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조직화된 성소수자 혐오에 맞서는 성소수자 운동의 자세> 섹션은 지난 3월 21~22일 이틀간에 걸쳐 열린 LGBTI 인권포럼에서 유일한 전체 토론이었다. 사회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연대 나라님이 맡았으며, 발제는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나영님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이종걸 님이 맡았다. 토론장은 200명을 훌쩍 넘긴 사람들이 함께했다. 지난 시청농성까지 이르게 했던 조직화된 혐오 세력, 그리고 농성 이후 성소수자 운동의 방향에 대한 고민과 관심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었다.
토론은 나영 님의 발제로 시작되었다. <‘이데올로기적 성장치’로서의 한국의 보수 개신교와 정치적 기반을 통해 본 혐오의 프로파간다>라는 제목의 이 발제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 동안 보수 기독교 세력으로 한데 묶어 생각하던 집단을 역사적 씨줄과 정치적 날줄의 줄기로 분석한 관점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직화된 보수 혐오 세력에 맞서기 위해, 나영 님은 ‘이데올로기적 성장치’라는 알튀세르의 개념을 가져온다. 성장치는 성적 위계와 억압의 구조를 가하게 하는 장치들을 의미한다. 성장치는 여성/남성과 다양한 성적 주체들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데 동원되고 체제의 국면에 따라 변화하기도 하는데 신체, 서사, 시장, 국가, 가족, 교육, 종교가 영향을 끼친다. 그 중 나영님은 체제 유지의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기반으로 작동하는 종교, 그 중 한국의 보수 개신교에 주목한다. 그들은 어떻게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가부장 체제를 유지하는 성장치로서 기반을 다지고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으며 작동하는지, 현재의 혐오 조직화는 이들이 구축한 성장치로서의 기반과 체제 유지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를 기초적인 수준에서나마 배경과 맥락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해방 이후 미군정은 한국에서 활동해온 미국 선교사들을 주요 공직에 발탁하며 이들과 친분이 있는 한국인 기독교 신자들을 대대적으로 채용했다. 그래서 일본이 소유했던 재산을 불하하는 과정에서 일본 종교단체들이 남기고 간 자리에 개신교 시설(영락교회 등)이 자리할 수 있었다. 한국 보수 기독교가 군대와 경찰, 정치권, 언론, 의료, 사회복지, 교육기관 등 정치 사회 영역 전반에서 특권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의 대부분이 이 당시에 형성될 수 있었다. 이는 현재 보수 개신교의 중요한 이데올로기 기반이자 자기 정체성이다.
독재 정권이었던 박정희 정부 때에도 기독교는 반공, 건국 선민사상의 정체성으로 독재 정권에 부응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특히 베트남 파병 이후 창설되었다는 구국십자군은 당시 보수 기독교가 어느 정도까지 종교적 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을 뒷받침 했는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멸공대, 기동대의 구성, 발대식에서 ‘순교적 신앙으로 총궐기하여 기독교의 선과 미로써 조국의 성업에 총 매진할 것을 다짐 했다는 사실’ 등은 강력한 반공/반북, 친미/애국 사명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새마을 운동을 통해 순복음 교회는 크게 세를 불렸으며, 성 윤리 단속과 가족 계획 사업에도 한국 보수 기독교는 적극 동참했다. 근면한 아버지와 알뜰한 주부를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 가족상을 교회 규범이자 사회적 규범으로 확립하는데 일조해나갔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르자 이들의 기반은 크게 타격을 받는다. 햇볕정책을 강조한 김대중 정권으로 들어서면서 친미/반공을 위시로 성장한 보수 기독교의 기반이 대중적으로 설 자리를 잃었다. 이어 교회와 목사의 비리 사건이 보도되고 대형 교회의 세습 문제가 공론화 되자, 보수 기독교는 친북 좌파 정권의 개신교 탄압으로 규정하고 대응에 나섰다. 수차례의 친미, 반공 집회를 여는 등 적극적으로 거리에 나섰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 국가 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을 비롯한 개혁 입법 국면을 맞자, 본격적으로 광장에서 연일 대규모 집회를 열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때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에 나섰던 박근혜가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고히 하게 되었다. 또한 이때의 네트워크와 경험이 뉴라이트전국연합을 비롯한 각종 보수 네트워크에 보수 개신교가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주도하는 기반이 되었다.
