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우리는 참으로 암담한 소식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국제인권기준으로도 강력하게 금지되어 있는 겨울철 철거가 폭력적인 공권력 주도로 자행되어, 결국 다섯 명의 용산 철거민과 한명의 경찰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노점상 자리 터라도 보장받았으면 좋겠다던 70대 할아버지, 늦둥이 아이를 둔 50대 가장. 유족들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시신 앞에서 타다 남은 신발조각을 보며 이 등산화가 내가 사준 등산화라고, 이 옷이 내 남편의 속옷이라고 통곡해야했습니다. 시신이라도 내 손으로 거두겠다는 유족들의 외침은 가족의 동의와 확인절차가 무시된 경찰의 일방적인 부검으로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

  18개 중대 1,400여명의 경찰병력과 40여명의 경찰특공대가 ‘눈 붙이고 잠잘 집이라도, 입에 풀칠 하기 위해 노점이라도 달라고’ 외친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며 토끼몰이로 진압했습니다. 이미 촛불시위 때도 보았지만,  여전히 이 정부는 배후세력 운운하고 거짓말과 꼼수로 일관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일어날까요?

  이미 서울은 ‘낡고 미관상 흉하며,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벌려진 재정비 사업으로 이곳저곳이 공사장 판입니다. '뉴타운‘은 강남북 불균형을 보완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되었지만, 사실은 서민과 임차인을 거리로 내쫓고 고가의 아파트를 건설하여 대기업 건설사와 일부 투기꾼만을 배불리는 사업이었습니다. 용산 또한 ’국제업무단지’조성을 목적으로 초고층 건물, 최고가의 주택단지 건설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때문에 멀쩡한 마을은 순식간에 헐리고 주민들이 함께 가꾸던 삶의 터전은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거주권이야 말로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보편적인 최소한의 권리라는 사실은 받아들여질 리 만무합니다. 수 십 년간 가까이 지내며 정을 나누고 추억을 쌓아왔던 지역 공동체의 따뜻한 가치들은 폭력적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파괴되고 있습니다. 



  낙원동, 돈화문 주변의 게이들의 쉼터는?

  서울시는 2007년 3월, 낙원상가 일대를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지정해 관련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9월, 돈화문로 주변을 ‘제2 인사동 거리’로 구성하여 ‘고품격 전통문화 거리’로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이곳은 가장 많은 게이들이 모여 나름의 문화를 만들고 있는 곳입니다. 또한 여타 강남, 홍대, 대학로와 다르게 골목골목에 늘어선 ‘간판’들이 게이들의 이정표가 되어 서로 어울리며 관계를 만드는 장소이며 이들을 상대로 생계를 유지하는 게이들에게는 삶의 터전인 곳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도 용산과 같은 재개발이 시작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요. 편히 술을 마시던 게이바, 이른 새벽 해장을 하기 위해 찾던 싸고 맛있는 낙원동 해장국집, 한참이나 앞에서 망설이다 그이의 손목 꼭 붙들고 문을 열어 제꼈던 어느 모텔. 하지만 이 뿐이겠습니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수 십 년간 다져왔던 게이 공동체와 인간관계의 틀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함께 만나 서로의 삶을 보듬어야 합니다.  미래의 희망들을 서로의 가슴에 심어주고 힘을 북돋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만남의 장소가 없다면, 무엇보다도 다수의 개별자들이 모여 하나의 열망으로 집합될 수 있는 공동적 만남의 장소가 없어진다면, 이 공동체는 미래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어쩔수 없이 추억으로만 기억할 것인가?

  다시금 용산을 떠올려 봅니다. 경제성장, 고용창출, 도심정비란 허울로 당장 편히 누울자리, 입에 풀칠할 곳이란 사람들의 기본적인 요구는 간단히 무시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그리고 우리 또한 이 힘없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했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모르기도 했고, 타인의 일로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살고 있는 힘없고 가난한 대다수의 서민들은 끊임없는 재개발과 뉴타운의 유령 속에서 잠재적 철거민입니다. 


  낙원동, 돈화문 주변도 언젠가는 개발의 흐름 속에 들썩이게 되겠지요.  밤새 게이들의 웃음으로 가득하던 포장마차의 욕쟁이 아줌마도, 3천원하던 순대국을 정성스레 퍼주던 식당의 할머니도 어쩔 수 없이 밀려나고 내쫓기겠지요.  게이바를 운영하던 분들의 억울한 사연이 이반시티에 올라올 수도 있고, 매주 게이들로 가득하던 그 거리가 어느새 공사장 펜스로 가로막혔을 때 영문을 몰라 가슴 답답해 할 게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대책 없는 재개발이 계속된다면, 이와 함께 발생하는 살인적인 철거민 진압을 이번에도 끝장내지 못한다면, 지역 공동체 보호와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한 진정한 도시재생 방안에 대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개발의 어두운 그림자가 동성애자 공동체를 덮쳐올 때에 우리는 망연자실하게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용산의 원한과 억울함을 외면한다면, 마찬가지로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에 우리의 목소리를 그 누구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값진 교훈을 얻었지만, 너무나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옷깃을 여미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대책위 홈페이지에서 고인들을 추모하는 온라인 분향소를 설치했습니다.
   방문하셔서 고인들의 넋을 위로 합시다
   http://mbout.jinbo.net

* 성북동 무지개[데스크 칼럼]은 이번호가 마지막입니다. 더욱 새로워질 웹진 '랑'을 기대해주세요. 
   

  장병권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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