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웅 (동성애자인권연대)

 

 

 



제15회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는 준비 단계부터 혐오세력의 비난과 공격에 시달렸습니다. 온갖 방해와 우여곡절 끝에 퍼레이드는 진행됐지만 축제가 끝난 뒤에도 논란은 뜨겁습니다. 혐오세력의 공격에 굴하지 않고 과감히 벗어제낀 이들은 모두 동인련 회원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우리 회원들의 행보 덕분에 커뮤니티 안에서 퀴어퍼레이드의 성격과 성소수자 인권을 획득하기 위한 사회적인 전략에 대한 토론이 촉발됐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웹진 랑은 역전의 용사들에게 퀴어퍼레이드에서의 경험과 이후 논란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재성: 안녕하세요. 동인련 HIV/AIDS 인권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성입니다. 이번 퀴어문화축제에서는 ‘JAY’라는 예명으로 애프터파티에서 고고보이로 공연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작스트랩만 입고 축제 현장을 누빈 덕분에 ‘빤스 동성애자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죠.








상근: 상근입니다. 학생, 활동가, 아들, 취준생, 독립을 준비하는 궁핍한 알바 노동자입니다. 현재 Youtube를 기반으로 하는 채널 ‘OPEN’을 운영 중입니다. 이래저래 힘든 상황인지라 올해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며 하기 싫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중입니다.


우주: 동성애자인권연대와 성소수자 혐오반대 퍼포먼스팀 「Rep.」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우주(권열)입니다.




새롬: 안녕하세요. 저는 23살 미술을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 노새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행복한 레즈비언이에요.




2) 퀴어퍼레이드에서 한 복장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벗었다는 데 주목하지만 저마다 다른 컨셉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벗는 것을 선택하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을 것 같은데 벗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재성: 퍼레이드에서 벗기까지의 과정엔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모든 일의 발단은 작년 동인련 송년회에서부터였습니다. 그날 송년회에 참석한 한 회원분께서 제게 ‘내년 퍼레이드 때는 고고보이를 해 보라’라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사실 그 때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흘려보냈는데, 때마침 제가 다이어트를 결심하던 순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곧 그 흘려보냈던 말이 진짜 계획이 되었습니다. ‘퍼레이드 때까지 몸을 만들어서 고고보이로 공연을 하겠다’라는 계획이 된 것이죠. 석 달 남짓의 시간 동안 몰려오는 식욕과 야근의 피로를 참아가며 주중엔 회사와 헬스장만을 왔다갔다했고, 그 결과 다이어트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지인분의 도움으로 퀴어문화축제 애프터파티에서의 공연 기회도 얻을 수 있게 되었구요.


사실 퍼레이드에서 입은 의상은 원래 공연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클럽 공연용 의상이 백주대낮에 거리로 나오게 된 것에는, 퍼레이드가 다가올수록 노골화되는 혐오세력들의 축제 폄하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가득 찬 악의적 비난들이 크게 작용했죠. 혐오세력들은 축제가 있기 몇 주 전부터 축제를 ‘동성애자들의 광란의 빤스 퍼레이드’라는 타이틀로 매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타이틀은 혐오세력들이 ‘동성애자’라는 성 정체성을 ‘문란함’이라는, 전통적 도덕 규범이 금기시하는 요소와 엮기 위하여 만들어 낸 대표적인 장치이죠. 그리고 혐오세력들이 퍼레이드를 적극적으로 방해할 것이란 소식이 알려지면서, 저는 나름대로 그것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이 ‘그들이 금기시하는 것을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였습니다. ‘금기를 금기한다. 너희들에게 진짜 빤스 퍼레이드가 뭔지 보여주겠다’ 정도랄까요?


