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트랜스젠더 활동가)
Wonder Man
지난 8월 1일 발표된 허밍어반스테레오와 밴젝스의 콜라보 곡 <Wonder Man>, (아마도) 비수술 트랜스여성을 만난 남성화자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이 곡의 가사에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반응들을 보일까 해서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인터넷상에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희화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라 하여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웃기다’, ‘충격적이다’, ‘독특하다’ 등 대수롭지 않게 보는 반응들이 주를 이루었고, 개중에는 ‘결국 마지막에 사랑한다고 끝나니 좋은 거 아니냐’는 독특한 반응도 있었다.
Wonder Man 가사
사실 나는 허밍어반스테레오라는 밴드에 대해서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알게된 김에 다른 곡들도 들어보았지만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이러한 가사를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내가 곡을 들으며 떠오른 생각은 이러한 곡이 만들어지고 소비될 수 있도록 하는, 우리 사회에 트랜스젠더가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이었다.
트랜스 패닉 방어
‘트랜스 패닉 방어 전략’이란 말이 있다. 이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범죄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가해자가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을 말한다. 즉 일반 여성/남성으로 알고 있던 피해자가 트랜스젠더였다는 점에 충격을 받아서, 또는 피해자가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분노를 느껴서 자제력을 잃고 폭력/살해 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트랜스 패닉 방어는 주로 비수술 트랜스여성에 대한 남성의 가해 사건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2010년 경북 경산에서 일어난 트랜스여성에 대한 살해 사건 역시 그러했다. 이 사건은 사실 연인간에 금전관계가 얽혀 발생한 강도살인 사건임에도 가해자는 “피해자가 트랜스젠더임을 알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했다”고 주장했고, 많은 언론들이 이를 여과 없이 받아들여 「내 여친이 남자?…트랜스젠더 살해 20대 구속영장」(쿠키뉴스) 와 같은 기사들을 쏟아냈다. 1
혐오폭력을 다룬 최근 보고서는 이러한 패닉 방어 전략이 결국 사회에 만연한 트랜스젠더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했다”는 변명이 음주문화에 관대한 사회적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듯, “트랜스젠더인 것을 알아서 그랬다”는 변명 역시 트랜스혐오적인 사회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사회가 변함에 따라 음주 방어 전략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음에 비해 트랜스 패닉 방어 전략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2
거짓말? 반칙?
<Wonder Man>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패닉 방어를 설명한 것은 이 곡의 가사에 깔려 있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 패닉 방어의 그것과 공통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곡으로 돌아와 보자. 애인이 비수술 트랜스여성임을 알게 된 화자는 반복적으로 “거짓말이야”라고 외친다. 애인에게 그게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건 반칙이잖아”라고도 한다. 거짓말, 반칙, 이와 같은 말들은 연인 간에 또는 성적 만남에 있어 처음부터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밝히지 않은 것이 서로 간에 지켜야할 신뢰를 저버린 기망 행위라는 메시지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곧 트랜스 패닉 방어 전략에서 주로 쓰이는 언어이다. 상대방이 트랜스젠더임을 숨겼기에, 기만했기에, 나의 분노와 폭력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노래의 화자가 물리적인 혐오폭력을 구사하고 있지는 않다. 어찌되었든 받아들이기 힘든 애인의 비밀을 알고 이 정도 반응은 보일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곡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러한 개인적인 충격과 당혹에 그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까 너의 목소리가 / 그러고 보니까 너의 발치수가
/ 다 알고 보니까 / 다 그런거 같아 ...... 이젠 오빠라고 부르지 말아줘 Brother
- Wonder Man 가사 중
곡의 중반부에서 나지막하게 나오는 이러한 말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밝혀진 트랜스젠더가 어떤 일을 겪을 수 있는지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별에 따라 키, 외모, 골격, 나아가 성기 형태까지 신체적 특징이 명확히 구별된다고 믿는 이분법적 사회 속에서, 걸리시(Girlish)하고 정말 예쁘고 천상 여자였던 화자의 애인은 이제 목소리부터 발치수까지,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급해서 여성성을 의심받고 여성으로 여겨지기에 가능했던 오빠라는 호칭은 거부당한다. 그리고 그렇게 차마 말을 못 하면서까지 지켜오던 여성성을 박탈당한 그녀는 단지 ‘그게 있는’, 보이(Boy)라고도 걸(Girl)이라고도 하기 힘든 기묘한 존재로 남겨진다. 연인으로서의 공감과 이해는커녕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중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과연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지 않은 대가로 감수해야 하는 일들인가?
이것이 단지 노래 속 이야기일 뿐이라 할 수 없는 것은 이와 같은 일들이 정확히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몇 트랜스여성들이 성매매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사건에서 경찰과 언론은 모두 이들이 트랜스젠더임을 숨겼다는 것에 초점을 두었고, 엄연한 성매수자인 상대남성들은 ‘모르고 남자와 한’ 불쌍한 피해자로 둔갑했다. 성매수, 동영상 유포보다 트랜스젠더임을 숨긴 것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사회.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에 낙인을 씌우고 부정적 이미지를 만드는 사회 속에서 트랜스젠더에게 무조건적인 커밍아웃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사기, 기만이라는 비난을 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3
Wonderland
곡에 대한 댓글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었다. 성소수자에 대해 무조건적인 보호와 좋은 이미지만을 그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는 이 곡이 왜 문제냐는 글이었다. 맞는 말이다.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모두가 착하고 훌륭하고 행복하게 살고, 또 그런 모습을 보여야만 할 필요는 없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주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다만, 거기엔 전제가 따른다. 당사자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는 그러한 주체성을 거의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대중에 알려진지 10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트랜스여성은 ‘여자보다 예쁜’ 이미지로만 소비되고, 트랜스남성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하리수 씨의 기사에는 여전히 ‘리수형’과 같은 댓글이 달리고,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주기적으로 ‘얼짱 트랜스젠더의 놀라운 과거’와 같은 글들이 올라온다. 그리고 그런 현실 속에서 <Wonder Man>은 철저히 타자의 입장에서 트랜스젠더와의 만남을 웃기고도 충격적인 해프닝인양 이야기하고 있다. 허밍어반스테레오, 밴잭스에게는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놀랍고 신기할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이와 같은 곡이 만들어지고 아무렇지 않게 소비될 수 있는, 그러면서도 트랜스젠더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 사회가 참으로 이상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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