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지난 16일 국민일보 인터넷신문에는 "'한국 에이즈 감염인 중 다수는 남성 동성애자' 동성애자인권연대 보고서"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는 다음날 지면에도 발행되었다. 기사를 쓴 백상현기자는 최근 같은 지면에 [긴급진단-퀴어문화축제 실체를 파헤친다] 기사를 10차례에 걸쳐 기획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기사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팀이 2013년 제작한 <40~60대 남성 동성애자 에이즈 감염인 생애사 보고서>를 소개한다. 2년 전 나온 보고서를 뒤늦게 지면에 올려 특종인 양 카피를 붙이는 태도는 황당하기 그지없지만, 동기를 알고나면 순진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말인 즉 성소수자 인권단체가 동성애자의 HIV감염률이 높다고 인정하는 사실을 늦게라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기사는 해당 문장에 빨간줄을 그어 사진에 올리고 ‘이례적인 일’이라고 표현하며 당황한 기색을 비친다.

 

텍스트에는 보고서 문장들이 수차례 인용되어있다. 하지만 비중에 비해 내용은 충실히 반영되어있지 않다. 보고서가 심혈을 기울여 기술했던 감염인의 구체적인 삶이나 사회인식, 제도문제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 외려 기사는 전후맥락을 생략한채 감염인들이 섹스를 하고 그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는 특정 문장들을 중점적으로 인용한다. 에이즈혐오와 ‘불행한 감염인 서사’ 라는 혐오프레임에 질병당사자를 끼워맞춘 셈이다. 감염인들의 다종다양한 삶과 매 순간 복잡한 정서를 철저히 외면한 악의적 인용은 보고서가 질병당사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는 오해마저 사게 한다.

 

며칠전 기자는 행성인 사무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감상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며 인터뷰를 요청했다. 익히 그의 이력을 알았기에 거절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더구나 국민일보다. 동성애혐오성 짙은 기사를 대대적으로 냈던 신문사의 기자가 뻔뻔하게 성소수자인권단체에 전화를 걸다니. 하지만 기사는 통화 중 던진 말들을 주워 담아 ‘관계자’의 전언으로 실었다. 저열한 저널리즘의 혀놀림을 가벼이 봤던 대응 상의 패착이다. 대응 자체를 하지 말아야 했다. 대구 퀴어퍼레이드에서 진즉에 알아보고 자료집을 팔지도 말아야 했다.

 

관계자로 호명된 필자는 당시 기자와의 전화 내용을 기억한다. 그는 동성애자 인권을 위해 기사를 쓴다고 포부를 밝혔다. 말은 고맙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동성애자 인권을 위해 기자가 써온 기사들을 살펴보면 포부는 기만임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가 아름다운재단 후원을 받았다는 점을 빌어 내용과 아무상관 없는 박원순시장을 굳이 재단 설립자로 끌고 들어오는 부분은 저의를 의심케한다. ‘기승전박원순시장’의 일관된 논리는 성소수자인권에 박원순시장이 얼마나 기여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은 기술일 뿐더러, 기자가 박원순시장을 비난하려는 명목으로 동성애혐오를 어떻게 끌어들이고 있는지 십분 드러낸다.

 

장황한 인용을 붙이는 것만으로 부족함을 느꼈던지 기사는 말미에 동성애와 에이즈 사이에 ‘위험’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동성애자의 인권을 존중하기 때문에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 에이즈가 ‘유행’하고 남성 간 성접촉이 에이즈 감염 ‘위험’행위라는 것을 알려야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기자는 민성길교수의 언급을 인용하며 짜증의 정점을 찍는다. 동성애가 치료 가능하며 이성애로 전환할 수 있다고 주장해온 인물을 인용함으로써  동성애 찬반논리를 재차 반복하는 것이다. 

 

인권에 ‘위험’과 ‘질병의 유행’을 교묘히 병렬시키는 태도는 사회적 소수자의 경계성, 취약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자리를 인권으로 덧씌운다. 아니, 인권을 위험과 나란히 불러내는 그의 전술은 적극적으로 인권을 오염하고 부정한다. 흥미롭게도 인권 운운하며 위험을 이야기하는 태도는 최근 성소수자 차별선동단체들이 밀고있는 구호 ‘사랑한다, 돌아오렴’ 과 공명한다.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지고하고 근본적인지 알 수 없다. 더욱이 기자가 이야기하는 성소수자인권이 얼마만큼의 배려와 염려를 담고 있는지 또한 가늠하지 못하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들이 표명하는 관심과 사랑이 아름다운 언어 이면에 성소수자로서 나의 구체적인 존재를 위험한 것으로 낙인찍으며 부정하고 삭제해야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보수기독교계에 중소 언론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들은 동성애혐오성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차별선동의 나팔수역할을 한다. 퀴어퍼레이드와 성소수자 의제의 기자회견에 나타나 선정적인 프레임으로 사람들의 코앞에 렌즈를 들이미는 이들은 날로 규모화되는 성소수자커뮤니티에서도 무시하고 방치하기 껄끄러운 대상이 되었다. 하여 큰 행사의 경우 올해부터는 프레스 등록 시 소속을 분명히 밝힐 것을 요구하는 등의 시도를 통해 이들의 출입을 제한한다. 국민일보와 같은 규모있는 매체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성소수자 혐오적 기사를 유포하며 대중에게 사회적소수자의 편견과 낙인을 찍고 차별과 배제를 선동하는 이들 매체에 대한 경계와 대응은 날을 거듭할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선동을 일삼는 언론과는 철저히 대화를 거부해야한다는 뼈저린 반성과 결심을 다잡는다. 이는 단순한 치욕에서 나온 수세적 선택이 아니다. 인권을 운운하며 에이즈혐오와 성소수자 차별선동을 표출하는 이들에 대해 단호한 선긋기가 필요하다. 그가 시사하는 ‘인권’은 누군가의 존재를 위협적인 존재로 몰아내야만 성립할 수 있다. 사회적 소수자를, 질병에 취약한 행위를 위험으로 부르며 분리와 경계를 부추기는 행위는 규범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정상성의 논리이다. 불완전한 모든 존재들의 인권을 모욕하는 행위이다. 적어도 우리가 공유하는 인권은 불완전함의 무게를 함께 지는 것, 불완전함을 불안으로 번역하는 사회규범에 끊임없이 질문하며 우리의 자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노골적인 편견과 비난이 만연한 매체의 오염된 인권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부여된 사회적 이름을 거스르고 서로의 모습을 바라볼 것인가. 인권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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