상근: 2013년 퀴어문화축제 때 퍼레이드 트럭 위에 올라갔을 때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사람들이 저를 보며 환호해줄 때, 물론 제가 멋있어서가 아니라 축제의 장이기 때문에 보내는 환호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그 중심에 있다는 게 좋았어요. 살면서 한 번은 벗어줘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리고 정말 확 벗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당일에 호모포비아들이 와서 퀴어문화축제를 훼방 놓을 거란 얘기를 듣고나서였어요. 그들이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혐오라는 걸 일깨워주고, 사랑에 성별은 중요치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프리허그와 프리키스를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몸은 사실 목표치에 비해 잘 안 만들어져서 아쉬웠어요. 원래는 당일에 Jockstrap을 입으려고 했는데 이래저래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걸 많이 느껴서 준비해간 핫팬츠에 상의 탈의만 했어요.


우주: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제가 처음 노출을 했던 것은 3년 전 2011년 퀴어퍼레이드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군인인 신분이었지요. 가장 동성애에 엄격하다고 할 수 있는 집단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축제의 의미에 맞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군복과 함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나를 드러내자는 생각에, ‘훈도시라면 어차피 일본에서는 축제 의상으로도 쓰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퍼레이드 때 훈도시를 입기로 결정했습니다.(정작 일본의 퍼레이드에서는 훈도시 착용이 금지되어 있다는 군요. 이번에 도쿄레인보우프라이드 팀 분들께 들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군 복무와 학업으로 퍼레이드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고 이번년도에도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5월 말부터 반동성애 단체들이 혐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빤쓰게이’가 되어보자 결심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게 노출은 유니폼, 복장이라는 사회의 틀과 제약을 깨고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새롬: 제가 제작년, 작년 퀴어퍼레이드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했지만 이번 퀴어퍼레이드에서 입었던 옷은 사실 그중에 제일 평범한 옷 이였어요. 짧은 검은색 반바지와 몸에 붙는 하얀색 반팔티를 입고 검은색 힐을 신었습니다. 후에 트럭에 올라가 반팔티를 벗었던것에 대해 전혀 강요는 없었고, 축제에 참여한 많은 친한 언니들의 응원과 추천?(이라고 해야하나ㅋㅋ..)때문에 예상하지 않았던 노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3) 퀴어퍼레이드 당일 축제에 오기 전에 기분은 어땠나요? 어떤 마음가짐이었나요?


재성: 아침 일찍 의상을 준비하고 축제 현장으로 가면서, 사실 제 머리 속에는 온갖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축제에 대한 기대와 함께 생전 처음 하는 퍼포먼스에 대한 두려움, 분명 사진이 많이 찍힐텐데 이로 인한 아웃팅 걱정, 그럼에도 혐오세력들을 향해 이 날만큼은 유/무언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사명감 뭐 이런 것들이었죠.


상근: 보수 기독교계 호모포비아들의 방해가 있을 거란 걸 알고 좀 불안한 마음은 있었어요. 특히 마음에 걸리는 건 경찰이었는데, 이래저래 변명 시나리오를 플랜Z까지 짜간 상황이었죠. 근데 프리허그와 프리키스를 하면서 그런 걱정은 싹 날아갔어요. 호응이 너무 좋았죠. 그래서 더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어요. 중간에 경찰이 한 번 잡았었는데 그냥 쿨하게 무시했어요. “제가 팬티 입었어요? 상의는 더우니까 벗었어요. 바지 짧은 거 입은 게 문제 돼요?” 이러면서요.


우주: 신촌에 도착하기 전에는 기대 반 설렘 반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신촌에 도착했을 때에는 부스 설치도 다 안 되어있었고 거리에 차들도 많아서 걱정이 많이 됐었어요.


새롬: 축제에 오기전의 기분은 말할것도 없고, 거의 일주일 전부터 축제에 대해 생각하며 들떠있었어요. 작년에 홍대에서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해 올해처럼 트럭위에 올라가 퍼레이드를 진행했었는데, 그때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서로 마음을 공유했던 감동 때문에 올해도 용기를 내어 트럭위에 올라가기로 정했던 거라 이번엔 더 파이팅! 힘을내어 사람들과 놀다가야지. 라고 생각하며 현장으로 이동했습니다.



