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노동권팀)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
2003년 10월 22일 정은임의 FM 영화 음악 오프닝 멘트입니다. 귀족 노조라는 말이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정규직 조합원들을 공격하던 시절, 한진 중공업에서 일하던 김주익씨는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성소수자와 노동자에 대한 기고글을 요청 받을 때마다 저는 김주익이라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열사도, 지부장도, 아버지도 아닌 그저 한 사람, 그 자체의 김주익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가 꿈꾸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삶이 간절한 사람들은 삶에 대해서 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삶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삶 그 자체를 살아가는 것에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성소수자라는 사람들이 보통의 사람들인 이유에 대하여 자주 설명하게 됩니다. “성소수자라는 사람들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 라는 이야기 보다는 성소수자도 사람이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라는 이야기를 자주하게 되어서 일터 안의 성소수자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 라는 고민이 깊어집니다.
그런 고민을 저는 저의 일터 안에 있는 동료들과는 나누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소수자, 그 중에서도 남성, 동성애자, 게이라서 그렇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그걸 아 그렇지 그게 우리 현실이지. 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왜 이야기를 못해요? 라고 반문하는 두 종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일터 안에서 제가 “저는 게이에요.” 라는 말을 내뱉음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사건들. 그것에 대해서 누가 책임져줄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저라서 차별받아야 한다면 제가 형태라는 사람으로 살아서 차별 받는 것이 당연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제가 원하는 삶 그 자체로 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야 하는 것이라면 저는 일터에서 자연스레 유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터 안의 유령, 저는 성소수자입니다.
제가 지금 33살인데 29살 때 쯤 다니던 일터의 동료에게 커밍아웃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 동료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자기를 좋아하냐고, 그래서 저에게도 저의 취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남성이 모든 여성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듯 여성이 모든 남성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듯 제게도 취향이 있는데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할까? 주말을 제외한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하루 9시간에서 많게는 11시간 정도를 일터에서 보내면서 내가 나로 솔직하게 살고 싶어 “내가 어떤 사람이다.” 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했을 뿐인데, 그 말을 하자마자 부메랑처럼 돌아옵니다.
그 일터에서 일한지 2년이 막 지났을 즈음 친한 동료 여럿에게 비슷한 시기에 커밍아웃을 했었는데 어떤 사람은 왜 그러냐고 징그럽다 말했고, 어떤 사람은 마치 담배나 술처럼 동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끊으라 했습니다. 그리고 1년 정도를 그 일터에서 일하고 저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스컴에서 동성애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나를 보며 너도 저러니? 저런 짓을 너도 하니? 라는 식의 시선을 받고 묘하게 함께 하던 모임 안에서 나를 배제하는 것과 마주할 때 커밍아웃을 괜히 했구나. 라는 후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위에 나열된 저런 소리를 들을 때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일터 안에서 커밍아웃 하는 것은 생계의 문제입니다. 일을 해야 돈을 벌고 돈이 있어야 삶을 살아감에 있어 필요한 곳에 그 돈을 쓸 수 있지 않습니까? 일터 안의 커밍아웃은 그래서 성소수자 당사자들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금기시되기도 하고 때론 커밍아웃 할 수 있는 일터, 커밍아웃 하여도 차별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어떤 환상의 일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한 친구가 일터에서 휴대폰 잠금 설정을 하지 않은 상태로 자신의 책상 위에 휴대폰을 올려두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합니다. 자리에 돌아와 그 사실을 알고 순간 누군가 자신의 휴대폰 내용을 보았으면 어쩌나 불안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 친구의 휴대폰 안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찍은 사진들이 저장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남의 휴대폰을 마음대로 보는 사람이야 거의 드물겠지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휴대폰을 흘리고 다니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누군가 본다는 것이 위험한 일인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한국이라는 사회 안에서는 위험한 일이 맞습니다.
지난 해 7월, 대구에서는 한 성소수자가 게이라는 이유로 회식 자리에서 아우팅 당한 후 그 자리에서 바로 고용주에게 해고를 당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사실 00는 게이에요. 라는 말 한마디만으로 해고가 가능한 것도 놀라우나 그 고용주가 했던 네가 게이인 것을 알았다면 널 채용하지 않았을거야. 라는 말이 더 서글프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많은 취업준비생들이 면접을 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 성소수자 취업준비생들은 조금 다른 지점에서 준비가 필요합니다. 남성적이지 않다면 남성적으로 보일 수 있게 여성적이지 않다면 여성적으로 보일 수 있게 자신을 꾸미거나 혹은 숨깁니다. 원래의 얼굴을 가리고 마치 가면을 써야하는 상황들과 마주하는 것입니다.
가면을 벗어 던지고 얼굴을 찾고 싶습니다.
지난해 12월 성소수자 운동 진영은 서울시민 인권헌장 사태로 인하여 서울시청 로비에서 농성을 했습니다. 농성장에는 많은 구호들이 적힌 종이들이 공간을 채우기도 하였는데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얼굴을 가지고 싶다.” 얼굴을 가진다는 것은 스스로를 드러낸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성소수자라면 일터에서 커밍아웃을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성소수자가 아니라면 일터에서 성소수자인 동료를 만나본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터에서 혹은 삶 속에서 나로 살아간다는 것이 절실한 사람들, 성소수자는 얼굴을 가지고 싶습니다. 존재한다는 것을 존중받고 싶습니다. 2011년의 어느 여름 날, 성소수자들은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향하는 2차 희망버스를 탔습니다. 토요일에는 비가 왔고 비에 섞인 최루액을 맞기도 했습니다. 그런 토요일 밤을 지난 일요일 오후. 85호 크레인에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전화 연결을 통해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성소수자들이 울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온 것을 알고 있다며 성소수자를 언급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이들이야 그깟 이름 한번 불러주는 것이 뭐 대수냐고 그걸로 울었냐 싶겠지만 온전한 존재로 호명된다는 것은 확실히 대수입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 나만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 그 기분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확실히 “당신이 거기에 있다는 것 알고 있어요!” 라고 누군가 말해주는 것의 따뜻함을 알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에서는 올해 일하는 성소수자를 위한 안내서를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에 성소수자라는 언급 하나 없는 한국의 현실 앞에서 어떤 내용으로 안내서를 채워야 할지 막막하지만 “일하는 성소수자인 당신을 위한 것들이 존재해요!” 라고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터 안에서 얼굴도 없고 존재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유령이지 참 유령이 따로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조금씩 존재를 찾다보면 선명한 얼굴로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의 일터 안에서 성소수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보이지 않는 얼굴에 대해서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일터에서 얼굴을 가지고 일하고픈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노동권팀 형태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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