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근 10여 년 간 성소수자운동에서 군형법은 주요 이슈로 다뤄졌다. 특히 군형법 92조6(구 군형법 92조) 추행죄에 명시된 ‘계간’ 조항은 오래도록 논쟁이 되어온 항목이다. 2000년 이후 수차례 개정안이 제출되었고 부분적으로 개정되기도 했지만, 군대기강과 위계를 이유로 조항의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5월 21일, 군 관련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는 공동으로 <제4회 SOGI 콜로키움 ‘군형법과 동성애’>를 열었다. 부제는 ‘군형법 제92조의6을 둘러싼 동성애 담론과 성소수자의 시민권’이다. 콜로키움은 2008년~2014년까지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를 위해 활동했던 자료들을 모두 모아놓은 백서를 처음 선보인 뜻깊은 자리이기도 했다.
콜로키움은 세 명의 발표자들의 발제와 질의응답시간으로 구성되었다. 각각의 내용은 법조항 자체에 대한 분석과 담론과 구조상의 접근, 운동의 변화와 과제로 층위를 달리하며 군형법문제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발표들은 대체적으로 새로운 방향을 선언하기보다 그간 군형법을 둘러싸고 논의된 다층적인 이야기와 활동들을 밀도 있게 정리하고 해석한 느낌이다.
먼저 이경환 변호사는 <군형법 제 92조6의 문제점과 법적 쟁점>을 주제로 군형법의 형성배경을 톺아보고 추행죄의 본질을 따지며 그 문제점을 살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추행죄 항목의 모호성과 불명확성을 분석한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군형법상 추행죄에 있어 ‘추행’의 의미를 “정상적인 성적 만족 행위에 대비되는 다양한 행위양태를 총칭하는 것”으로 두며, 그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사례를 ‘계간’으로, 이른바 ‘남성 간 항문성교’로 설명한다. 그에 대해 발표자는 군형법 내에서 추행죄가 모호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단적으로 추행죄는 피해자의 고소 취소 등으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경우에 처벌할 수 있는 제도인데, 사실상 강제추행죄나 강간죄에 대해 보충적으로 적용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문제는 피해자 역시 추행의 혐의로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추행죄의 모호한 입지를 조항 내 단어 자체의 불명확성과도 연결시킨다. 가령 ‘항문성교’의 단어는 중립적이라고 할지라도 처벌대상에 이성간 성행위가 포함되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며 처벌행위의 기준 또한 모호하다. 이는 추행죄가 동성애혐오담론 아래 만들어졌다는 혐의를 주기 충분하며 오용될 소지 역시 큼을 암시한다. 발제자는 작금의 군형법이 동성애 행위를 과도하게 처벌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최소침해의 원칙’에 위배되고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진행된 추지현 연구자의 <군대와 군형법을 둘러싼 동성애담론과 그 사회적 영향>은 앞서 법조항 자체를 분석한 것과 접근을 달리하며 군대의 동성애규율을 둘러싼 담론적 측면을 다룬다. 그는 군대가 국가안보와 강박적 군사주의, 남성만의 징병제를 기반으로 섹슈얼리티규범을 강화시키는 이성애주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그에 의해 유지되는 국가장치라는 전제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발제 초반 발표자는 군대 내 동성애가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기만 한 것은 아님을 언급한다. 일례로 군대 내 동성애 관련 조항에는 항문성교로 언급되는 동성애 처벌조항 외에도 군대 내 동성애자의 존재를 적극 인정하며 이들의 인권을 지지하는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 「부대관리훈령」 등의 제도들이 있는 것이다. 발표자는 둘을 병치시켜 동성 간 성행위를 범죄화하고 병리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동성애자의 인권보호를 강조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지적한다. 이른바 ‘동성애 없는 동성애자’는 동성애자에 대한 군대의 모순적 입장이 도출해낸 ‘동성애 없는 동성애자 군인’, ‘같은 남성 군인 되기’의 기획으로 이어짐으로써 ‘착한 게이’ 군인 되기라는 일종의 패싱(passing)을 수행하게 된다.
더불어 추지현 연구자는 그간 군인권운동이 아웃팅방지나 성정체성 표현의 자기결정권 등을 내세웠던 지점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동성애자 군인당사자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입장은 군대 내 동성애를 공적인 것으로 정초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며 정체성과 군대가 매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한계를 낳는다. 이는 자연히 성정체성/성적지향을 숨기고 이성애 남성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효과로 나아간다. 남성이 ‘성욕 과잉’이라 일반화하는 담론은 남성성에 대한 편견이기도 하지만, 성폭력을 성욕의 문제로 등치시켜 남성과 대비적으로 여성을 성폭력을 피할 수 없는 대상으로 놓고, 동성애를 ‘과잉성애’로 치부함으로써 범죄화할 구실을 마련한다. 이는 오히려 이성애 남성 군인의 지위를 성폭력의 가해 혐의로부터 안전지대를 점하도록 하는 효과를 낳는다.