 

4) 어떤 반응을 예상했고 당일 실제 반응은 어땠나요? 가장 기분 나빴던 반응과 좋았던 반응은 무엇인가요? 인상적인 경험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또, 퀴어퍼레이드가 끝난 뒤 생활이나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재성: 사실 ‘빤스 퍼레이드’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2년 퍼레이드에서 타 단체의 차량 퍼포먼스 때문에 커뮤니티 내/외에서 한때 논쟁이 있었죠. 분명히 찬/반의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막상 현장에서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웃으면서 저와 함께 사진을 찍었고, 심지어 어떤 남성분은 저를 들고 사진을 찍기까지 하셨죠. 처음 사진촬영 요청을 받았을 때는 정말 뻘쭘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익숙해지더군요. 하지만 혐오세력이 반대집회를 하고 있는 쪽으로 다가가자, 그들이 신고를 했는지 경찰이 다가와 제지를 했고, 제 퍼포먼스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퍼포먼스는, 물론 의상이 작스트랩에서 핫팬츠로 톤 다운되기는 했지만, 퍼레이드 차량 위에서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퍼레이드가 끝난 뒤 애프터파티 무대에서 화려하게 마무리되었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준비를 했던 퍼레이드인 만큼 끝난 후 제 마음가짐이나 일상도 미묘하게 바뀌었죠.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우선 퍼레이드를 위해 준비하면서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던 것들이 현실로 다가올 때의 쾌감, 그러니까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애프터파티에서의 공연 역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을 때 느꼈던, ‘많은 분들께 공언했던 일들을 오차 없이 이뤄냈다’는 것에서 나오는 개인적인 자신감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제게 큰 동력원이 되고 있어요. 그리고 축제 당일 현장에서 느꼈던,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를 응원하고, 함께 같은 공간에 있고, 성소수자의 자긍심과 인권보장을 위한 목소리를 함께 내고 있다’는 것에서 나오는 자긍심과 자신감은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제 기억 속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상에서의 변화는, 퍼레이드 때 사진을 잭디 프로필 사진으로 올렸더니 쪽지가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온다 뭐 그정도랄까요?


상근: 비슷하지만 다른 경우를 통해 가장 기분 나빴던 경험과 좋았던 경험 둘 다 있어요. 한 호모포비아 아줌마 분이 마이크를 들고 와서 제 옆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대서 프리허그와

프리키스를 방해 하시길래, 이 분을 빨리 돌려보내야겠단 생각을 했죠. 그래서 일일이 말대꾸 하던 걸 관두고 “아주머니, 껴안아 드릴까요? 볼에 뽀뽀 해도 돼죠?”하고서 껴안고 뽀뽀를 해드렸어요. 주변에서 환호를 해주더라고요. 결국 그 아주머니도 얼마 안 가 돌아가셨어요. 이와 비슷하게 다른 호모포비아 아줌마 두 명도 제게 지나가면서 시비를 걸었는데, 사실 시비 자체보다는 그 내용이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나라 전체가 세월호 애도 기간인데 빤쓰 바람으로 뭐하는 짓이냐”고 하셨는데, 세월호 희생자들을 그렇게 혐오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너무 화가 났었죠. 그걸로 이성을 잃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는데 그 아줌마도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셔서 하마터면 그 손가락 부러트릴 뻔 했어요. 병원비 낼 돈이 없다는 걸 자각하고 있어서 간신히 참을 수 있었죠.


