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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행성인 활동가 편지

[활동가 편지] 마음을 잇고 이어서

by 행성인 2016. 7. 6.

씨엘(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청소년 인권팀)

 

 

 

안녕하세요. 이번에 편지를 쓰게 된 씨엘이라고 합니다.

 

뜨겁게 내리쬐던 햇살로 인해 밖을 나가기 엄두조차 나지 않았는데, 며칠 전부터 쏟아지던 장맛비가 달궈진 땅을 식혀줘 한결 시원해졌습니다.

 

저는 비성소수자입니다. 나중에 성 정체성/성적 지향을 정정할 수도 있을 거라는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성애자로 정체화하고 있습니다. 비성소수자인 것이 당연한 가정에서 자랐고 누구도 그 외의 것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친구가 커밍아웃을 해서 성소수자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 가족은 천주교 집안입니다. 하지만 독실하지 않고 저 역시 바람직한 신자가 아닙니다. 심지어 기독교가 성소수를 혐오한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한때 ‘동성과는 왜 친구관계까지만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었지만 감히 의문을 품으면 ‘하나님이 나를 벌하는게 아닐까’ 두려웠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은 제게 너무도 무서운 존재여서 대다수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주변에서 성소수자를 금기시하는 매체들과 주변 사람들의 영향으로 스스로를 검열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행성인은 앞서 말씀드린 제게 커밍아웃한 친구가 소개해준 단체입니다. 처음에는 ‘단체 사람들이 좋아서’, ‘재밌으니까’ 행성인을 찾았습니다. 이후 아는 얼굴들이 있고 저와 같은 청소년들이 있어 편한 청소년 성소수자 자긍심팀(현 청소년 인권팀)에 들어갔습니다.

 

단체활동을 하기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얘기들을 종종 듣습니다. 비성소수자에게 차별 받았던 이야기, 성소수자를 비하하거나 희화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화가 납니다. 하지만 동시에 ‘시스젠더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살아온 나는 과연 떳떳한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그런 적이 없다고 기억하지만 성소수자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시스젠더 이성애자로 권력을 누리며 (무)의식적으로 성소수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관했을 것입니다. 지난 가을 크리스가 하늘로 갔을 때, 이 세계에서 누군가에게 가해자 또는 방관자가 되었을 제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더 나아가 ‘당사자도 아닌 내가 이 단체에 남아 있어도 되는가’ 하는 고민도 들었습니다.

 

지난번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집회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올랜도 총격 사건으로 추모를 하면서 당사자가 아닐지라도 같이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같이 공감하고 분노하고 연대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앞서 말한 고민들이 저를 힘들게 할지라도, 고민을 통해 제가 다른 사람과 이어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저는 제가 비성소수자로서 살아오면서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을 다 같이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을 거듭하며 앞으로도 사람들과 함께 같이 공감하고, 소리치고, 분노하고, 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