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지난 10월 1일, 올해 첫 일하는 성소수자 모임(이하 일성모)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노동권팀의 문을 두드리고 여기에 참여한 지도 벌써 3년째다. 그 전까지 패싱(성소수자가 아닌 사람으로 보이거나 보여지는 것)하는 것이 너무 익숙했기에, 처음에는 일터에서 받는 차별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첫 해에 일성모에 참여하고서 내가 당연하게 지나쳐왔던 것들이 차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해의 모임은 마치 성소수자의 경험에 대해 다 알던 것처럼 구는 나에게 우리가 각자 처한 현실과 맥락들이 또 얼마나 다양한지 깨우쳐주었는데, 그때 쓴 글을 보면 당시의 당혹스러움이 다시금 떠오르는 것 같다.

 

올해 첫 모임의 주제는 '성소수자와 노동운동 - 해외 사례를 중심으로' 였다. 팀원과 회원을 포함해 총 열 세 분이 오셨는데, 아쉽게도 작년에 참여하셨던 분들은 뵙지 못했다. 첫 시간이므로, 우리는 자기소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루카님의 사회로 돌아가며 자신의 과거, 현재와 미래의 노동, 그리고 모임에서 바라는 바를 이야기했는데, 여러 아르바이트 경험을 가진 분이나, 법조인, 활동가,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 등 여느 때처럼 다양했다. 하지만 이 시간에 원하는 것은 성소수자로서 일터에서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나누고 그 대처법을 듣는 것으로 어느정도 일치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모임 이름에 '일터'와 '성소수자'가 들어 있으니 당연한가? 물론 내 차례도 있었다. 준비하는 노동권팀원 이전에 참여자로서의 두려움 섞인 기대는 내 이야기도 뭔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지난 시간들처럼 다른 분들의 경험을 통해 또 새로운 배움을 얻는 것이다.

 

통성명이 끝나고 이어진 모리님의 발표에서 우리는 두 가지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았다. 하나는 미국의 사례로, 197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노동조합과 성소수자들이 함께 코어스 맥주 보이콧 운동을 벌인 일이다. 당시 업체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동성애자를 해고하고, 노동자들에게 노조나 동성애자에 대한 생각을 묻는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행하는 등의 탄압을 일삼았다.

 

코어스 맥주 보이콧 전단. 오른쪽 전단에는 극우 반동성애 단체를 지원하고, 직원을 사찰하고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하는 등 코어스 맥주사의 행태를 적고 있다.

 

이에 당시 트럭운송노조가 커밍아웃한 운전사이자 운동가이며 노조원이었던 '하워드 윌러스'와, 후에 미국 최초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시의원이 되는 '하비 밀크'를 통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보이콧을 제안한 것이다. 이렇게 이뤄진 협력은 결과적으로 코어스 맥주의 점유율을 크게 떨어뜨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 연대는 이후 노조들이 밀크의 선거운동을 지지하고 동성애자 교사 차별법 반대에 연대하는 등으로 이어진다. 생각컨대 이런 혁혁한 성과들을 보고 있노라면, 직접적인 변화들을 이끌어 낸 당장의 사회적 힘이 먼저 부러워진다. 하지만 숱한 참여와 노력들이 그 기반을 다졌을 것은 차치하고라도, 하워드 윌러스처럼 노동조합 내에서 한 사람의 성소수자가 '생겨남'으로써 일어났을 변화를 상상해 보면 커밍아웃이라는 행위가 만드는 균열이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기도 하다.

 

코어스 맥주 보이콧 이야기는 영화 ‘밀크'에도 소개됐다. (오른쪽) 성소수자에게 연대했던 트럭운송노조 ‘팀스터스’의 현재 모습.

 

두 번째 사례는 1980년대 초에 있었던 영국 광산 노조와 성소수자들의 연대다. 대처 보수정권이 가족가치를 빌미로 한부모 가정, 이주민, 동성애자 등의 소수자들과 이를 지지하는 좌파를 공격하며 우파를 결집시키던 시대인데, 이때 탄광 폐쇄와 대량해고 계획이 발표되고 광부노조가 투쟁을 시작하자 런던의 동성애자들이 이를 지지하는 활동을 벌였다. 이후 연대가 이뤄지고, 자긍심 행진에 광부노조가 함께하기까지의 과정은 작년 서울 프라이드 영화제 개막작인 영화 '프라이드'가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광부를 지지하는 동성애자들(LGSM)’의 사진과 그 이야기를 다룬 영화 ‘프라이드'.

 

영화를 함께 보았으면 좋았겠으나 아쉽게도 국내 미개봉 상황이어서, 우리는 예고편과 학인님이 준비한 장면 소개 자료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영화는 투쟁의 격렬함을 묘사하거나 당위를 설명하는 대신 관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집중하는, 그래서 상대적으로 가볍게 볼 수 있는 영상물이었다. 상업영화라 그런지 내용 전부를 역사적 사실로 믿기엔 일견 너무 매끄러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슴 찡했던 것은 연대에 나서는 성소수자 주인공들의 감정과 상황이 무척 익숙했기 때문이고, 너무도 낯선 이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나가는 이야기는 자꾸만 현실에서 만들고 확인하고픈 그런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냉정하게 본다면 파업은 실패했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사라진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관계의 역사적 전략적 의의를 크게 주목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건 단지 휴머니즘 영화이기 때문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왼쪽) 파업 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 행사 “광부들과 변태들의 무도회"의 포스터. (오른쪽) LGSM의 트럭 앞에 선 LGSM 멤버와 광부 가족들.

 

이번 시간엔 운동이 주제였으므로 소감도 자연 운동에 대한 생각들이 나왔던 것 같다. 어떻게 연대해야 할까 하는 노동권 팀원의 고민부터 자신은 한 게 없다는 반성과 활동을 알리는 것에 더 적극적이었으면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한편 영화에서 성소수자들이 연대해야 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아 아쉬웠다는 의견과 이번 시간에 성소수자들이 일터에서 겪는 어려움 등에 대한 고민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박희은 민주노총 비정규국장님을 모시고 강연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다음 시간이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다.

 

광부파업에 연대해 준 보답으로 1985년 런던 자긍심행진에 참여한 전국광부노조. 전국광부노조는 이후 영국노총(TUC)과 노동당이 동성애자 권리를 지지하는 규약을 공식 채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하는 성소수자 모임 3회차 - 전태일 평전을 읽는 밤> 안내

 

 

일하는 성소수자 모임 2회차는 지난 10월 16일 진행되었습니다. 마지막 회차인 3회차 <전태일 평전을 읽는 밤> 은 10월 29일(토) 저녁 7시에 '우리동네 나무그늘'에서 진행됩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여기를 클릭하여 신청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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