우주: 우선 이번 퍼레이드에 중점을 두고 말씀드리자면, 반동성애 단체들에게 돌팔매를 맞을 것을 예상했습니다. 빤쓰게이 얘기를 하면서 나오는 분들이 진짜 빤쓰게이를 본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요. 하지만 우려와 달리, 현장에서의 분위기는 좋은 편이었습니다. 가장 좋아해주셨던 건 외국인 여성분들이셨어요. 제가 같이 찍자고 말씀드리지 않아도 먼저 다가와서 함께 찍어달라고 하셨고, 어떤 분은 같이 찍어도 된다고 했더니 Yes!를 외치면서 방방 뛰시더라고요.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반대로 기분이 상했던 경우는, 어떤 중년의 아저씨께서 다가와 지나가던 사람인데 보기에 너무 안 좋다고 옷을 입어달라고 했을 때였습니다. 사실 그 때는 그런 반응도 충분히 예상했기에 기분 나쁘기보다는 오히려 나긋나긋 말씀해주신 것에 감사해서 차근차근 제 의도를 먼저 말하고 옷을 입겠다고 말씀드린 후에 자리를 이동하려고 했는데, 끝까지 제 곁을 따라오시면서 옷을 입을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며, “형제가 이러면 안 되는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그 ‘형제’라는 단어에 반동성애 단체구나, 갑자기 화가 치밀어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몸싸움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지만, 속았다는 생각에 한동안 시민들 앞에서 미소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롬: 일단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였습니다. 물론 한번쯤은 일어나지 않을까 상상했었던 것이였지만 이렇게 올해 이런일들이 벌어질 줄은 정말 몰랐어요. 퍼레이드 시작 전부터 우리 부스가 퀴어퍼레이드를 반대하는 사람들 무리의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대기하면서 조금 더 긴장된 상태로 준비를 하다가 퍼레이드가 시작하여 트럭위에 올라가서는 트럭 주변에 있던 나와 같은 사람들을 포함한 이 행진을 응원해주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다시 신나는 기분으로 힘을 받았어요.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조금 진행하던 행진이 그대로 막혀버려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됬을땐 사실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조금 지체가 될줄 알았던 상황이 예상보다 너무나 길게 이어졌을때는 그때서야 모든 상황이 파악되어 눈앞이 캄캄해 졌어요. 저는 저희 가족을 포함해 학교와 주변에 모두 커밍아웃한, 앞으로도 될수있으면 최대한 하려고 하는 레즈비언 입니다. 제가 거리낌없이, 그렇지만 신중하게 진행한 커밍아웃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제곁에 그대로 남아 저를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기 때문에 이번 퍼레이드에서 직접 눈으로 보며 현실적으로 겪었던 혐오세력이 제게는 익숙치 않은 반응이였고, 당황스러웠으며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물론 제가 서 있었던 트럭주변에 계셨던 많은 분들은 제가 레즈비언 이라는것에 대해 여태껏 익숙한 반응을 보여주신 제게 힘을주는 분들이 다수였지만 이 분들이 모두 눈에 보이지 않고 응원하는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을정도로 갑자기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멈춰서 있다가 트럭위에 계시던 친한 게이오빠에게 너무 무섭다고 말을했고, 그리고 트럭에서 내려가겠다고 이어 말할려던 찰나에 오빠가 쓰고있던 안경을 벗어 저에게 건네 주셨을때 다들 두려울텐데 제가 내려가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더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엔 퍼레이드의 마지막까지 힘을내어 진행했습니다. 




5) 여러분의 사진이나 옷차림을 혐오세력이 성소수자 비난에 이용하는 한편 커뮤니티 내에서도 여러 논쟁이 있었습니다. 본인들이 봤을 때 자신들이 어떻게 평가 됐나요? 논쟁이 흘러가는 방향은 어땠다고 보시나요? 가장 어이없거나 기분 나빴던 공격이 있었다면?


재성: 퍼레이드가 끝난 후 SNS를 중심으로 노출 논란이 크게 일었어요. 재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혐오세력들이 찍은 사진도 많고, 특히 제가 이 논란의 중심축에 서다 보니 예전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죠. 사실 혐오세력들이야 애시당초 퍼레이드에서 건수를 잡기 위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자들이라 그들이 뭐라고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안타까웠던 것은,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에서 불거진 논쟁들이었죠.


