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감정

Posted at 2015.05.11 00:02// Posted in 성소수자와 노동

소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



언젠가 지인들이 동성애를 두고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본 적이 있다. 동성애 관련 뉴스 때문이었는데, 그날 회사 동료가 성소수자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불만이 있었지만 아직 커밍아웃한 상태가 아니어서 당사자로서 끼어 반박하거나 얘길 이어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전 또 비슷한 일이 생기자 무척 화가 나서 잠을 못 이룰 정도가 되었다. 결국 며칠 뒤 나는 그를 불러, 일터 사람에게는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하고 사과를 받았다.

사실 모욕당했다고 생각될 때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상한 경험이었다. 그동안 내 정체성은 줄곧 게이 퀘스쳐너리였고 게이로서의 삶은 바로 나의 삶이었지만, 그 삶은 마치 그림자와도 같아서 그것이 불편을 끼치는 순간을 제외하면 철저하게 무시할 수 있었다. 수년의 직장 생활동안,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동성 애인을 거리낌없이 이성 친구로 패싱했고, 남들처럼 애인을 회사 근처로 부르거나 하지 않는 데도 익숙했기에 불만도 없었다. 그 관성 탓인지 2008년 이후, 나는 성소수자 인권을 얘기하는 진보 정당의 당원이었지만 그곳에서조차 굳이 성소수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적어도 의식적으론 커밍아웃이나 아웃팅에 대한 공포도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남성들 사이에 오고가는 혐오 농담에조차 웃으며 하나를 보태면 보탰지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런 나와 게이로서의 내가 뒤섞인 계기라면, 아마도 어느날 정치적 의사 표현을 위해 참여한 집회 현장에서일 것이다. 그날 나는 무지개 깃발이 보이는 곳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는데, 한 동성애자가 무대에서 커밍아웃하며 지지발언하는 것을 보면서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조금씩 동인련 활동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세상이 성소수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성소수자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우리의 인권과 관련해 어떤 일들이 세상에 있어왔고 또 일어나고 있는지를 배웠다. 그러는 동안 내가 걸치고 다녔던 이성애자의 옷이 갑갑하게 느껴져, 믿을만한 친구들부터 시작해 지인들에게 커밍아웃을 시작했다. 그림자였던 나의 일면으로 전에 알던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때때로 알몸으로 거리에 선 듯한  낯선 부끄러움을 들게 한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론 나와 내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더 나아가 내 파트너와의 관계를 축복받는 일 같은 전에 없던 욕구들을 자꾸만 피우게 되었다.

하지만 일상의 혐오를 읽어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일터에서, 남자 둘이 영화관에 가는 것을 더럽다고 표현하는 동료들의 농담을 더는 편히 들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첫 커밍아웃까지 하고 나니 복잡한 생각에 휩싸였다. '이후 나는 이 회사에서 전처럼 일할 수 있을까?' 정치적 올바름만을 내세우기엔 밥줄이 너무 중요했고 성소수자로서 온전히 살아가는 게 행복의 한 요건이라면 업무에서 성취를 이루는 것 또한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그래서 커밍아웃을 놓고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의 면면, 회사 상황, 내 입지, 개인적인 전망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생각했다. 자칫 하면 상처를 입고 이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잘 풀 수만 있다면 지금 하는 것이 제일 좋았다. 하지만 결코 무리는 할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삶으로의 길목에 있다고 생각하면 건강하게 오래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얼마 뒤 또 한번의 커밍아웃을 했다. 다른 동료와 식사중 자연스럽게 내 연애 이야기가 나왔는데, 여자친구라고 하길래 내가 '남자친구'로 바로잡아 준 것이다. 신뢰할만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이전에 커밍아웃 했던 다른 동료도 함께 있던 터라 일반인으로 패싱하며 동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다행히 그날은 즐겁게 이야기를 마치며 든든한 우군을 얻었지만, 이제는 다른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회사 사람들이 알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절대로 일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언젠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친구가 자기 지인을 거론하며 어떤 맥락이나 필요도 없이 '그 사람 게이'라고 했던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소개될 때 성적 지향이 수식어로 붙으며 편견을 달고 다녀야 하는 건 아닐까? 사회적 소수자들에게는 쉬이 꼬리표가 달라붙는다. 예컨대 내 직업에서 여성은 극소수인데, 그중 한두사람과 일해 본 경험을 가지고 여성 전체로 일반화해 말하는 것을 흔하게 본다. 비슷하게 만일 힘든 일이 생겨 우울해할 때 주변 사람들은 내 감정을 보지 않고 '역시 게이는 좀 그렇네'라며 편견을 투영하는 건 아닐까? 혹 일을 잘 하지 못했을 때, '호모새끼'라는 욕을 먹으면 어떡하지? 잘 항의할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을까? 명백하게 그 모든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더 잘해내어 입지를 다지는 것 만이 당장은 나를 보호할 유일한 방법인 것 같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아마도 그래서 일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이끌어내기 위한 여러 단체들의 운동에 참여하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려고 하는 이유 말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활동들을 참 싫어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일의 노예가 되지 않고도 현실을 변화시킬 기회를 주니까. 그래도 남는 걱정이 하나 있다. 사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에겐 무척 심각한 걱정이다. 바로 다음 회식 자리에서 '남자친구는 잘 지내?'란 안부인사를 들으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까 하는 것. 아무쪼록 모든 일이 잘 풀려 언젠가 내가 보길 원하는 자신을 꼭 한번 마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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