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은 먼저 영화로 제작되고 만화로 나오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음악극으로 만들어졌다. 제각기 다른 매체로 그려진 작품들은 연출과 제작자까지도 다르기에 어떻게 원작을 변주하고 있는지 비교감상의 재미가 있다. 일테면 원작인 영화가 지보이스 멤버들까지 단역으로 출연시켜 사실감을 더한다면, 만화에서는 세련된 캐릭터들이 보다 진지한 모습으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낸다.

 

알다시피 <두결한장>은 장편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그렇기에 편을 나누고 컷을 분할하는 만화와 달리 무대에 올리는 데에는 제약이 따른다. 어떻게 재현해낼 것인지 적지 않은 고민이 따랐을 터, 음악극 <두결한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재현방식이 주요 포인트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눈에 띄는 시도는 무대를 다면적으로 활용하는 점이었다. 조명에 따라 같은 장소가 술집과 병원, 옥상과 테라스, 신혼집으로 바뀐다. 하이라이트를 바꿔가며 포인트를 달리하거나 서로 다른 장면들을 한 무대에 상연함으로써 관객들의 상상력을 동원해내는 지점은 연출자의 기지 있는 노하우에서 나온  방안이었을 것이다.

 

 

캐릭터의 직업을 바꿔 무대의 효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일례로 원작에서 서영은 가구제작자였지만 무대에서는 게이들의 삶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나온다. 게이 중심적인 원작의 특성상 레즈비언 캐릭터들은 주변적인 역할만 주어진다. 특히 서영의 경우 형식적으로 붙여진 캐릭터라는 느낌이 컸다. 이를 수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그녀는 작품에 등장하는 게이들의 사연을 담으며 무대와 관객을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전히 그녀는 주변적이고 극에 깊이 간여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가 찍은 화면이 무대 뒤에 투사되면서 평면의 무대는 보다 입체적인 관점을 확보한다.

 

주요인물을 제외한 배우들이 여러 배역을 맡는 것도 무대의 제약을 극복하는 묘수였다. 가령 술집 게이가 주인공의 가족이 되거나 간호사가 되는 식이다. 그 결과 배우의 연기는 게이정체성에만 집중되지 않는다. 게이 역의 배우가 성소수자와 무관한 누군가가 되거나 심지어 호모포비아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것이다. 여러 배역을 소화하는 이들의 연기는 드랙 혹은 코스프레에 가깝다. 다소 분열적으로 보이겠지만 다층적인 공간분할 위에서 이뤄지는 배우들의 일인다역은 사회에서 이성애자인척, 자신을 숨기기 위해 호모포비아적 발언도 줄곧 던지는 ‘주말게이’의 분열적인 삶을 중첩시킨다.

 

압축해서 보여줘야 하는 무대 탓이었을까? 등장인물 구성에도 변화가 있다. 가장 큰 변화라면 주인공인 민수와 짝을 이루던 석이가 사라지고 대신 옆자리에 티나가 들어온 것이다. 원작에서 민수바라기로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샀던 티나에게 무대는 그를 위해 깔아준 ‘레드카펫’이나 다름없다. 지난 작품들에서 다른 인물들보다 미모가 뛰어났던 민수-석 커플이 민수-티나로 재편되기 위해 티나는 원작보다 많은 매력을 발산해야 할 터, 무대 위에서 그는 섹드립을 아끼고 경험 없는 순진한 야채가게 ‘소년(녀?)’로 변모한다. 원작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둘의 ‘케미’가 다소 떨어지는 느낌을 가질지 모른다. 더욱이 필자가 관람한 공연에서는 민수 역을 맡은 박성훈 님의 비율이 다른 배우들보다 남달라 위화감이 들기도 했다.

 

장르를 ‘음악극’으로 소개할 만큼 노래가 두드러지는 것도 무대의 특징이다. 노래는 극중 흥미를 돋는데 그치지 않고 게이들의 친교와 커뮤니티를 지속시키는 매개로 작용한다. 그 덕에 부각되는 건 ‘지보이스’다. 재현의 충실성과는 상관없이 친구사이 소모임으로 활동 중인 지보이스가 이제는 고유명사가 되었구나, 라는 감상도 들었다.

 

일련의 변화들을 수반하며 극은 비슷한 구성으로 전개된다. 계약결혼, 혐오와 아웃팅에 대한 두려움, 죽음을 기점으로 나를 드러내는 용기, 슬픔 뒤 해피엔딩-. 연출자는 애당초 <두결한장>을 ‘신파’라고 언급한다. 다소 뻔한 드라마이지만 외려 동성애에 낯선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다. 대신 원작의 서사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작품은 간결함과 입체감을 높였다. 극은 전형적이지만 음악이 끊이지 않고 무대는 다양한 장소로 분할되며 배우들은 다른 캐릭터로 변신한다.

 

하지만 다초점의 무대 위에서 커뮤니티의 무게, 서로 의지해온 관계의 의미가 희박해진 느낌도 든다. 가령 효진-서영커플은 아우팅의 두려움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민수에게 조언을 건넨다. ‘너도 빨리 애인을 구해야지.’ 나는 시종일관 배우들의 입에서 나오는 조언들이 과잉된 참견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빠른 호흡에 기능을 바꾸며 장소를 분할하는 무대 위에서 이뤄지는 관계의 양상들이 커뮤니티 구성이 어려운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온갖 농담만 오가는 무대는 부박한 커뮤니티의 모습을 보여준다. 공동체보다 술친구에 가까운 친교모임은 서로에게 힘이 되기보다 성적 농담들 속에서 빨리 애인을 구해 힘을 얻으라는 채근으로 이어진다. 그 위에 울리는 노래는 혐오 속에서 불치병으로 티나를 떠나보내고, 곧바로 이어지는 남은 커플들의 결혼식을 기쁨으로 채우려는 성급함을 애써 감춘다.

 

 

물론 노래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노래는 양념처럼 극에 효과를 주거나 노래 자체가 ‘지보이스’ 라는 관계 아래 캐릭터들을 결속시켜 무대와 관객을 하나로 아우른다. 무대에서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면 잠시나마 관객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박수로 호응을 보냈다. 노래가 끝나면 여기가 뮤지컬극장인지, 연극무대인지, 아니면 지보이스 공연장인지 헷갈렸다. 여성관객이 압도적이었던 것도 반응에 한 몫 했을 것이다. 대개 2-30대 여성관객들이 많았지만 중년 여성 혹은 중년 이성애자 부부로 보이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티나가 죽음을 맞을 때는 곳곳에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몇몇 중년 아저씨들의 하품소리만 아니라면 반응도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원작에서 기억하는 집단의 노래, 공동체의 가능성은 티나와 민수의 슬픈 사랑이야기로 축소되고 낭만화된다. 친밀성의 관계 대신 두 사람의 러브라인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극의 집중도는 높아졌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대중에게 동성애를 어필할 수 있는 최선의 서사였는지는 따져 물을 필요가 있겠다. 이 풍진 사회에서 삶을 지지받고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관계들보다도 인생의 배필이 우선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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