커뮤니티 내부에서 불거진 논쟁들 중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아직 한국에서는 정서상 퍼레이드에서 노출을 할 때가 아니다’라는 것과, ‘몸매도 안 좋은 것들이 퍼레이드에서 벗어서 성소수자의 이미지를 망쳐놓는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전자의 경우에는 혐오세력들이 성소수자 축제를 비난함에 있어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묘하게 활용하는 장치인데, 이러한 장치에 성소수자 본인들이 말려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혐오세력들이 교묘하게 쳐놓은 ‘성소수자=도덕적으로 문란하고 타락한 자들’이라는 덫에 스스로 걸려드는 것입니다. 한국 퀴어퍼레이드의 노출은 받아들일 수 없고, 해외 퀴어퍼레이드의 노출은 ‘한국이 아니’니까, 삼바축제와 같은 유명 야외 퍼레이드에서의 노출은 ‘성소수자 퍼레이드가 아니’니까 관대한 혐오세력들의 이중잣대가 커뮤니티에까지 이미 뿌리깊게 자리잡았다는 현실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표면적으로는 ‘외모 지상주의 논쟁’같아 보이지만, 이면에는 여전히 많은 성소수자들이 혐오세력들이 원하는 ‘바람직한 정상적 이미지’라는 단어에 너무나도 많이 집착하고 있다는 현실을 재확인시켜주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웠어요.


상근: 그 가운데 손가락 들어올리는 사진만 찍어서 맥락없이 저와 퀴어문화축제를 싸잡아 욕하던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을 봤는데, 그냥 멍청하구나 싶었어요. 그런 식으로 사실이 왜곡되는 걸 본 경험이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저의 개별적인 행동을 가지고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자기 편견을 뒤집어 씌우는 게 웃겼어요. 한국의 정서에 안 맞게 왜 저런 걸 하느냐, 벗을 거면 몸이라도 좋든가, 뭐가 자랑이라고 나서냐 등…미개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맞는 거 같긴 하더라고요. 자신의 무지함을 익명을 통해 그렇게 퍼부어 대는 꼴을 보고 있으니 한심했는데, 한 편으로는 계속 노이즈가 떠돌아 다녀서 이슈가 되는 것도 좋았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한국에서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으니까요.


우주: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최대한 찾아보거나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3년 전에 이미 커뮤니티 내에서 논란이 있었던지라, 좀 이기적이지만 이번에는 괜히 나와 같은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고 힘 빠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매일 열심히 다른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던 다른 분들께 죄송합니다. 그래도 질문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대체로 3년 전과 같은 ‘노출은 대중들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얘기들이었고, 제가 본 것들 중에는 체형과 노출을 묶어서 저를 공격했던 사람의 의견이 최악이었습니다.


새롬: 계획하지 않았던 옷차림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있었지만, 퀴어퍼레이드가 끝난후에 여태껏 축제가 끝나고 인터넷을 이용해 사진을 찾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던 옛날과 달리 이번에 퍼레이드가 끝난 직후에는 검색은 물론 일부로 관련된 이야기들을 피해다녔습니다. 커뮤니티 내에서도 찾아보지 않았던 것은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까지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6) 다음 퍼레이드나 행사 때 또 다른 컨셉이나 퍼포먼스를 계획하고 있으신가요?


재성: 올해 퍼레이드에서 얻었던 자신감을 바탕으로, 저는 다가오는 11월 말에 열릴 ‘RED PARTY 2014’에서 고고보이로 공연을 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여전히 야근과 회식의 피로를 이겨내야 하고, 먹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고통도 뒤따르겠지만, 이번 퍼레이드를 준비하던 순간의 열정을 다시 살려낼 수만 있다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겠죠? 내년 퍼레이드에서는 아마도 ‘몸매도 안 좋은 것들이 퍼레이드에서 벗어서 성소수자의 이미지를 망쳐놓는다’는 커뮤니티 내부의 일부 기류를 풍자하고자 몸매를 더욱 멋지게 가다듬어서 벗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연 그 때에도 저런 말이 또 나올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거든요.


상근: 머리 속에 떠오르는 컨셉은 많은데 시간, 돈, 사람이 부족한게 늘 아쉽죠. 근데 무엇보다 아쉬운 건 매년 축제 때마다 뭔가를 하는 사람을 참가하고, 즐기는 참가자로 참여한 적이 없다는 거에요. ‘내년에는 꼭 아무 것도 안 해야지!’하고 다짐을 하지만 매년 뭘 하게 되서, 내년에도 뭔가를 하긴 할 것 같아요. 아무 것도 안 해도 일단 벗기는 할 것 같네요. 하하.


