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 (동성애자인권연대)



자긍심: 동성애자로 즐겁고 건강하게 나이 먹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30대 중후반. 누군가에겐 많고 누군가에겐 여전히 한창인 복잡한 나이다. 지난해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주인공 서연--미모의 한가인이 분했으며 나와 같은 96학번--은 30대 중후반의 나이를 두고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고 그냥 맵기만 한" 매운탕 같다고 했다. 어떤 날은 나이 먹는 것이 끔찍해 피터팬 콤플렉스에 시달리다가도 “여전히 너는 젊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는 나이. 아직도 사춘기의 감수성이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매운탕 같은'; 삼십대 중반의 나에게 이번 <사오십대 퀴어토크쇼(이하 ‘토크쇼’)> 에서 먼저 산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토크쇼’에 온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도 비슷한 이유로 모였을 것이다. 소수자들에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가혹한 세상에서 동성애자로 자긍심을 갖고 건강하게 나이를 먹으며, 사랑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이성애자나 동성애자 모두 나이를 먹으면서 저마다의 사연을 품게 되지만 배제와 소외를 겪어 온 동성애자들의 삶은 결국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인 셈이다. 개인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솔직하고 대담했던 토크쇼를 구경하는 중에 나보다 먼저 태어나 살아 온 ‘선배’이면서 함께 나이를 먹고 있는 동시대의 ‘친구’인 그들의 이야기에서 어느덧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내 모습을 비춰보고, 오버랩하게 되었다.



상처: 평범한 바람이 이상일 수밖에 없는 현실

 

나는 국민정서에 어긋난다며 동성애 영화 상영을 금지했던 90년대 중반 커뮤니티에 ‘데뷔’했다. 우리는 어딘가에서 동성애자 개인으로 존재하면서 고민하고 고뇌했지만 스스로를 감추느라 바빴고 위축되어 있었다. 세상은 우리를 존재하지 않는 이들로 여겼으므로 나의 사랑도, 동성애자로서의 ‘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토크쇼’의 패널 가운데 한 분의 말처럼 나 역시 좁고 칙칙한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거나 피시통신의 연결음 소리에 희열을 느끼며 그저 ‘나와 닮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만으로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단순한 사실, 그 자체로 힘이 되었다. 벽장의 안과 밖은 두툼하지만 또 연약했다. 그 시간, 나와 그, 그녀들은 거울처럼 서로를 마주보며 시대를 함께 보냈다. 20대였던 나는 30대가 되었고, 그때의 언니·오빠들은 사오십대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를 회고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자신의 흔적을 한켠으로 미뤄두곤 한다. 여전히 많은 동성애자들이 벽장 안에 있거나 다시 ‘현실’이라는 벽장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그래서 우리 동성애자들의 삶은 자신을 지키며 사는 그 자체가 때로는 투쟁이다. 평등하지 않은 사랑, 인정받을 수 없는 권리, 끊임없이 요구되는 침묵 속에 인내한다. 어찌보면 누구나 누리는 현실이 우리에겐 이상이고 희망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 괴리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용기: 함께 걷는 이들의 쉽지 않았을 ‘흔적’이 주는 치유

 

‘토크쇼’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패널로 나선 언니·오빠들이 걸어온 쉽지 않은 삶의 흔적을 생각한다. 그 흔적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사연일 것이다. 세상이 강요하는 벽장을 뚫고 나온 동성애자로의 자기경험이 상처와 흉터를 넘어 결국 거기 모인 사람들이 울고 웃으며 함께 걷게 할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Name *

Password *

Link (Your Homepage or Blog)

Comment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