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지난 5월 10일, 아시아 LGBT 부모모임 초청 포럼이 성황리에 마무리 됐습니다. 궂은 날씨, 평일 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100여명 정도 되는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었습니다. 성소수자 자녀와 부모가 함께 오기도 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지만 실제 당사자 분들이 직접 찾아와서 도움을 받고 있다는 점이 가장 뜻 깊고 뿌듯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그 날 오고간 이야기를 한 분이라도 더 접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 성소수자 그리고 이민자

 


포럼 제목이 아시아 LGBT 부모모임인데 왜 참가국에 미국이 있나 의아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 이유로는 미국이 전 세계 부모모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다인종, 다문화(아시아를 포함한)라는 국가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 대표로 오신 클라라 윤님은 한국계 미국인이시며 API 프로젝트(아시아, 태평양계 성소수자와 그 지지자/가족을 위한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이자 창시자이기도 합니다. API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유는 아시안 성소수자가 처한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클라라 윤님이 미국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처음 찾아갔을 때 아시아계 성소수자 부모님이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뉴욕엔 아시아계 성소수자가 없는 걸까?”라고 의문을 품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럴 리 없겠지요. 실제 이유는, 그들이 고국의 문화, 언어적 장벽, 그리고 종교적 배타성에 몇 중으로 쌓이며 수면 아래로 묻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정의 문제를 가정 안에서만 끝내려는 ‘체면’이라는 문화, 대를 이어야 한다는 유교 문화,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이를 가로막는 언어의 제약, 또 이주민 네트워크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종교까지. 이런 이유들로 이주민 성소수자는 내국인 성소수자보다 더욱 보이지 않게 됩니다. 저는 이 점에서 크게 두가지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 혹은 아시아의 문화적 특수성이 성소수자 문제에서 어떻게 증폭이 되는가” 였습니다. (동)아시아의 문화를 축약하자면 집단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집단은 개인을 보호해주고 많은 자원을 제공해줍니다. 하지만 역으로, 집단을 이루기 위해 타 집단과의 분리와 단절을 더욱 공고히 하기도 하고, 또 그 집단 안에서 배제되는 이는 잃을 것이 상당합니다. 아시아 성소수자와 그의 부모는, 집단 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은폐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집단 문화가 더욱 강화되는 이주민 커뮤니티에선 더더욱요. 


두 번째는 “우리나라 사회 속 이주민 성소수자”입니다. 저는 안산 그 중에서도 원곡동이라는, 한국의 다문화 성지 격인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저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행성인에서도, 여타 단체에서도, 어떤 행사나 캠페인에서도 이주민 성소수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발표를 듣다가 아차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열 명 중  한 가정이 다문화 가정이라는데, 이주민 성소수자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이게 클라라 윤님이 겪은 현실과 다를 게 무엇이지? 아직 한국은 여성, 성소수자, 청소년, 다문화, 장애 등등 각각의 독립적인 이슈들을 공론화하기에도 버거움을 겪는 실정입니다만 그 사이의 교차성을 살펴보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부모모임의 API 프로젝트처럼, 우리도 훗날 그런 프로젝트를 필요하게 될 때가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중국 - 조직의 성장과 관리


중국 측 발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조직의 성장과 관리였습니다. “인구가 많으니 당연히 조직도 크지.” 단순히 이렇게 생각해보면 크게 생각할 여지도 없이 ‘당연’해 보이는 부분일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이것은 다분히 인위적인 결과입니다. “인구가 많으니 (조직 능력이 발전하고) 조직도 커지지.”가 맞을 것입니다. 저는 중국 측 발표에서 그런 발전된 조직 능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첫 번째, 각종 행사와 회원 조직의 연계성이 높습니다. 중국 측은 매년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는데, 그 컨퍼런스에 오는 부모님들이 바로 모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계를 돕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자생적 활동가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중국은 부모 교육 프로그램을 통하여, 부모님들을 활동가로 양성하고 있습니다. 후엔 그런 부모님들이 다시 활동가를 양성합니다. 도움을 받는 자에서 주는 자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높은 확장성을 갖출 수 있게 됩니다. 아직 행성인 내에서 인큐베이팅을 하고 있는 한국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이 점을 꼭 숙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교류 소프트웨어와 핫라인 운영입니다. 중국 부모모임은 온라인으로 매일 정해진 시간에 모이고 있습니다. 또 중국 전역에서 전화할 수 있는 핫라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간, 시간적 제약이 있어 오프라인 만남이 어려운 부모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지요. 이 활동도 자원 활동가들(부모님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다, 활동가 부모님들을 위해 심리 상담가도 초청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을 통해 활동을 지치지 않고 더욱 장기적으로 할 수 있게끔 합니다. 이런 네트워킹 능력들로 현재는 1200명의 자원 활동가, 100곳의 지부를 갖췄습니다. 또한 2009년 첫 개최 당시 여섯 명의 부모가 모였던 컨퍼런스에 올해에는 1600명이 모일 것 같다고 합니다. 


