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성(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위원)
안녕하세요. 재성입니다. 기나긴 겨울을 지나 어느덧 봄의 향기가 물씬 나는 3월, 활동가 편지를 통해 여러분들께 인사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지난 2월 행성인 총회를 통해 저는 행성인 운영위원이자 HIV/AIDS 인권팀 팀장으로서 2016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2010년 4월, 수줍음 반 두려움 반으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렸던 고(故) 육우당 추모행사에 나갔고, 행성인과의 인연은 시작되었습니다. 어느덧 만 6년, 삶의 20%를 함께 한 동반자 행성인은 제게 단순한 성소수자 인권단체 이상입니다. 벽장을 뚫고 커뮤니티로 큰 발걸음을 내딛게 해 준 인도자같은 존재죠.
행성인과 함께하면서 제 삶은 이전과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게이라는 정체성을 감춘 채 어찌 보면 평범할 수 있는 삶을 사는 대학생이었고, 사회 운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가지지 않았었죠. 하지만 행성인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가 가진 정체성이 사회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활동을 하고보니 저는 언제부턴가 전면에서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역설하는 게이가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HIV/AIDS 이슈가 거짓말처럼 찾아왔습니다. 행성인(당시 동인련) HIV/AIDS인권팀 원년멤버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HIV/AIDS인권팀은 한국 성소수자 운동 역사상 최초로 성소수자 인권단체 내에 HIV/AIDS 이슈를 다루는 전담 팀입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HIV/AIDS 인권팀은 2011년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ICAAP)에 참석하면서 다른 관련 단체들과 연대를 돈독히 할 수 있었고, 이후 에이즈 운동과 성소수자 운동을 연결하는 가교로써 오늘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행성인에 첫 발을 내딛으면서부터 제 마음속에 일종의 신념같이 자리잡게 된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성소수자 운동과 커뮤니티는 항상 함께 가야 한다’ 라는 것입니다. 운동의 성과가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만이 아닌 종로와 이태원, 홍대에 놀러 나오는 성소수자들도 변화의 흐름을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운동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3년 전부터 운동과 커뮤니티 연결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 HIV/AIDS 이슈에 대한 관심을 커뮤니티와 함께 높이기 위해 ‘RED PARTY’를 구상했고, 2014년과 2015년에는 파티 공연팀으로 참가하기도 했죠. 다른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종로와 이태원에 가면 항상 있는 게이, 놀면서도 성소수자 인권증진을 역설할 수 있는 친숙한 얼굴이 되는 것이 최근 저의 새로운 목표입니다.
최근 소위 ‘동성애 반대세력’들의 혐오가 점차 집요해지고 체계화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HIV/AIDS 이슈는 그들의 제 1 공격대상이 되고 있죠.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올해 행성인의 운영위원이자 HIV/AIDS 인권팀장으로서의 1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길고 힘든 싸움이 시작될 것이 분명한 만큼, 올해는 행성인과 HIV/AIDS 인권팀이 내실을 다지고 역량을 키워야 하는 해가 되었습니다. 커뮤니티와 접점을 넓히며 운동의 외연을 확장해야 하는 도전에도 직면했고요.
때로는 정말 힘들었고,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점차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관성에 사로잡히고 있는 제 모습을 보노라면 한숨이 나올 때도 많았습니다. 전업 활동가가 아닌, 일과 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입장으로써 가끔 역량의 한계에 봉착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하지만 의연하게 앞으로 나가고자 합니다. 때로는 활동가로, 때로는 팀 리더로, 때로는 섹시 댄서로 변모해야 하는,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시점이 올해이고, 또 그래야 하는 사람이 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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