.”하며 그림을 들고 자기 방으로 가고, 도련은 잠시 멍하게 서 있다가 자리에 앉으며 생각한다.

‘내가 저 애랑 이렇게 말을 많이 하다니.’

도련은 갑자기 책상 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책상 위 먼지를 물티슈로 닦고, 컴퓨터 자판 사이에 낀 과자 부스러기를 빼내고 다 쓴 메모지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러다가 책상을 쾅 내리친다. 큰일이다. 아직까지 가슴이 뛴다. 도련은 아무래도 진정이 안 되는 자기 마음을 어쩔 수가 없어서 짜증까지 난다.

‘그냥 말 몇 마디 섞은 것뿐인데 왜 이러지? 젠장.’


웅: 도련은 잊혀졌던 감정이 생기면서 스스로를 낯설어하고 경계하죠. 이는 소년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낭독)

‘이 정도 어둠이면 나무도 잠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무 생각을 하다가 소년은 총무를 생각한다. 항상 사무실에서 뭔가를 그리는 사람. 지나갈 때 투명한 창으로 얼핏 보면 어떤 때는 꼬마 아이를 또 어떤 때는 코끼리를 또 달을 또 고래를 그리는 총무. 나무가 말하던, 건너편 창문에서 나무와 소년을 뚫어지게 바라본다던 그 사람이 총무일까? 총무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다가 총무였음 좋겠다, 까지 생각하자 소년은 고개를 흔든다.

이 년 전 일어났던 ‘그 일’이 떠오른다. 그 아이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일’ 이후의 모든 낮과 밤들이 스쳐 지나간다. 소년이 마치 벌레가 된 것 같던 시간들, 쓰레기였고 더러운 구정물이었던 시간들을 떠올리자 바짝 선 수천 개의 젖꼭지들이 온몸에 돋아나듯이 소름이 돋는다. 방 한 칸의 어둠보다 더 깊고 큰 어둠이 소년을 짓눌러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런데 다시 무언가를 기대하다니. 총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또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웅: 총무를 생각하면서 과거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소년의 발목을 잡죠. 그래서 서로 진전이 없으려다가, 같은 고시원에 생활하는 ‘김 씨 아저씨’가 등장합니다. 술자리를 만들었으니 합석하자는 거죠. 총무를 중심으로 배달원, 술 취한 아저씨, 편의점 알바 같은 동네상권 당사자들의 친목이 형성되는 고시원 생태계를 잘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계를 만들어가는 채널로 재밌게 활용한 것 같고요. 혹시 고시원에 관련된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은미: 신설동에서 재수를 했는데 그 때 일 년 동안 머물렀던 고시원이 작품 속 로얄고시원이랑 흡사해요. 요즘 고시원은 남녀가 다른 층을 쓰는데 그곳은 남녀가 같은 층에 머물고 엄청 허름하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하던 곳이었어요. 하지만 방값이 싸서 사람들이 꽉 차있었어요.


