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위원)
안녕하세요. 오소리입니다. 지난 8월 활동가 편지를 통해 ‘반상임’활동가로 여러분께 인사를 드린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행성인 총회에서 인준을 받고 ‘상임’활동가가 되어 다시금 여러분께 인사 드립니다.
사실 상임활동가가 되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습니다. 주 4일 출근에서 주 5일 출근으로 바뀌었고, 지급 받는 활동비가 그만큼 올랐다는 정도이지요. 그래서 이 편지에서는 ‘상임’활동가로서의 포부나 다짐을 밝히는 것이 아닌, 상임/반상임활동을 떠나 ‘상임활동’을 시작하기까지 그리고 시작한 이후 느꼈던 감정들과 가졌던 생각과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행성인 활동을 한 지 1년이 지날 무렵 활동에 재미를 붙여가며 인권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당시 대학 4학년이던 저는 졸업까지 마지막 한 학기 만을 앞두고 진로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교양 수업으로 듣던 철학 수업 시간에 니체의 ‘힘에의 의지’ 그리고 ‘긍정적인 삶’과 ‘부정적인 삶’에 대해 듣게 됐습니다.
부정적인 삶’은 소문(들은 대로 말하는 것)대로, 그저 나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고 여기서 주체는 ‘they’ 이다.
긍정적인 삶’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 그리고 그 결과마저도 (결과가 ‘그들’에게는 좋아 보이지 않더라도) 긍정하는 것이고 여기서 주체는 ‘나’이다.
수업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경우의 수에 따라 이것저것 재보기도 하고, 당장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어느덧 결론은 지어졌습니다.
수업 마지막 즈음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다 바쳐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손 들어봐라.” 아무도 손을 들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저 홀로 당당히 손을 들고 외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권운동이요!” 라고 말이지요.
상임활동을 시작한 지난 8월은 제가 행성인에서 활동한 지 2년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활동 경험도 적고 아르바이트 외에 장기적으로 일해 본 경험도 없고 다른 일을 통해 모아둔 돈도 없었기에, 상임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하지만 전업 인권활동가라는 꿈이 있었고, 자신감과 자긍심이 충만하던 시기였기에 주변의 걱정하는 목소리는 크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상임활동을 시작한 이후에야 자신감이 자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상임활동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각종 행사와 회의로 주말과 저녁 시간은 사라지고, 공과 사의 경계가 흐려지고, 지급 받는 활동비로는 생계 유지만 할 뿐 ‘사치’는 말 그대로 사치였습니다. 활동이 몰아닥칠 때는 힘겹게 느껴지기도 하고, 지치기도 합니다. 활동가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상처를 입고 때론 울기도 합니다. 한 단체의 상임활동가라는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나 부모님과의 갈등이었습니다. 나름 ‘전도유망’한 학교와 과를 나와 인권단체에서 활동을 한다는 것을 부모님은 받아들이지 못하셨습니다. 상임활동을 시작한 이후부터 부모님을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극복해낼 수 있었습니다. 주말과 저녁 시간을 뺏겨도 행사와 회의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논의하는 그 자체를 즐겼고, 공과 사의 경계를 구분 짓는 스킬을 조금씩 익혀갔습니다. 절약하며 가끔은 어느 정도 사치도 즐기고 있습니다. 여전히 어느 정도 불만은 있지만,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부모님도 설득시킬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일에 구애받지 않으며,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온전히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였기에 상임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8월 상임활동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많은 성찰과 반성을 거쳤습니다. ‘그 때는 왜 그랬지’하며 탄식하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기억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한 부분도 많고 배워야할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누구나 성장은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배워서 계속해서 성장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회원 이야기 > 행성인 활동가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활동가 편지] 4월의 편지 (0) | 2016.03.30 |
---|---|
[활동가 편지] 내 삶의 20%를 넘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며 (4) | 2016.03.22 |
혐오와 차별을 부채질할 ‘쉬운 해고, 평생 비정규직, 임금삭감 노동개악’에 반대합시다. (1) | 2015.09.21 |
초대장을 드립니다 (0) | 2015.09.15 |
1+1=1이 되는 목소리 (0) | 2015.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