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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와 노동

성소수자의 평등한 노동권을 위한 노동운동의 역할

by 행성인 2014. 11. 11.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1. 중층적이고 복잡한 차별들


“차별은 단순히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불리한 처우를 받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차별은 임금과 노동조건, 눈에 보이는 인격적 모욕을 포함하여 그 노동자를 위계화함으로써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게 만드는 다양한 기제의 작동 과정이다. 작업복 색깔, 호칭, 휴가사용, 휴게실 사용제한 등을 통해서 나와 다른 노동자의 위치를 확인하게 되고 그에 맞는 행위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차별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들을 경쟁시키고 위계화한다. 기업들은 이미 형성된 사회적 위계, 즉 여성, 장애인, 청소년과 노인, 성소수자, 저학력자 등 사회적으로 형성된 차별을 업무상의 위계로 전환시킨다. 업무가 분리되고 업무 간 위계가 정해지면 노동자들은 중요한 업무를 하는 이들은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다른노동-다른임금’의 구조가 정상적인 것처럼 인식되고, 이것은 사회적인 차별로 확산되어 특정 직무를 하는 이들은 능력이 있는 이들이고 이들은 승자의 결과물을 획득한 것이라고 간주된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하는 일에 따라 그 사람의 능력과 인격이 평가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하나하나의 업무가 갖는 의미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존중은 사라지고 업무 간 연계와 노동자의 단일성은 파괴된다.


불안정노동의 시대에 ‘차별’은 불합리한 처우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이것은 언제라도 해고될 수 있는 불안정함, 아프거나 큰 일을 당할 경우 생계유지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공포가 내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정노동의 시대에서 ‘차별’ 위계의 아래에 위치한다는 것은 삶 자체가 파괴될 수 있고 인격적인 모욕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성소수자들의 경우 취업단계에서부터 진입장벽을 경험하고, 그리고 각종 복지혜택에서 소외됨과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난다는 사실만으로도 해고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노동현장에서의 차별을 복합적으로 안고 있다. 노동현장에서 성소수자의 차별은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이미 복잡한 차별구조의 일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성별화된 직장문화,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차별현실 등을 개선하지 않고서 성소수자 노동권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반대로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간과하고서 성차별, 혼인 및 가족형태에 대한 차별, 비정규직 차별 문제가 온전하게 다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발제문의 주장에 동의한다.

 


2. 노동현장에서 성소수자 차별이 ‘문제’로 등장하지 못하는 상황


노동운동은 차별과 관련해서는 주로 여성차별에 관심을 가져왔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그런 여성차별에 저항하는 중요한 슬로건이었다. 여성노동자들의 싸움 속에서 ‘남녀고용평등법’을 비롯한 제도적 장치가 만들어졌지만, 경제위기 이후 여성 집중 직종의 비정규직화 때문에 여성차별이 온존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에는 ‘고용형태’에 의한 차별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으로 차별의 문제가 드러났고, 이러한 차별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며, 이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동의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청소년과 노인 등 특정 연령의 차별이 확산되고 있지만 알바노조나 청년유니온, 노년유니온 등의 활동으로 세대별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도 확산되고 있다.


장애인차별과 성소수자 차별은 여전히 노동현장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차별이다. 장애인들은 노동시장 진입에서부터 심각한 차별을 겪고, 장애인의 노동이 권리가 아니라 시혜인 것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노동현장에서의 차별은 중요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성소수자들의 경우 처음부터 “정체성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편을 택하기 때문에” 차별 문제가 밖으로 나타나지 않고 그 때문에 중요하게 제기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렵다는 사실 자체가 노동현장이 이미 차별적인 공간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숨어있는 차별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른 경우 주체들의 조직화를 통해서 차별의 문제를 드러냈지만 성소수자들의 경우 개별 현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그 순간 해고의 위험에 놓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기대가 있을 수는 있으나 아직 노동조합은 이 문제를 받아서 함께 싸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다른 차별 문제처럼 ‘주체가 조직되고 투쟁함으로써’ 문제를 드러내는 방식보다는 우선 ‘성소수자의 노동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흐름을 사회적으로 형성하고, 그런 지지의 힘을 바탕으로 하여 주체가 조직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그 출발은 ‘성소수자 ‘단체’와 노동자들의 만남’일 것이다.

 


3. 성소수자 단체와 노동운동은 어떻게 만날 것인가?


현재 성소수자 단체와 노동운동은 다양한 형태의 만남을 갖기 시작했다. 성소수자 운동 단체에서 투쟁의 일부로 ‘드러내기’를 선택하고 함께한 것은 노동자들에게도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한진중공업에 함께했던 ‘희망버스’에서 성소수자들의 합창단 공연에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호응할 수 있었던 것도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며 함께 싸웠기 때문이다. 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퀴어퍼레이드에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함께 할 수 있었다. 학생인권조례 투쟁에서 성소수자들이 서울시청 농성을 했을 때 노동자들의 방문을 적극 조직하기도 했다. 투쟁하는 공간에서 만난 이들이기 때문에 이런 연대가 가능했다.