고시원에는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들과 이주 노동자들, 가난한 신혼부부가 머물기도 하고 오랜 시간 동안 공부하며 신분상승을 꿈꾸던 가난한 언니와 오빠들이 함께 살고 있었어요. 제가 제일 어려서 그랬는지 아니면 유독 귀여워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들 잘 챙겨 줬어요. 먹을 걸 건네주기도 하고 늦잠 자서 학원에 못 가면 방 문 두드려서 깨워 주기도 하고.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괴팍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모두들 정이 많았고 따듯했어요. 그런데 그 시절 어린 나는 그토록 그 사람들과 부대끼고 어울렸지만 속으로는 수능 대박 나서 좋은 대학가고 그래서 저 사람들처럼은 살지는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나도 결국엔 노동자가 되고 대학교를 졸업해도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으니까요. 가끔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련하기도 하고 그들을 속으로 비웃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씁쓸하기도 해요. 저는 그 시절 그 사람들한테 빚을 지고 있어요. 부모님이 어릴 때 맞벌이를 하셔서 할머니랑 동네 할머니들이 저를 키워주셨거든요.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 혼자 있던 저를 고시원 사람들은 할머니처럼 돌봐주고 챙겨줬어요. 그래서 그 빚을 잊지 않고 앞으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웅: 소설은 아름답게 마무리 됩니다. 노래 부르는 가로수 아래 소년과 도련이 첫 눈을 맞고, 가로등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린 가로수를 위해 가로수를 깨고, 다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친구들 지금도 잘 만나고 있을까? 나중에 소년의 가족이 찾아내서 괴롭히지는 않을지, 도련의 헤어진 애인이 다시 연락을 걸어오지는 않을지. 뭐 이런 생각들. 가뜩이나 7년 전 이야기잖아요. 후일담을 따로 써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이은미: 어떤 에세이책 제목처럼 이들의 엔딩은 대책없이 헤피엔딩 같아요. 둘은 펑펑 내리는 첫눈을 맞으며 입을 맞추는, 세상에서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커플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막막해요. 수도는 터졌고 잠은 자기 글렀고 도련과 소년이 가난에서 헤어 나오기는 힘들어 보여요. 삶은 환상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잖아요. 둘이 사랑을 이뤘다고 하지만 아프고 쓰라린 현실을 감수하며 살아야 할 거예요. 그래서 둘의 미래가 그렇게 희망차 보이지는 않아요. 하지만 상처받은 두 사람이 서로를 보듬으며 사랑을 다시 시작했다는 것 자체로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 자체가 너무나 아름답고 기적 같은 일이라 두 사람이 지금까지 사랑을 하고 있던 다른 사람을 만나던 두 사람은 잘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니 두 사람은 자기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자신을 건강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겠죠. 시간이 흐른 뒤에는 마지막 장면보다 조금은 더 용감해져서 나무를 위해서 가로등을 깬 것처럼 자신의 권리를 위해 부당한 것들에 짱돌을 날리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여기까지예요. 깊은 밤을 날아서 어디로 갈지는 두 사람만이 알고 있을 거 같아요. 그리고 읽는 이들의 상상에 맡겨두고 싶어요.


웅: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를 할게요.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인상적인 구절은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낭독)

소년은 도련의 침대 위에 눕고 도련은 의자를 책상 위에 올리고 침대 옆 바닥에 눕는다. 도련이 불을 끈다. 하지만 불을 꺼도 방 안은 어둡지 않다. 창 밖 네온사인이 번쩍일 때마다 소년의 얼굴도, 도련의 얼굴도 알록달록한 빛들로 번들거린다.

‘숨 막히게 답답해서 진절머리가 나는 이 방이지만 너랑 함께 있으니까 그래도 이 방이 처음으로 견딜만해. 네가 옆에 있어서 좋다. 정말 좋다.’라는 말을 소년에게 하고 싶지만 도련은 그 말들을 꾹 눌러 담는다. 그리고는 천장 위에 다닥다닥 붙은 별 스티커를 빤히 바라본다. 도련이 오기 전에 이 방에 머물렀던 총무 가운데 한 명이 붙였을, 반짝이지 않는 별 스티커들을 보며 도련은 오랜만에 정말로 반짝이는 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만에’라는 말에 갑자기 도련은 목이 멘다. 도련에게는 ‘오랜만에’라는 말을 붙여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오랜만에, 오랜만에, 오랜만에…….’

도련이 마음속으로 되뇌다가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온다.

“오랜만에.”

“응? 뭐라고요?”

소년이 침대 밑으로 고개를 내밀어 도련을 본다. 도련과 소년의 두 눈이 마주치자 소년이 말한다.

“실은 나, 밤엔 잠이 잘 안 와요.”

그러자 도련이 갑자기 침대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소년을 꼭 껴안는다. 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떨어질 좁은 침대 위에서 도련과 소년이 숨을 죽이고 꼭 안고 있다.

서로를 꼭 안고 있는 두 사람, 그 둘을 품은 로얄고시원, 그 로얄고시원을 품은 둥근 지구가 천천히 돌고 있다. 그 지구에서 수많은 연인들이 서로를 보듬고, 입 맞추고, 사랑을 나누고 있을 것이다. 도련과 소년처럼.


