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동성애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지난 1월 6일 인권중심사람에서 ‘비팃 문타본(Vitit Muntarbhorn)과 성소수자 운동 활동가 간담회’가 개최됐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주최,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주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후원으로 열린 이번 간담회는 국제 인권 전문가인 비팃 문타본의 방한에 즈음하여 마련된 것이다.
 
비팃 문타본은 성소수자 관련 국제 인권 기준을 명시한 요그야카르타 원칙(2006)을 만드는 데 참여한 국제 인권 전문가다. 태국 방콕의 출랑롱콘 대학의 법학 교수이며, 유엔에서 아동, 북한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해 왔고, 현재는 유엔 시리아 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이슈와 관련하여 오랫동안 젠더/섹슈얼리티 이슈를 다루어 왔고, 2005년 방콕 아시아의 섹슈얼리티, 젠더와 권리 컨퍼런스에서 ‘아시아의 섹슈얼리티, 젠더 그리고 권리 - 아시아 지역의 영향’을 발표했다. APF(아태국가인권기구포럼) 산하 법률가자문위원회에서 2009년 호주, 뉴질랜드 전문가와 함께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이슈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기도 했다.


출처: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한국 성소수자 운동 활동가들과의 간담회에서 비팃 문타본은 요그야카르타 원칙의 의미와 과제, 그리고 국제 인권 매커니즘 속에서 성소수자 운동의 방법과 의미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요그야카르타 원칙은 성소수자 관련 국제 인권 기준을 총 29가지 원칙으로 나열하고 기술한 문서로, 국제인권법 아래에서 성소수자가 어떤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어떤 의무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이 원칙을 만든 사람들은 국제NGO와 국제인권법 전문가들로, 국가적인 대표성을 띤 사람들이 참여하여 채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법으로서의 지위와 효력을 갖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은 상당한 수준의 공신력을 가진 국제 인권 기준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원칙에 서명한 사람들이 유엔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거나 인권 분야에 실무적, 학문적으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개인이나 집단들이기 때문이다. 비팃 문타본도 요그야카르타 원칙을 만드는 데 핵심 멤버로 참여했다.
 
비팃 문타본은 세계적으로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과 관련하여 비범죄화, 낙인 없애기, 평등권 쟁취, 권리의 인정과 보장, 인간적 환경 조성이 주요 과제라 설명했다. 1987년 한국 대통령 선거 때 국제 선거 감시단의 일원으로 방한한 바 있는 그는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 상황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었는데, 특히 비범죄화와 관련해서는 한국이 동성애를 법적으로 처벌한 적은 없으나 군형법 제92조의6이 여전히 폐지되지 않고 있음을 수차례 지적했다. 극우 기독교 세력의 조직적인 동성애 혐오 활동과 관련해서는 개방적인 종교 그룹들과 대화를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외부 성기 성형의 강요 없이도 성별 정정이 가능하도록 유럽에서 법을 개혁하고 있다는 추세도 소개했다.
 
그는 70여 개국에서 여전히 동성애를 범죄화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국제 학계에서는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행위(doing)’가 아닌 ‘존재(being)’로서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행위’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 소위 ‘전환 치료’는 성소수자들에게 매우 폭력적인 행위인데, 최근 중국에서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전환’시켜 준다면서 전기 충격 요법을 썼던 심리 치료소가 법원 판결에 의해 남자에게 배상하게 된 소식도 소개됐다.
 
사실 유엔은 성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개선하는 데 느린 움직임을 보여 왔는데, 트랜스젠더의 경우 지금까지도 ‘성 주체성 장애’로 분류되고 있고, 따라서 트랜스젠더 비병리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비팃 문타본은 태국 국방부가 트랜스젠더를 ‘심리 이상자’로 규정해 징집 대상에서 제외해 왔으나, 이 용어가 차별적이라는 인권 단체의 항의로 용어를 중립적인 것으로 변경했던 사실도 이야기해 주었다.
 
문타본은 요그야카르타 원칙 제정 과정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공유했는데, 모든 부분에서 만장일치가 된 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성별정체성을 제외하고 성적지향에 집중하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하고(이 원칙이 작성된 해가 2006년이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또 결혼할 권리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었다고 한다. 결혼에 대해서는 일종의 타협으로서 “동성결혼이나 동성파트너십을 인정하는 나라에서는 이성간 결혼이나 파트너십에 주어지는 모든 자격, 특권, 의무, 혹은 혜택이 동성결혼이나 동성파트너에게도 똑같이 주어지도록 필요한 모든 입법적, 행정적 및 기타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는 조항이 채택됐다.
 
요그야카르타 원칙은 국제법으로서의 지위와 효력을 갖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는데, 실제로 이제는 국가나 유엔 차원에서 이 원칙을 인용, 참조하고 있다. 현재 유엔에서는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에 관한 논의가 진전되어 2011년 6월에는 제17차 인권이사회 결의가, 2014년 9월에는 제27차 인권이사회 결의가 채택됐다. 이 결의안들은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에 따른 폭력과 차별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폭력 근절 및 차별 극복을 위한 자료 수집 목적의 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도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에 근거한 차별과 폭력을 금지해야 한다는 국제 사회의 인식을 공유하여 두 차례 모두 찬성 표결을 하였다. 우리 정부는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 요그야카르타 원칙을 자세하게 보려면 ‘국제인권소식 통’의 번역과 해제를 참고해 주세요.
http://www.tongcenter.org/nondiscrim/sogi/yogyakar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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