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동인련 성소수자노동권팀)


1년 넘게 한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이성애자인 척 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나는 주로 동갑내기들과 일을 했는데 그들 대부분은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5개월을 일했고, 내가 일한 기간 동안 총 6명의 친구들이 나와 함께 일하다 그만두었다. 금방 그만두겠다는 생각에서였을까. 그들과 나는 최대한 서로 정을 안 주면서, 서로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서비스직이라는 이름 아래 손님들에게 사이 좋아 ‘보이게’ 일을 했고 무수히 많은 잡담을 나누었다. 참 신기하게도 사람이 바뀌는데도 잡담의 주제는 남자연예인 혹은 남자친구 이야기로 항상 같았다.


나는 바이섹슈얼이다. 남자친구 이야기? 못할 것도 없다. 좋아하는 남자연예인도 넘쳐난다. 그런데 불편했다. 너도 저런 사람이랑(남자랑) 결혼하고 싶지 않아? 너 (남자랑) 소개팅 안 할래? 결혼을 잘 하려면 남자 대여섯 명은 만나야 한대 등등. 아주 당연히 나를 이성애자로 가정하고 나누는 대화들이 너무나 어색하고 불편했다. 가끔가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내게 ‘윤수는 왜 말이 없어? 혹시 여자 좋아해?’라고 장난스럽게 물어올 땐 식은땀이 비죽 흘렀다. 그래! 나 바이섹슈얼이다! 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기껏해야 나는 그들의 대화에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연애에 관심 없어서’라고 그저 일을 열심히 하는 척을 할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사실 어차피 지나갈 사람, 커밍아웃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으나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커밍아웃하면 바로 짤리겠지.’

 

현재 한국에 커밍아웃해도 짤리지 않을 직장이 있긴 할까? 말은 자진퇴사지만 대부분이 해고로 인한 퇴사이지 않을까? 도대체 직장에서 커밍아웃이 자유로운 분위기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요즘 퀴어이기 때문에 ‘안전한’ 직장을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 퀴어에게 ‘안전한’ 직장이 있긴 한 것인가.

  

노통권팀의 두 번째 세미나 ‘해외의 성소수자 노동운동 살펴보기’는 이주사의 발제와 회원 간의 토론으로 이루어졌다. 미국과 영국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성소수자 친화적 노조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특히 영국의 경우 국가 단위의 노조(TUC)에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포함되어 있고 매년 TUC LGBT 대회를 개최하며, 모든 주요 노동조합에 LGBT 그룹이 존재한다고 한다. 또 성소수자 혐오에 대항하는 방법에 관한 책자를 발간한다든지, TUC홈페이지에 해외에서 일할 성소수자를 위해 각국의 LGBT 정책과 분위기를 자세히 기재해 두기까지 한단다. 그래서 성소수자들이 일하기 좋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면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 간다고 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성소수자 혐오가 아예 없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조가 혐오로부터 성소수자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니 놀라웠다.


2012년 영국노총(TUC) LGBT대회 모습 사진출처 http://electmartin1.blogspot.kr/2012/07/taking-pride-tuc-lgbt-conference-2012.html


미국의 LGBT 노조 형성과정도 흥미로웠다. 미국의 경우 1930,40년대 선상노동자조합에서는 공산주의자들과 동성애자, 소수인종 노동자들이 함께 반동적 노동조합을 동성애자 권리를 지지하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조합으로 변모시켰다고 한다. 이 사례는 성소수자들만이 아니라 소수자들 간의 연대를 통해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성소수자가 왜 다른 노동자들과 연대해야 하는가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극명한 예라 생각한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성정체성으로 인한 불편함을 겪을 때 노조가 문제 해결에 도움일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노조는 꼭 필요는 하지만 보수적인 조직이다. 또, 막연하게 성소수자에게 배타적인 조직일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메이데이나, 노동자대회 등에서 민주노총이 성소수자를 동지라 일컫는 것도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외국의 사례들을 들으며 한국의 노조들도 언젠가 저런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동시에 이제껏 한국에서 LGBT 노조를 만들기 위해선 사회적으로 LGBT 친화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LGBT 노조가 그러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성소수자 노동조합 '일터의자긍심(PrideAtWork)' 사진출처: https://www.facebook.com/PrideatWork.National


토론에선 과연 한국이 미국 혹은 영국처럼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눴던 이야기 중 인상 깊은 구절을 속기록을 통해 그대로 옮겨본다.

 

“조급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성과가 없는 것에 대한 무력감과 힘듦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 전전긍긍해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오리


“계속 활동한 것 자체가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주사

 

안전한 직장을 ‘찾을’ 생각이 아니라 안전한 직장을 ‘만들’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생각한다.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인데 전전긍긍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성과는 있다. 그리고 안전한 직장을 만드는 밑바탕은 건강한 노조일 것이다.

  

해외 LGBT 노동운동의 경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5월 9일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리는 <노동절 기념 성소수자 노동권 포럼>에 함께 하면 된다. 해외 LGBT 노동운동 경험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차별금지법제 도입의 필요성 및 노동조합은 일터의 성소수자 평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형태씨가 쓰신 첫 번째 세미나 후기의 말을 인용해 후기를 마치려한다.


“사실 성소수자 노동에 어려운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야기 하지 않아서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함께 각자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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