일본 - LGBT뿐 아니라, LGBT를 차별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질의응답을 정리하는 시간 때 일본 측에서 해주신 말씀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lgbt아이를 지키지 않으면 안됩니다만, lgbt를 차별하지 않는 아이를 만드는 것도 저희의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이 일본 부모모임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단체는 회원의 1/3이 지지자라는, 아주 높은 비당사자 참여율을 보였습니다. 이 결실을 맺게 해준 다양한 기반 활동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보급 계몽 활동입니다. 일본 부모모임은 각 지역 지부에서 교육을 실시합니다. 후쿠오카는 매년 3개월에 1번씩 공부모임을 갖습니다. 성소수자의 취업, 동성혼, 실제 인권 활동가를 통해 성소수자 인권 현황 등을 배웁니다. 둘째, 연수회와 공부회입니다. 일본 단체는 교직원이나 지자체 행정직원들이 성소수자 인권 교육을 연수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일반 시민, 중고등학교, 대학교 상대로 인권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고베 시립 중학교에는 성소수자 인권 팜플릿을 7만부나 배부했다고 합니다. 셋째, 제언활동입니다. 지역 행정기관, 정치인들에게 제언을 하고 혹은 혐오 발언을 규탄하기도 합니다. 이런 노력들의 결과로, 행정 의원들을 상대로 앙케이트를 했는데(당신은 LGBTIQ를 알고 있습니까?) 조사기간 4년 만에 ‘안다’가 ‘모른다’를 역전하고 현재는 70퍼센트가 ‘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문부성에서 작년부터 성소수자 학생을 배려하는 교육 지침을 세웠고, 후쿠오카에서는 도덕교과서에 다양한 성을 넣기 시작하는 등 정부 기관에서 그간 노력에 화답하고 있습니다.  


한국 - 한국,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개선이 가장 빠른 국가


한국 부모모임은 출범한지 이제 3년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매달 정기모임을 갖고, 성소수자 당사자, 그 부모, 비당사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오고간 이야기와, 부모님 심층 인터뷰를 모아 대화록을 출간하기도 하고 성소수자 부모를 위한 가이드북을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SNS에서 성소수자의 가족, 성소수자 지지자 스타를 홍보하거나, 부모모임 홈페이지를 구축하는 등 인터넷 망도 차차 활용하고 있습니다. 퀴어퍼레이드나 아이다호 같은 성소수자 관련 행사에도 참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직 한국은 위 세 개국만큼의 성과는 없습니다. 미국처럼 ‘성소수자와 이주민’이라는 새로운 의제를  발굴한 것도 아니고, 중국처럼 광범위한 조직을 갖춘 것도 아닙니다. 일본처럼 정부 행정 기관과의 네트워킹이 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위 세 개국의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역사와 비교했을 때도 아직 축적된 데이터나 경험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마 이것은 한국 성소수자의 인권 현실을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타국과 비교 했을 때 유교와 개신교라는 이중의 억압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한국은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가장 빠르게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특히 젊은 층으로 내려올수록 그 속도는 배가 됩니다. 이제 3년차에 접어드는 한국 부모모임이 이런 국제 포럼을 주최할 수 있었단 점이, 어쩌면 이런 변화 속도를 시사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참 많이 남았습니다. 당면한 과제도 산더미 같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이런 교류의 장이 더욱 활발히 열려, 더 배우고 얘기하고 토의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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