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쟁 없는 세상'에서 기고 받았습니다.
디에고 (동성애자인권연대)
저는 성소수자입니다. 사회에서는 저의 존재를 불편해하고, 가급적 드러내지 말 것을 종용합니다. 철저하게 이성애 중심적이고 성별에 따른 위계화와 규범이 작동하며,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심한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내는 목소리는 이단이고, 말썽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날카로운 가시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여부가 곧 생활에서의 차별로 연결되는 사회는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는 이러한 폭력을 구조적으로 정당화합니다. 성에 대해 보이는 한국 사회의 태도는 온통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하고 저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의 섹슈얼리티를 억압하고 혐오하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군사주의는 여기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징병제와 군대는 남성성, 그것도 폭력적인 전투적 남성성만을 습득하기를 강요하고 있으며 이상적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런 남성성에 해당되지 않는, 다른 젠더의 취향과 성향을 가진 이들을 열등하다고 여겨 훈련 혹은 교육을 통해 바로잡아야 할 존재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군사주의는 그대로 학교에서 청소년을 향한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적'으로 설정된 사람들을 향해 군비를 증강하고, 군사훈련을 계속하며, 무기로 위협하고, 심지어는 전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군사주의에 깊은 회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전쟁에서 결정권자들은 서로 상대 권력자뿐 아니라 주민들 모두를 비인간화하고, 그 주민들을 향해 끔찍한 살상을 저질렀습니다. 권력 다툼의 희생이 되는 건 권력을 갖지 못한 시민들이었습니다. 군대는 누구에게 향할지 알지도 못할 무기들을 가지고 강제로 훈련을 시키며,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감수성 대신에 호전적이고 정복적, 공격적 기질을 가지도록 하는 군생활을 징병제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 있습니다. 명령과 철저한 상하 권력구조를 통해 불합리한 일들을 따르거나 참아 내도록 강제하는 군사 조직에 대한 회의감은 곧 이러한 곳에서 내가 머무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병역 거부에 대한 첫 번째 고민은 바로, ‘용감하게’ 말을 듣지 않는 상대를 무찌르고 정복하려는 감성보다 ‘나약하게’ 상대의 말을 한 번 들어보고 대화를 해보고 싶은 감성을 조금씩 더 앞에 두게 되면서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동성을 좋아하면서 강요받아온 성 정체성에 의문을 품게 되면서 가져오게 된 두 번째 고민을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교실 안 폭력적 교육 시스템은 저를 ‘계집애 같은 아이’, ‘곱상해 보여서 사회생활이 걱정되는 아이’로 취급하고 모질게 괴롭혀 왔습니다. 교실 안에서도 작동되는 군사주의는 남학생에게 ‘씩씩하고 상대 성에 대해 정복적인 젠더를 추구할 것이며,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성인’, 여학생에게 ‘방정스럽지 않고 조신하며 다소곳하게 자랄 것이며, 수동적이고 얌전한 성인’으로 자라날 것을 강요하곤 했습니다. 교실이나 병영이나 모두 이분화된 성별 구조를 통해 이 문제 많은 사회가 원하는 특정 ‘상품’으로 만들어질 것을 추구하고 있음을 볼 때 젠더 다양성이나 성 소수자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폭력적 군사주의를 성찰하고 극복해야 함이 선결 과제임은 너무나 명백했습니다. 병역 거부에 대한 저의 두 번째 고민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군대 내에서도 성소수자의 위치는 매우 위태로우며, 극심한 유무형의 불이익과 고난 앞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폐지되지 않고 있는 군형법의 동성애 처벌 조항과 병영 안에서 성소수자 군인에 대한 인권 침해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국방부의 태도를 보면서, 또한 나의 섹슈얼리티, 성적 지향 그리고 성 정체성을 일탈로,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성애 중심적 사회의 폭력성을 경험하면서, 군대 문화가 장려하는 마초적 남성성의 허상이 이렇듯 주위에 상처를 주는 것임을 실감하였습니다.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고 싶고, 주체적으로 살고 싶고, 타인과 적대하기보다 함께 서고 싶은 저는 군비와 병력, 무기의 힘을 믿고 듬직하고, 의젓하고, 어엿한 대한의 건아로 사는 것을 거부하고 대화와 평화적 생존권을 추구하며 변태적, 일탈적, 도착적, 비정상적으로 불리는 취향을 가진 문제 많은 이반으로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자꾸만 나를 억압하려는 군사주의에 저항하면서 병역 거부를 고민하고 있지만, 병역 거부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가 아닌, 과정으로서 생각하며 평화와 젠더 평등이 같이 갈 수 있는 길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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