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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퀴어퍼레이드

성소수자와 공적 공간: 물의인가, 무리인가?

by 행성인 2014. 7. 17.

종원 (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지난 6월 3일부터 15일까지 제15회 퀴어문화축제(Korea Queer Festival)가 있었다. 6월 11일 저녁, ‘인권중심 사람’에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토론회 “성소수자와 공적 공간: 물의인가, 무리인가?”가 열렸다. 퀴어문화축제 스페셜 이벤트로 기획된 토론회에 50여 명이 참석해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성황을 이루어 거듭되는 성소수자의 공적 공간 사용 불허 이슈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약 2주 후 제6회 대구퀴어문화축제의 일환으로 개최된 “우리는 공공의 적인가요?” 토론회 역시 성소수자에게 공공 장소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서울과 마찬가지로 행사장이 만원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성소수자와 공적 공간: 물의인가, 무리인가?” 토론회에서는 먼저 한채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퍼레이드팀장이 “퀴어퍼레이드와 공적 공간”을 주제로 발제했다. 성소수자가 공적 공간에서 공적 존재로, 긍정적인 이미지로 재현되는 것에 대한 거부에 기반한 공간 사용 불허는 1990년대부터 꾸준히 있어 온 문제다. 2000년에 처음 시작된 퀴어문화축제의 장소 사용 거부 사례들도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2001년 2회 퍼레이드 때에는 홍대 앞쪽 길 사용을 경찰에서 불허했다가 나중에 행사 이틀 전이 되어서야 행진 허가를 받아 진행한 바 있으며, 공적 공간에서의 전시회 개최를 문의했으나 거부당한 경우도 있었다. 2003년 4회부터는 성소수자 행사라는 이유로 거부당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협조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2013년에는 서울 중구청이 음향 기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여 다른 장소를 구해야 했고, 올해에는 서대문구청이 행사 열흘 전인 5월 27일 행사 승인 취소 공문을 보냈다. 퀴어퍼레이드 외에도 2012년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 현수막 게시 거부, 2013년 홍대걷고싶은거리 내 나무무대 사용 불허 등 성소수자의 공적 공간 사용 불허 사례들이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발제자에 따르면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의 절차는 인종 차별의 절차와는 사뭇 다르다. 말하자면 공간 분리보다 침묵과 위장을 먼저 요구한다는 것인데, 성정체성이 피부 색깔처럼 한눈에 구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꾸 가시화되면 색출, 퇴출하겠다는 위협이 가해지고, ‘커밍아웃’이라는 저항이 계속되면 일시적인 공간 할애라는 전략으로 넘어가게 된다. 겉으로는 다소 유연해 보이기는 하나, 결국 공간을 나누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자신들의 이성애 중심적 영역을 못박아둔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발제자의 주장은 정체성에 기반을 둔 공간 분할이 아니라 공간의 새로운 정체화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혐오에 눈감으면서 중립인 척하는 허세, 관용인 체하는 위선을 폭로하는 저항으로서 “공적 공간은 과연 누구의 공간인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배진교 대구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의 “제6회 대구퀴어문화축제 경과” 발제문을 사회자 몽(언니네트워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대독했다. 지난 6월 28일에 개최된 대구 퀴어퍼레이드도 공공 장소 사용 허용 문제를 두고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2.28기념 중앙공원 청소년광장 사용 협조 요청에 대구광역시 시설관리공단 측이 “청소년들의 출입이 잦은 장소여서 동성애 축제는 안 된다”며 “도심 공원은 모든 시민들의 휴식처로서 일부 소수인을 위한 특정 행사는 사용 불가함을 알려드린다”는 공문을 보내온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대구퀴어문화축제 측은 대구 지역 인권 운동 단체들과 대책위를 구성하여 즉각적인 대응에 들어가 시청 측과 면담을 할 수 있었고, 마침내 시설관리공단은 4월 2일에 ‘공원사용승인’ 공문을 보내왔다. 대구시 측은 성소수자 당사자 및 축제 조직위와 인권 단체에 상처를 주고 불미스런 마찰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했다. 불허에서 승인으로 재결정이 내려진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이번 사례는 성소수자가 ‘공익’에 반하는 집단이고 청소년에게 ‘유해한’ 집단이라는 편견과 낙인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를 재확인시켜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구 퀴어퍼레이드는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지만, 서울과 유사한 방식으로 일부 극우 기독교 세력이 훼방을 놓았다. 이들은 퍼레이드가 “지역 주민 다수의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공적 공간에 ‘균열’을 일으키는 실천에 저주를 퍼부었다.