한편 2010년 이후 한기총 외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새로운 행동그룹들이 있다. 세계 성시화운동본부, 선민네트워크, 기독교사회책임 등과 바른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 참교육어머니 전국 연합, 엄마부대 봉사단, 예수재단 등이다. 이들은 2010년경부터 정치적 활동과 공격적인 선전 선동 활동을 본격화해왔다. 차별금지법 그리고 동성애 반대에서 더욱 확장되어 이주민 지원정책, 간통죄 폐지 비판 의견까지 의견 광고로 내고 있다. 특히 이들이 미국에서 보수적 가족 가치를 내세우며 레이건 정부를 당선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신사도 운동의 행적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이들은 정부, 비즈니스, 교육, 가정, 미디어, 예술, 스포츠, 종교 등 7개 권역으로 나누어 이 모든 분야를 신사도 운동의 교회가 지배하고 통치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면 예수가 재림한다고 믿는다. 기독교적 가치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게는 시민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들이 유포하는 가장 핵심적인 가치가 가부장적 성체계의 질서를 유지하여 타락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재의 지형을 살펴보자. 현재의 지형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정리가 된다. 1. 신사도운동과 선민사상에 근거한 자기 정체성 확보, 2. 정치적 위치 변화에 따른 기반 다지기, 3. 한국 보수 개신교 교회가 부딪힌 위기에 대한 대응, 4. 성적 단속을 통한 위기, 불안의 전가와 자기 정당성, 위치 확보이다. 특히 온라인 기반의 활동들과 시민단체를 내세운 활동, 선전, 선동 활동이 최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대중적 영향력을 위해 성서적 논리보다는 세속적 논리와 프로파간다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현상이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서울시와 성북구청의 경험을 통해 주목할 부분은 민관협력 거버넌스, 주민 참여 영역에서의 보수 개신교 활동이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본격화 된 민관협력 거버넌스와 지자체의 열악한 기반은 이 영역마저도 보수 개신교의 영향권으로 만들었다. 교회의 촘촘한 지역사회 연결망과 지역에서의 영향력, 물적 자원, 사회복지 분야의 기반들은 지차체 정부가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기반이 근래에 지자체가 보수 개신교계의 압력에 꼼짝도 하지 못하는 원인이다.
나영 님의 발제는 현재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프로파간다와 성적 이데올로기를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세금에 대한 것이다. 가부장적 성체계를 유지하며 세금을 내왔던 시민들이 (외국에서 왔고 한국에서 돈 벌어 외국에 보내고, 한국인 일자리를 빼앗는) 이주민이나 (항문섹스에만 탐닉하는 성중독자인) 성소수자와 같은 비시민과, (사회 곳곳에 숨어 나라를 말아먹으려는) 종북세력과 같은 반시민에게 쏟아붓고 있다는 논리다. 이 논리로 인해 소수자 인권은 사실상 사회적 소수자가 아니라 정당한 시민 주체들의 가부장적(세금 내는 시민=돈 버는 가장) 위치 기반을 흔드는 특권으로 자리하게 된다. 둘째는 안전 논리다. 성소수자나 이주민을 사회 혼란을 유발하는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이다. 셋째는 개념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호모포비아와 혐오세력 같은 용어를 신경쓰며, 성소수자를 호모마니아나 변태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넷째, 청소년 보호주의다. 청소년을 절대 주체적 판단이 가능하지 않은 이들로 보며, 쉽게 물들 수 있고 한번 물들면 평생을 망치게 되는 대상으로 전락시킬 수 있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상정한다. 그리고 어머니들이 호명된다. 이러한 비주체적인 청소년들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치유의 논리다. 동성애는 성적 욕구에 중독된 것이며 이를 성경적 상담 방법에 따라 치료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후에 토론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에 따르면 현재 그들은 치료 대신 치유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 발제는 향후 운동 계획에 대한 고민이 담긴 이종걸 님의 발제였다. 이종걸 님은 성소수자 운동에서의 주요한 키워드를 뽑아내고 그 안에 혐오 세력에 대한 대응과 고민을 담았다. 첫번째 키워드는 인권이었다. 지난 시청 농성에서 ‘성소수자에게 인권은 목숨이다’라는 구호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멸시하는 세력들의 폭력에 맞서 목숨을 외치며 인권이라는 의제를 한국 사회에서 몸으로 드러내었다. 인권의 의미는 폭력과 차별 그리고 배제로부터 누군가의 삶을 지켜내는 것이다. 이 의미를 전복시키고자 하는 보수 기독교 세력에게 우리는 어떻게 맞설지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서 뽑아낸 두번째 키워드는 전략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성소수자 인권 운동 진영은 보수 기독교 세력이 적극적으로 언론과 입법기관, 인권 기구 속에서 혐오의 논리를 펴는 것에 시기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긴밀한 대응의 부족과 정보의 부재는 성소수자 운동 진영이 빠르게 해결해야할 시급한 과제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전략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이다. 지금의 시급한 현안인 혐오 관련 입법 과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프레임으로 저들의 프레임 전복 시도를 막는 전략이 필요하다. 세번째 키워드는 연대이다. 무지개 농성 때 가장 빛이 발휘되었던 것이 바로 연대의 힘이었다. 이 세번째 키워드는 바로 전략의 구체적인 실천 방향으로도 연결된다. 나에게 힘을 보태었으니 나도 같이 서겠다는 품앗이를 넘어 강자에 의한 약자의 억압을 제거하려는 실천에 대한 큰 프레임이 필요하다. 연대에 대한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실천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큰 전략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토론장에 참여한 분들의 화답도 뜨거웠다. 연대에 대한 고민, 보수 개신교 세력에 대응하는 방법, 그리고 우리의 의지를 다지는 것, 나아가 우리 안에서의 논쟁도 더 뜨겁게 하자는 고민과 결의가 이어졌다. 부산에서 온 참가자, 일본에서 온 참가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더하며 연대에 대해 많은 의견과 결의를 전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 토론장에 모여있던 사람들 그리고 웹진에서 이 고민을 함께할 모든 분들이 함께 고민의 주체가 되어 각자의 방식으로 실천하고 연대했으면 한다. 그러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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