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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행성인 활동가 편지

[활동가 편지] 행성인에 드리는 편지

by 행성인 2016. 6. 29.

팀깃즌(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매년 우리는 고통 속에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기립니다. 더불어 성소수자로서 살아가기 위험천만한 한국사회에 생존하고 있습니다. 슬프게도 우리는 높은 자살률, 증가하고 있는 가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숫자와 SNS에 퍼져있는 절박한 외침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슬퍼하고 분노하지만 동시에 이제는 달라질 거라고, 더 나아질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셀 수 없는 외침들이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으며 응답 받지 못한 채 지나갑니다. 들리지 않은 외침 뒤에 불만과 요구, 불안과 애원조차 목소리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를 더 필요로 합니다. 이들은 바로 우리 옆에 있습니다.

 

운동activism이란 많은 것을 의미하지만, 무엇보다도 협력하여 서로에게 힘을 줘야 합니다. 우리는 직장, 학교, 연구, 공부, 관계, 그리고 일상에 밀려 활동을 잊거나 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고 느낍니다. 언제나 나 말고 일할 누군가 있고, 이미 후원금과 회비를 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큰 행사에 참석하고 내가 필요할 때 도움을 주면 되니까.’ 라고 자위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깨닫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운동에 있어 여러분들의 참여가 항상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적은 사람이 너무도 많은 것을 하기에 운동에는 엄청난 부담이 따릅니다. 인간의 한계는 결국 활동가들로 하여금 포기를 독촉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활동가와 친구들, 가족들이 포기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습니다.

 

저와 한국의 인연은 10년이 넘습니다. 여기서 살고, 일하고, 연구하고, 공부했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에는 한국에 머물며 퀴어운동의 겉과 속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저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활동해온 굉장한 사람들, 여러분 모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한편으로 저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여기에 간단하지만 의미 있는 실천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바로 나 자신과 서로를 더 아끼는 것입니다.

 

지난번 열린 아시아 성소수자 부모모임 포럼에서 한 부모님은 우리가 서로 잘 지내고 있는지, 일이 너무 많지 않은지 물어보는 것 또한 운동의 일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용은 상냥하지만, 함의는 혁신적이었습니다. 일이 너무 많으면 그들은 숨김없이, 기꺼이 일을 도와주고 대신해 줄 사람을 찾아줍니다. 함께 운동하는 이들의 행복과 안녕이 가장 최우선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을 더듬어보면 서로에게 간단하게나마 안부와 고충을 묻고 일을 나누는 실천이 지속적인 운동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활동가들이 대면한 사건과 그에 따르는 실무가 과중되어 추가적인 도움을 필요로 할 때도 있습니다.

 

활동은 이견의 여지 없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경영인도 아니고 자본주의적 기업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업무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저는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의 일과 노동이 각자의 방식과 습관에 얼마나 쉽게 갇혀버릴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틀을 깨고 경쟁과 자존심으로부터 자유로이 새로운 종류의 노동을 포용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고 혁신적일지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인간이기에 항상 잘 지낼 수 없습니다. 얼마든지 의견이 충돌하고 서로의 신경을 긁으며 더러는 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활동은 운동입니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바로 ‘더 나은 정의’를 위해 제약된 조건들을 넘어설 수 없을까요? 우리의 노동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예시를 보여주면서 이 운동을 이끌 수는 없을까요?

 

고민을 실천하는 방법은 서로에게, 동지들에게, 친구와 가족들에게 간단한 두 질문을 건네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잘 지내니?’,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질문은 가볍지만, 이를 실천하는 노력은 우리가 들리지 않는 외침에 다가가는 첫 발이며 우리의 삶과 노동의 매 순간을 운동으로 바꾸는 길일 것입니다. 단순히 안부를 건네고 정기적으로 서로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건네는 것에 멈추지 않고 서로 활동을 나누고 협력하고 지지하며 서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행동들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돕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돕고 세상에 만연한 불의에 맞서며 지속적인 평등이라는 우리의 비전을 사회에 실현시킬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