이은미: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마음을 나누고 몸을 나눈 순간이에요. 두 사람은 같은 곳을 바라봐요. 하지만 그 곳은 꽉 막힌 고시원 천장. 게다가 반짝이지 않는 별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요. 하지만 서로를 마주보는 순간, 고된 현실과 아픔 따위 그 순간만큼은 모두 사라져요. 서로를 품에 안고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되어 버리거든요. 지독하게 상처받은 두 사람이 서로를 보듬는 순간, 밤에 잠들지 못하던 소년은 도련의 품에서 잠이 들 테고 도련은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반짝임을 소년을 통해 느낄 거예요. 그 순간이 참 눈물겹고 뭉클해요. 두 사람의 간절함이 느껴지거든요.


웅: 집필했던 시기랑 응모했던 시기는 차이가 많이 날 텐데, 그때랑 지금이랑 작품에 대한 작가님의 감상이나 태도도 조금은 다를 거 같아요. 특별히 고친 부분이 있으신지?


이은미: 고친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소년과 도련 나무가 주인공인 것만 빼고 거의 대부분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어요. 초고는 굉장히 감상적이고 피상적이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이야기들을 담았다면 지금 이야기는 거기서 확장해서 주인공들을 둘러싼 환경을 다루고 있어요. 특히 소년을 보면 소년의 집과 학교 소년을 둘러싼 환경들이 나오잖아요. 작품에선 다행히 소년이 죽음을 선택하진 않지만 소년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적나라하게 나와요. 한 소년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사회 환경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가장 큰 변화는 로얄고시원이라는 장소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끌어왔다는 거예요. 로얄고시원 안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살아요. 동성애자와 일용직 노동자, 미래가 불안한 저임금 노동자들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지요. 그 사람들을 통해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은 하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부와 권력을 가진 지배 계급들은 민중들을 계속해서 분열 시키잖아요. 남성과 여성을,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분열시켜서 하나가 되지 못하게 방해하죠. 그리고 불평등 같은 현실의 분노를 곁에 있는 사람에게 돌리게 해요. 그러면서 성차별이나 성소수자 혐오 같은 것들이 생기죠. 이 소설에 전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로얄 고시원 사람들을 통해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함께 연대해서 싸워야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로얄고시원에 함께 사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적이 아니라 연대해야 할 동지인 거죠. 또, 성소수자는 특별한 사람들이거나 적이 아니라 당신의 이웃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고요.


웅: 이건 궁금해서 여쭙는 건데, 혹시 이렇게 써놓으신 다른 작품들이 있나요?


이은미: 완성된 건 하나도 없어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무작정 글로 쓰지 않고 우선 머릿속으로 많이 생각하고 다듬은 다음 쓰는 편이에요. 그리고 아주 더딘 편이고요.

요즘 겨우 단편 하나를 쓰고 있는데 잘 안 풀리네요. 만약 청소년 성소수자 이야기를 또 완성한다면 육우당 문학상에 다시 응모할게요.


웅: 상금을 동인련에 전액후원하셨다고 들었어요. 왜 그러셨어요(웃음). 마지막으로 육우당문학상에 대해 조언좀 드리면 좋겠어요. 그리고 특별히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고요.


이은미: 육우당문학상을 받고 둘레에 있는 사람들이 제 소설을 읽고 해 줬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평소에 동성애에 관해서 안 좋게 생각하던 사람들의 반응이었어요. 동성애에 거부감을 느끼던 한 남성 친구는 소설을 읽고 나서 도련과 소년의 사랑을 동성애자의 사랑이 아니라 두 사람의 사랑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소년과 도련의 감정에 몰입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도련과 소년에게 몰입하고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은 동성애자들을 보면서 더럽다거나 꺼림직하다고 말할 수 없게 된 것을 뜻해요. 인물에게 몰입한 순간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거죠.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마음과 행동들을 보면서 그 사람에게 귀 기울이게 된다는 것을 뜻해요. 작품집에 실린 제 소설이나 다른 작품들이 한 사람의 세계관을 바꾸거나 세상을 뒤흔들 수는 없겠지만 이 작품들을 읽은 누군가는 언젠가 주위에 친구나 가족이 성소수자인 걸 알았을 때는 좀 다르게 행동할 거 같다는 생각은 했어요. 외면하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을 마주보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육우당문학상이 성소수자들만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평등한 세상,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도 함께할 수 있는 문학상이 되길 바랍니다.


웅: 이은미 작가님 모시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