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글(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약 이주 뒤면 추석이다. 그 날은 온 가족들이 모여 전을 부치고,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시고, 각자에 대한 안부를 묻는 날이기도 하다. 요새의 친척들은 으레 일 년에 한 두 번 보는 사이가 태반이기에 대화는 주로 형식적인 틀에서 오간다. 하지만, 가끔은 그 속에서도 이례적인 충격적 선포(?)가 이뤄지기도 하는 법이다.


내 기억 상으로는 9년 전 추석 즈음, 난 고모들과 사촌형과 술을 마시다가 급작스럽게 커밍아웃을 했다. 어떤 계획도 없이 그저 술김에 ‘하고 싶어져서’ 우발적으로 해버렸다. 허나 부족했던 준비와 다르게 그 결과는 꽤나 좋았다. 우선 고모들께서는 자연스럽고 장난스럽게 대해주셨다. 사촌형도 마찬가지. 특히 둘째고모와 막내고모는 '네가 말하는 네 정체성이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너의 가족이고, 불법적인 것만 하지마'라며 웃는 투로 말씀하셨고, 막내고모부도 잘 받아주셨다. 다만 큰고모와는 좋지 못했다. 큰고모와는 눈만 마주치면 동성애를 주제로 논쟁을 했고 약 3년 정도 지난 후에야 괜찮아졌다. 큰고모와의 잦은 마찰로 약간의 고생을 했다. (헌데 나는 FTM 트랜스젠더이다. 커밍아웃도 분명히 “나는 내가 여자인 게 싫다.”라고 했다. 그런데 왜 동성애를 논쟁거리로 삼으셨던 건지...)


여하튼 그래도 대부분의 가족이 배려해주어 괜찮았다. 예를 들어 우리가족은 나 때문에 사우나에 가지 않는다. 보통 추석에는 많이들 사우나에 가는데도 말이다. 정 가야하는 경우에는 PC방이라도 가있으라며 돈을 주기도 하셨다. 가끔 내 정체성을 잊고 할머니나 다른 친척 분들이 나의 지정성별과 겉모습에 대하여 언급할 때면 고모들이 감싸주셨고, "우신이는 지금의 모습이 최고예요." 라거나 "우신이가 어떤 모습이든 자기가 원하면 된 거 아닌가요?" 라며 두둔해주시기도 했다. 그래서 나에게 추석은 매우 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위 다른 퀴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은 인식자체가 멀었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는 한다.


그들에게 성적 소수자란 무엇을 의미할까? 뭘 의미 하길래 그렇게까지 반대 하는 걸까? 또, 왜 큰고모는 트랜스젠더인 나에게 ‘동성애’를 문제시 삼은 걸까? 이런 저런 답답한 마음과 생각들이 떠오른다. 우리들의 추석은 지금 어떠할까? 정말 세간의 상투적인 묘사처럼 ‘정’과 ‘따뜻함’으로만 가득 차있나. 우리의 경험들을 말하고, 우리들의 추석을 적극적으로 커밍아웃 할 수 있는 사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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