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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

팸의 조건

by 행성인 2014. 10. 15.


다란(동성애자인권연대)



지난 8월, 이벤트 기획 단체 ‘핑크 플라밍고’가 레즈비언을 상대로 한 첫 이벤트로 ‘팸투팸 파티’를 기획했다. 퀴어 문화에 활기를 불어넣고 성소수자가 사회와 보다 밀접하게 소통하게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이벤트였는데, 당연히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는 열렬한 반응을 보내왔다.


그러나 '팸투팸 파티'에서 요구하는 '팸'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팸투팸 파티'는 '팸' 성향의 레즈비언들이 가입한 카페에서 프로모션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페미닌(feminine)한 외모 스타일과사회적으로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덕목 수행에 대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래도 '페미닌한 외모 스타일'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문제는 그 다음 항목이다. 도대체 '사회적으로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덕목'을 그것도 '성실히 수행'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


또 하나 이해하기 힘든 우스운 논리가 있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여성 이반은 모두 여성이므로 전부 여성스럽다, 그러나 카페가 말하는 여성스러움은 여성이기에 가진 여성스러움이 아니라 '페미닌한 외모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치의 정체성은 에너지가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팸'에 속할 수가 없다는 것인데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소리다. '여성이반은 모두 여성이므로 전부 여성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카페가 원하는 또 다른 '여성스러움'이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이야기다.


결국 이것도 외형으로 '팸'과 '부치'를 나누는, 지극히 이분법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어느 레즈비언의 이상형이 '치마를 자주 입고 화장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인 기준을 일반화시켜 한 카테고리로 묶어두고 모두가 그 규범에 맞춰 가기를 강요하는 데서부터는 문제가 된다. 그리고 이 틀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소수자 안에서도 또 다른 소수자의 위치에 서고 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팸'이냐 '부치'냐의 외형적을 따지기 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이성애적 사랑만을 올바른 것으로 취급하고 이에 맞춰 살아가기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 안의 또 다른 소수자가 존재하지 않도록,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미덕을 보여주는 일이 성소수자 내부에서도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