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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동성애자인권연대 4월 정기 회원모임 후기 - ‘함께하면 행복해요’

by 행성인 2014. 4. 30.

 

마루(동성애자인권연대 신입회원)

 

 

 


저는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서른살 게이에요. 입대 전 만난 마지막(?) 여자 친구와는 군복무 중에 이별을 했고, 군대를 다녀온 후 첫 동성 애인을 만나면서 데뷔를 했지만 아직 게이라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웠던 그 때 애인을 통해 알게 된 선배 게이 형님의 조언이 있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 단체에 가입해서 사회의 다양한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를 만나 교류한다면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돈하는데 도움도 되고 더욱 행복해진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용기가 부족하고 귀찮다는 애매한 이유를 핑계로 마음 한구석에 미뤄놓았습니다. 다행히도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저 스스로 게이임을 확신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가끔 주변의 아는 지인들과 교류하는 것 이외에 단체나 연대에 참여해 본 적은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가진 정치에 대한 관심은 성적 소수자인 나를 인권의 진보에 기여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 갖도록 이끌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가르쳐 주지 않는 평범한 교육을 받고 권력과 자본에 종속된 미디어 속에서 살지만, 약자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말하는 언론을 접하려 했고 평소에도 말이나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에게 폭력을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정도의 반성은 하고 살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호모포비아에 반박하는 댓글을 올리거나 동성애 차별 반대 컨텐츠를 공유하며 서명운동이 있으면 참여하는 소극적인 정도였고 오프라인상에서 성소수자 단체에 관한 활동을 하진 않았어요.


올해 초 아주 우연한 계기로 트위터를 통해서 저와 취미가 같은 게이를 발견하고 만났습니다. 그분이 동인련에서 청소년 상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그동안 성소수자 인권단체로부터 느낀 ‘마음의 빚’을 덜기 위해 행동을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침내 동인련의 후원 회원으로 가입을 하게 되었고 가입한지 두 달이 지나 처음으로 정기 회원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과거 좋아하는 정치인의 팬 카페 회원들과 오프라인 모임 활동을 한 적이 있어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 지 알고 있었지만 외부로 드러내기 쉽지 않은 성적 정체성과 관련된 오프라인 참여는 처음이라 기대도 되고 떨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문을 여는 순간 떨리는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모두들  스스럼없이 맞이해주셨거든요. 부당한 차별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낯선 사람을 맞이할 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사람이 모인 곳의 보편적인 특성 상 기존 구성원끼리 더 친하다는 느낌이 위화감을 주지만 먼저 다가와 물어보고 본인과 동료를 소개해주셔서 생각 했던 것 만큼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정기모임에 참여한 회원 중에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이미 친구를 맺은 분들이 적지 않아 낯익은 얼굴을 보며 연예인(?)을 실제로 만난 듯해서 재미있었습니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제 생일도 축하 파티 없이 지나갔는데 동인련에서 케이크와 함께 축하해주셨지요.

 

 

 


그저 반갑게 인사하고 즐기기만 하는 모임이 아니라, 이달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정해진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서 좋았습니다. ‘청소년과 비청소년이 함께하는 동인련’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과 비청소년 사이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고 상황극도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리허설 없이 하는 즉흥연기는 처음이라 어려웠던 저와 달리 굉장히 리얼한 연기로 배우의 포스를 발휘해주신 회원 덕분에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비청소년보다 더 어려운 환경속에서 사는 청소년기의 성소수자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어요. 또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에 항거하고 장애인 인권 보장을 위해 힘쓰다 화재 사고로 돌아가신 故송국현 님 추모문화제 ‘분홍종이배의 꿈’ 에서 함께 할 분홍종이배를 접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추모문화제에 참석하여 함께 장애인들이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의미 있었습니다. 동인련 회원의 한 사람으로서 인권 행사에 연대하여 무지개 깃발을 직접 들고 있을 때는 정말로 묘한 감정이 들었어요.

 

 

 


어떤 모임에 참석하든 처음에는 최대한 끝까지 함께하려고 하는지라 모임과 행사 참여 후 이어진 뒷풀이에서도 마지막을 지켰는데요,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화기애애함과 즐거움이 이어지고 억지로 술을 권하지 않는 것도 좋았습니다. 개인적인 고민이나 연애상담을 물어봤을 때 회원님들께서 앞다투어 좋은 이야기를 해주셔서 많은 위로도 되었답니다. (웃음)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동인련에 가입하길 잘 했다. 모임에 참석하길 잘 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고 연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업이나 학업 등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소수자 인권 향상을 위해 힘쓰는 회원 분들을 보면서도 참 멋졌습니다. 이제 정기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소모임 활동도 참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능력 중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작게라도 기여하고 싶어요.


동인련 정기모임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함께하면 할수록 더 행복하다’라는 것입니다. 모임에서 만난 동인련 회원 중에서 스무살 또는 그 이전에 가입했다는 회원분을 보고 부러웠습니다. 많은 혼란과 고민을 겪다 6년 전에 정체성에 대해서 확신을 했고 근래 들어서야 비로소 ‘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많은 분들을 만났다면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더 일찍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이제야 발 딛은 지금의 동인련을 만들고 앞으로 만들어갈 모든 분들께 고맙습니다. 끝으로 외쳐봅니다. “함께하면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