첫 번째 발제가 군형법조항 자체의 분석이라면 두 번째 발제는 구조적 접근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자가 추행죄에 함의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과 처벌가능성을 다룬다면, 후자는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이슈를 넘어 구조적 층위에서 남성들만의 징병제와 군사주의에 대한 강박, 이성애중심적 담론 생산으로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
뒤이어 한가람변호사의 <범죄화와 시민권의 간극-군형법 제 92조의6과 성소수자운동>은 위의 두 논의들을 참고하여 군형법상 ‘추행’ 폐지운동을 반성적으로 살펴보는 일환으로서 운동의 역사를 개괄한다. 여기서 그는 군형법 운동을 세 시기로 나눈다. 그 첫째는 2008년 대법원 판결과 구 군형법 제 92조에 대한 군사법원의 위헌법률심판제청과 더불어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를 발족한 시점이다. 이후의 시기는 2010년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과 군 네트워크의 요청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위헌견해제출을 결정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시점이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 시기는 2013년 군형법상 성폭력 관련 조항이 개정되면서 김광진, 남윤인순, 권성동 의원이 각각 군형법 개정안을 발의하게 된 시점이다.
발표자는 군형법상 추행죄가 불명확하고 모순된 지점이 있다는 앞 발제들의 지적을 공유한다. 그 속에서 발제자는 ‘동성애 허용=사회적 혼란=국가안보 위협’의 도식 아래 군형법상 ‘추행’죄가 성소수자를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비시민 또는 불법화된 존재로 삼는다는 관점을 취한다.
그의 발제는 군형법 운동을 진행하면서 군 관련 인권활동가뿐 아니라 법조계나 의원 등 정책입안주체들과 네트워크를 넓혀나간 점이나, 운동방식에 있어서도 기자회견, 서명운동, 입법청원 등 조직적이고 첨예해진 일련의 변화를 언급한다. 하지만 정교화된 운동의 이면에는 ‘그래도 추행죄는 있어야하지 않느냐’는 국회의원들의 배타적 선긋기나 반동성애세력이 조직화되었던 점 또한 존재한다. 발표자는 ‘엄격한 명령체계나 위계질서’야말로 성폭력의 중요한 요인임에도 동성애로 인하여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식의 억지논리가 여전히 위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유효하게 쓰이고 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군네트워크 활동가로서 부침을 겪었던 경험과 함께 발제문의 문장들 안팎을 넘나드는 발표를 진행했다. 결론부에 이르러 그는 현재 군인권운동의 실천과제와 고민을 정리하는데, (추행죄에 대한) ‘위헌결정이 동성애를 허용하지 않느냐’는 반박을 넘어설 수 있는 프레임을 어떻게 짜고 환기시켜야할지에 대한 고민은 콜로키움 이후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이다.
전반적으로 콜로키움을 통해 군형법에 대한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첨예한 고민들을 짚어볼 수 있었다. 콜로키움은 누적된 군인권운동의 시간만큼이나 고민들이 섬세하게 다듬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발제상의 흥미는 어려운 용어들과 특정 이슈의 낯선 인상 탓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라면 접근과 이해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법과 군대라는 특수한 영역이 교차해서일까. 활동가들 중에서는 군형법이슈가 여느 이슈들에 비해 환기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질의응답시간에는 군형법에 대한 대중들의 접근이 어렵다는 지적, 표현의 언어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군형법은 성소수자운동의 다른 이슈들과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한가람변호사는 실제로 군형법상 동성애 혐오적인 내용들이 사회의 법조항을 개정하는데 직접적인 반대요소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군형법이 특정 집단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의 전반적인 이슈로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다. 국가와 남성의 큰 틀에서 군대내 동성애문제를 성폭력문제와 함께 고민할 것을 주장한 추지현 연구자의 주장과도 공명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질의응답 중에는 군대 내 아웃팅 문제를 놓고 활동가와 연구자 개인마다 비중이나 관점차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구조적으로 볼 때,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숨기고 군복무 하는 것은 남성 일반의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의 소지가 크다. 사실 군대 바깥에서도 아웃팅 문제가 성정체성을 사생활 문제로 수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비일비재하지 않던가. 하지만 당사자들과 직접 접촉하는 활동가들에게 아웃팅은 다른 온도로 체감된다. 닫힌 공간 속 위계사회라는 군대특성상 사병들의 성정체성이 아웃팅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두 입장을 대치시킬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중요한 과제는 아웃팅방지와 더불어 당사자들의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비범죄화하는 것, 동시에 군인을 남성/여성 일반이 아닌 개별적인 성적주체로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접근들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여전히 군형법은 진행 중인 사안이다. 2014년 진선미의원은 3월17일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안을 입법 발의했다. 입법예고기간동안 7만 건이 넘는 반대의견이 게시되었다. 그런가하면 현재 남인순 의원의 군형법 일부법률개정안(2013년 1월)과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를 요구하는 5,690명의 입법청원서(2013년 6월)가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콜로키움은 군형법운동 백서가 나온 지금 그간의 운동을 평가하고 나아가 운동의 방향을 고민하며 운동의 범주가 커질 필요를 확인하고 공감하는 자리였다는데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서사와 사례를 모을 필요가 있다는 한가람변호사의 언급은 이후 다각적으로 진행될 활동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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