뒤이어 공적 공간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단체 활동가들의 발제가 이어졌다. 레고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는 “공적 공간에서 함께 영화 보고 이야기하기”라는 발제를 통해 공적 공간에서 인권 영화를 함께 보는 것, 그리고 공적 공간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했다. 1996년에 시작되어 대학 및 영화관에서 개최되었던 서울인권영화제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국가 행정 기관의 ‘추천’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영관을 대여하지 못하고 거리에서, 광장에서, ‘공적 공간’에서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여기에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심의, 추천, 등급 분류, 즉 실질적 검열에 반대한다는 의도도 있다. 한편 영화제 개최를 위한 공적 공간의 사용을 두고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2009년의 경우 촛불집회 및 용산 참사의 흐름 속에서 영화제가 “불법 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영화제 개막 이틀 전에 서울특별시 시설관리공단으로부터 청계광장 사용 허가에 대한 취소 공문을 받았다가 긴박한 문제 제기 및 기자 회견 후 다음날 취소 결정이 번복된 것이다. 작년에는 서울시청 총무과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령 상의 상영 등급과 관련한 규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며 서울광장 사용 신청을 반려했다. 이러한 사례들을 열거하며 발제자는 특정한 존재들이 배제될 때 ‘공적’인 것이나 ‘공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사유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공적 공간, 선긋기 방식의 공/사 이분법, 그리고 권력 관계와 공간의 점유에 대한 고민을 이어 온 서울인권영화제는 표현의 자유 운동을 지켜 나가기 위해 거리 상영을 시작하면서 관객과의 대화 또는 활동가와의 대화 등을 통해 ‘광장’에서 금기시되었던 말들을 하게 되었다. 2013년 18회부터는 ‘토크 인 플라자’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약 1시간 동안 ‘광장’에서 이야기되지 못한 것들을 입 밖으로 꺼내는 ‘장’을 꾸리고 있다.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고민과 투쟁을 이어 오고 있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과도 공유할 지점이 많아 보인다.


마지막으로 박선영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활동가가 “순수한 문화제가 존재 가능할까”를 주제로 발제했다. 장기 투쟁 사업장 지지 문화제를 기획하면서 집회 신고서를 제출할 때 담당 경찰이 “순수한 문화제가 맞으시죠?”라고 물었던 일을 소개하면서 발제자는 문화가 가지고 있는 창조성은 비판적 정신에서부터 발현되며, 문화는 비판과 저항을 통해서 생명력을 얻기 때문에 어떤 목적이나 방향성 없는 ‘순수한 문화제’라는 말은 허구적인 수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논리의 연장선 상에서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공적 공간 사용 불허는 문화에 대한 기관의 이해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어서 발제자는  유네스코가 2005년에 제정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 협약’을 근거로 하여 문화적 다양성으로서의 성소수자 문화를 이해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협약의 국내 이행을 위해 올해 5월에 통과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의 한계가 지적됐고, 보수 정권 하에서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심각한 수준의 퇴보가 진행되고 있음이 상기되기도 했다. 성소수자 문화에 대한 규제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발제자는 인권이나 개인의 기본권뿐 아니라 ‘문화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성소수자 문제에 접근해 사회 구성원의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문화다양성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성소수자 문화가 곧 문화적 자산이라는 논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발제 후에는 객석에서 굉장히 활발한 토론이 오갔다. 공적 공간에 관한 논의와 결코 무관하지는 않지만 퀴어퍼레이드의 ‘노출’에 관한 논쟁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할애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퍼레이드에서의 노출이 극단적 표현의 자유로서 악영향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한 의견에 대해 한채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퍼레이드팀장은 노출에 대한 반감이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조심할 필요가 있으며, 반감이 있는 경우 그것은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줄어드는)이거나 성소수자 가시화에 대한 무조건적 반감(뭘 입어도 반대하는)일 수 있기 때문에 이번 퀴어퍼레이드에서도 복장에 대한 지침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상, 비정상 규범을 해체한다는 맥락을 가진 성소수자 운동이 입은 옷이나 머리, 신발 때문에 정상, 비정상을 나누는 것은 근본 취지와 상충되기 때문에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고, 법적으로 봤을 땐 강의석 씨나 나체로 나온 목사님들에 대해 무혐의 처리 났었다는 사례도 소개됐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20년, 퀴어퍼레이드가 15년 됐는데 왜 이제서야 혐오가 이렇게 조직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는 2007년 이후로 교회 세력이 빠른 속도로 약화되고 기독교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잘 먹히는’ 동성애 혐오 구호를 통해 위기를 타개하려는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따라서 혐오 발언이 증가한다고 해서 위기 의식을 느끼는 것보다는 다급해지는 공격에 대한 침착한 대응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 덧붙여졌다. 일부 극우 교회 세력은 동성애 자체를 제도적으로 막는 것보다 그러한 제스처를 통한 신앙적 만족감과 헌금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혐오는 예전에도 뿌리 깊었지만 우파 정권에 의해 혐오 세력이 활개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고, 심지어 이런 공격이 방임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됐다.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연대를 넓히고, 지지를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마무리 발언으로 한채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퍼레이드팀장은 이번 퀴어퍼레이드를 통해 공적 공간에 대한 명확한 입장들이 부딪힐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법, 정책, 규범을 바꿔 나가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게 되는 것의 의의를 강조했다. 노출에 관한 논란에 대해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입었나’가 아니라 ‘나는 왜 불편한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근육 노출과 지방 노출에 대한 이중잣대를 지적하며 이런 고민과 질문이 이번 퀴어퍼레이드의 성과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을 비롯하여 공적 공간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모든 이들의 열정이 모여 공적 공간에 ‘균열’을 내는 순간, 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들의 공적인 자기 드러내기는 더 이상 물의도, 무리도 아니게 되지 않을까. 특정한 존재들이 배제되지 않는 공적 공간을 위해 투쟁하는 모든 이들에게 박수와 지지를 보낸다. 그런 의미에서,  2015년 퀴어퍼레이드의 서울광장 개최를 요구하는 서명에 동참할 것을 제안한다. 2015년 퀴어퍼레이드는 서울광장에서 열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