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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소식/퀴어퍼레이드

대구 퀴어퍼레이드에 다녀와서

by 행성인 2013. 7. 18.

제이 (동성애자인권연대)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울밖에 모르던 내가 다른지방을 간다는 것은 꽤 흥분되는 사건이었다. 처음부터 대구에 갈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고, 더군다나 대구에서 열리는 퀴어퍼레이드에 내가 갈지도 몰랐다. “나도 대구에 갈거야!”라고 이야기 했던 것은 어쩌면 그 때 난 6세의 어린아이 같은 마음 이었을꺼란 생각이 든다.


대구에 가기로 한 날 나는 무척 들떠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기까지 했다. 우리 회사에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라신 분이 계시는데 내가 대구에 간다고 하니까 ‘서울의 더움과는 다른 뜨거움’이라 말해줘서 겁이 난 상태이기도 했다. 더위를 참지 못 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터라 하루 종일 몸에서 비가 내리는 것 아닌가란 생각에 말이다.


대구까지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재밌었다. 너무 오래걸릴 것이란 예상보다 짧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동성애자인권연대 친구들과 만나 동성로 위에 꾸며진 부스들을 찬찬히 구경했다. 서울에서 열렸던 퀴어퍼레이드보다는 부스가 적고 규모도 작았지만, 옹기종기 모여서 우리들을 보여주고 이야기한다는 것에 큰 흥미가 생겼다. 아니, 귀여웠다. 그 모습 자체가 마치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작은 요정들이 다른 이들을 도와주는 느낌이 들었다. 작게 속삭이면서 말이다. 실제로 대구에 있던 분들은 다들 요정같이 보였다. 입술을 오밀조밀하게 움직이며 “잡아먹지 않아요! 해치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모습이 내 눈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퀄리티 높은 공연들이 끝나고, 행진이 시작되었다. 나는 부스를 지키지 않고 행진에 끼어서 같이 춤을 추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행진이 길어서 놀랐다. ‘세상에, 동성로에서 퀴어들의 행진이라니 기가 막히게 매력적인데, 생각보다 길다?! 괜찮은데?!’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황당한 일이 생겨버렸다. 같이 동인련에서 활동하는 친구가 지나가던 할머니에게 등을 맞은 것. 짜-악 하고 크게 소리나게 말이다. 그 때 그 할머니의 표정. 잊을 수가 없다. 이게 뭔 일이냐는 듯한 표정. 모든 것을 말씀해주시는 그 표정으로 나와 같이 활동하는 활동가를 때린 것이다. 행위는 슬펐지만, 그 이후 친구의 반응 때문에 웃을 수 있었다. 앙증맞은 꺄- 하는 소리. ‘역시 넌 G(게이)여’라며 깔깔거리고 웃었지만, 그 장소를 벗어나 친구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더라고 말하는 것이 불편하고 속상했다.




그렇게 겁내던 대구의 날씨는 생각보다 선선하고 맑았다. 발버둥 치며 여기 있다고 소리치는 우리

에게 주시는 하늘의 선물인가? 더군다나 군형법 92조의 6 폐지 서명에 밝은 웃음으로 동참해 준 군인 분들까지. 하늘이 맑았던 만큼 모든 사람들의 반응이 맑았던 것은 아니다. 행진할 때 사람들의 견디기 힘든 시선들과 혐오의 시선들. 나 혼자였다면 그 많은 시선들을 감내했을텐데, 내 옆에는 사랑이 넘치는 내 친구들, 그리고 대구와 근방 지역에 살고있는 퀴어들까지. 집에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강도를 겁내는 불안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대구 퀴어퍼레이드가 끝나고 갔던 뒷풀이에서 느꼈던 슬픔들. 난 다시 서울로 가서 내 일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싸우겠지만, 대구에서 느꼈던 그런 눈빛들을 나는 느껴본 적이 없던터라 더 두려웠다. 


심지어 대구에 다녀온 그 다음날 새벽 프랑스에 있는 할아버지와 통화하며 프랑스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구 거리에서 나를,  더 정확하게는 우리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세상에 있는 우리들이 다른 상황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슬퍼진 것 같았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대구 퀴어퍼레이드. 많은 눈물, 많은 땀을 흘린 행진들. 내년에 열릴 대구 퀴어퍼레이드에도 갈 것을 약속했기에 난 내년에도 이 후기를 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GO! V!I!C!T!O!R!Y! 대구!”라고 다같이 외쳐보자! 이 글을 읽는 순간만이라도 말이다!



사진 출처 : <울산저널> 이미진 기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