이런 연대가 가능한 이유는 매개역할을 하는 단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인권단체들이나 문화단위들이 투쟁하는 이들을 매개하고 연대를 촉진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이 노동운동 안에서도 성소수자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만나는 공간을 넓혀왔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아직은 노동운동과 성소수자 단체가 직접 교류하는 일이 많지 않다. 이런 매개를 통한 연대, 특정한 사업을 통해 하나의 공간에서 서로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만남의 공간이 넓어지지 않는다면 ‘연대’를 넘어서지 못하게 된다. ‘노동현장에서의 차별’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갖고 직접 만나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려면 노동권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공동의 제기가 필요하다. 노동조합에서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투쟁할 때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사례가 많음을 제기하면서 싸워왔다. 가족수당은 모두에게 주는 수당이 아니라는 이유로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면 ‘가족수당’ 자체를 기본급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한 것 아닌가. 비혼 차별을 유지하면서 ‘남성 생계부양자 논리’를 가속화하는 수당들을 기본급으로 전환시키는 싸움이 필요하다. 그런 싸움은 성소수자들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와도 연계된다. 차별금지법 제정 등 큰 틀에서 차별을 없애는 제도적 대안도 마련해야 하지만, 현장에서 벌어지는 구체 현안을 공유하고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싸우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4. 제도적 대안에서의 고민


제도가 갖는 힘은 매우 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의미가 크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이 재계와 일부 보수기독교의 반대로 인해서 한계에 부딪쳤지만 쟁점화됨으로써, 차별금지법 제정이 차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넓히고 있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이 아무리 세분화된다 하더라도,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부당하다는 점을 말해줄 뿐, 구체적으로 차별을 금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다.


채용과정에서나 승진 등에서의 차별에 대해 당사자들은 성별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이라고 느끼지만 채용 과정 자체가 비공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인사권은 회사의 권한이라고 간주되므로 그 차별을 입증하기는 어렵다. 노동자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이 운영되는 회사 안에서 벌어지는 차별은 법적 제도적으로 규율하기 어렵다. 비정규직들이 권리를 찾고자 할 때 쉽게 해고되지만 정작 사유는 ‘계약기간 만료’라 부당해고라고 다투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과 같다. 따라서 ‘차별금지’를 현실화하는 것은 ‘차별 금지’제도가 아니라, 인사제도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노동자들이 인사제도에 개입하며, 비정규직에 대한 주기적 해고의 권한이 기업에게 주어져있는 현실의 문제를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찾는 싸움과 연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금지법 제정 못지 않게, 구체적인 차별시정의 효과라는 측면을 고려하여, 차별을 감추는 구조를 변화시키는 싸움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소수자는 ‘차별금지법 제정’,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악법 철폐’, 정규직들은 ‘근로기준법 개악 반대’ 등으로 싸움이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기업의 경영에 노동자들이 개입하고 안정적인 고용의 권리를 확보하고, 단체협약의 힘을 강화하고, 노동권을 더 강화하는 것이 모든 노동자들의 공통의 과제가 될 것이다.

 


5. 노동자들의 차별감수성을 높이기


노동조합에서 작은 차별을 제기하고 고쳐나가는 과정이 조합원들의 차별감수성을 높이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호칭, 가부장적인 문화, 비혼을 차별하는 각종 수당체계, 외모차별, 회식문화, 흡연공간, 탈의실 등에 대해서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고쳐나가면 그 힘이 바로 현장에서 차별적 문화를 바꾸고 노동자들 사이의 동질성을 높이는 데에 큰 힘이 된다. 즉 구체적인 문제로부터 접근하고 변화시키는 과정이, 그리고 조합원들에게 선전하고 작은 실천이라고 함께 조직하는 과정이 노동자들의 차별감수성을 높이는 과정이다.


그런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는 문제는 현장에서도 저항이 클 수밖에 없다. 혐오발언이 거침 없이 나오기도 한다. 이것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일 수 있으나, 노동조합 간부들이 태도와 입장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건설노조에서 이주노동자들을 폭행하거나 불법이라고 신고하는 것에 대해서 노동조합이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공동의 싸움을 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이나 행위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응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단호한 대응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설명을 통해서 소수자의 권리를 사회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노동자 전체의 권리를 확대하는 길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노동조합은 성소수자들과 만나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발제문에서 제기한 것처럼 성소수자들의 행진과 투쟁에 함께하고, 성소수자들이 직접 교육하는 교육시간을 배치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만나게 하는 과정이 이해를 높이는 과정이다.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소수자들이 주체로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노동현실에서 성소수자들이 주체화되었을 경우 감내해야 할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주체화될 경우 지지하는 그룹을 만들고, 노동조합 안에서도 안정적이고 편안한 독립적인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014년 10월 21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개최된 ‘노동현장과 성소수자 차별’ 토론회에서 발표된 토론문입니다. 토론회 자료집 전문을 다운로드 받으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노동권토론회자료집최종(2014-10-21).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