우주: 베어 콘셉트의 부스를 만들어 운영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퀴어퍼레이드에서 덩치 큰 사람들의 활약이 저조했다는 생각에, 그들을 불러 함께할 역량은 아직 없지만 부스에서 캐릭터 상품을 파는 등 작은 부분부터 시작하면 점점 더 다양한 성소수자들이 퀴어문화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동인련 내에 비만인권팀을 만들어 내년 행진 때 slut walk와 비슷한 obese walk를 시도할 계획 중에 있습니다.


새롬: 퍼레이드가 끝난 직후에는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내가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나 지금의 학교처럼 앞으로 소속될 집단에 대해서 개인적인 커밍아웃을 그대로 진행할수는 있겠지만, 퀴어퍼레이드에는 나올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저는 두려움 때문에 내년의 퀴어퍼레이드에는 참여하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약 1년의 시간에 대해 충분히 유동성있게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상처를 받은 부분에 있어 현재는 두려움이 큰게 사실이에요. 


 


7) 독자들, 커뮤니티,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한 마디 해주세요.


재성: ‘퀴어퍼레이드’는 ‘퀴어’와 ‘퍼레이드’의 합성어입니다. ‘퀴어’이기에 혐오세력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정상적 가치’와 충돌할 수 밖에 없고, ‘퍼레이드’이기에 일상생활에서는 접하기 힘든 의상과 소품이 존재할 수 밖에 없죠. 그토록 그들의 ‘정상적 가치’가 좋다면 퀴어퍼레이드에서도 일반 코스프레를 할 수도 있고, 평소와 같은 밋밋한 옷을 입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기껏 일년에 하루 힘들게 날 잡았는데 거기에서마저 일반 코스프레를 한다면 그것이 ‘퀴어’퍼레이드이고, 평소같이 남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밋밋한 옷을 입어야 한다면 그것이 퀴어’퍼레이드’일까요? 물론 판단이야 여러분들의 몫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글쎄요.


상근: 여전히 퀴어문화축제의 존재도 모르고, 또 참여해본 적도 없다는 게이들을 굉장히 많이 만나요.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저는 그걸 더 이상 ‘그려려니’하고 보고 싶지가 않아져요. 꼰대가 되어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침묵과 비참여가 세상의 변화를 막는 요소니까요. 그냥 의미를 두지 않고 참여하고, 사람을 만나고, 그걸 주변에 이야기하고, 그런 과정을 많이 거쳤으면 좋겠어요. 전 많은 이야기가 많은 걸 바꾼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선 그런 과정이 좀 적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일반 대중들에게는요. 퀴어문화축제가 됐든 어떤 성소수자 단체 행사가 됐든 그냥 많이들 찾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자기 인생을요. 한 번 살고 죽는 인생, 즐길 것들도 많아 부족한데 참고만 살긴 아쉽잖아요?


우주: 3년 전 제가 훈도시를 입었을 때는 그것이 굉장히 파격적인 시도였고, 활동가들 역시 모두 놀라며 저를 말렸습니다. 하지만 올해 제가 신촌에 갔을 때 저 말고도 많은 사람이 다양한 옷을 입고 노출을 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구나,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역시 수많은 반대에 부딪히지만, 언젠가는 저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주던 퍼레이드 참가자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제가 용기내서 실행하는 새로운 시도들을 인정해주고 같이 함께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꼭 노출이 아니더라도 지난 6월 29일에 있었던 성소수자 혐오반대 퍼포먼스팀 Rep. 공연처럼 다양한 활동으로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Rep.의 공연 영상은 곧 페이스북 채널OPEN에 올라갑니다!)


새롬: 너무나 감사한 마음들을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퍼레이들 하기전에 학교에 퀴어퍼레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제 이야기를 듣고 아르바이트도 빼고 온 학교 친구들, 남자친구 손을 잡고 온 우리 사랑스러운 과 친구들에게 너무나 고맙고, 제 주변에서 말 걸어주고 응원해주며 같이 소리친 많은 분들에게 힘을 받아 마지막까지 용기를 낼수 있었기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모두들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올해 퀴어퍼레이드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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