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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회원 에세이

1주기, 49재(齋)의 기억

by 행성인 2016. 11. 13.

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안성 죽산 M마을 가는 길. 연고 없는 장소에 K를 보내러 가는 길. 여느 지방 터미널 택시기사들처럼 기사아저씨는 외지손님을 싣고 지역 향토해설로 어색함을 거든다. 방짜유기로 안성맞춤인 이곳엔 새터민 250명이 다니는 학교가 있고, 어사 박문수가 유과를 공양하고 꿈속에 시험문제를 받아 과거에 급제한 이후 수험생 부모들의 사탕공양이 끊이지 않는 칠장사가 있다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기계처럼 출력된다.
 
M마을은 K가 유고로 남긴 일기장에 적어놓은 장소였다. 그와 어떤 연이 닿는지 모르지만 부모는 여기서 천도재를 지내기로 결정하고 알음알음 K 지인들을 초대했다. 이름과 달리 마을이 아니라 사찰에 가까운 이곳은 정치활동을 열심히 하다 총선낙선 후 출가한 스님이 사비를 털어 지어올린 공간이다. 100년 이상 된 재래송을 기둥삼아 황토로 벽을 바른 건물들은 사찰이나 기도원보다는 남한강변의 전형적인 해장국집이나 황토찜질방의 모습에 가깝다. K의 일기는 마지막 인사 옆에 그곳의 이름을 써넣었고, 우리는 K를 하늘로 보내기 위해 그 대신 이 곳을 찾았다.
 
주지스님의 주재아래, 젊은 스님 한명의 보조로 의식을 진행했다. 단청 없는 건물 안에는 금박 없는 목제 삼존불이 있고, 곳곳에 거목 탁상들이 제기를 올려놓고 영가를 기다린다. 자살로 떠난 K를 위한 의식은 천도재가 아니라 인도재로 고쳐 불러야 한다는 주지의 전언. 응접실 벽에 한가득 붙여놓은 기사에 따르면 M마을은 자살예방상담도 해주고 그걸 자랑으로 삼는 ‘힐링 공간’이다. K가 진즉 여길 찾았다면 세상을 떠날 일도 없었으리라는 이야기가 굳이 반복된다. 살자와 자살의 말장난. 자신을 살생했으니 극락왕생은 불가능하고 윤회의 굴레에 들어가 인간속세에 한 번 더 환생하라는 판결이 불교적 세계관을 빌어 제창된다. 의식이지만 젊은 영가를 위해 쉽게 풀어 설명한다는 주지의 친절은 굳이 생생하고 구체적이었는데, 그만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당혹스럽다.
 
천도재와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고 사람들이었다. 죽은 사람을 기리는 의식에 익숙지 않았는지 주지는 연신 진행매뉴얼에 눈을 떼지 않았고, 젊은 스님은 주지의 아바타처럼 지시를 기다렸다. 종종 새어나온 둘의 대화는 야와 너로 호명되었고, 참가자 일원이 민망할 정도로 둘의 손발은 어긋났다. 불당에서도 동선을 헤매더니 막판에는 천수경 마지막 경구를 기억하지 못해 나무아미타불만 읊겠다 선언하고 불당을 세 바퀴 돌아 나갔다. 의식을 마치고 정리하며 평소 볼일 없던 불경을 기억하지 못해 그나마 기억하는 나무아미타불만은 어느 때보다 성심성의껏 외었다고 전한다. 어쩌다 K는 적 없는 안성 죽산 M마을을 찾아 굳이 일기장에 적어 제 갈 길도 질척이게 하는가, 다 네 팔자다.
 
K는 성별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성별을 확신하기 위해 의사소견도 받았을 것이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K는 타인의 판결에 자신의 길을 맡겼다. 미래는 밝지만 당신은 소진되었다는 얘길 하더라는 어머니 전언. 어머니는 그래도 K의 죽음은 본인의 선택 아니겠냐는 말을 수차례 반복한다. 천도재를 인도재로 고쳐 부르는 이곳은 법당이기보다 법원에 가까웠다. 그의 극락왕생을 거절하고 윤회의 나락에 던져버린 판결은 무게에 비해 너무도 쉬웠지만 너를 보내는 의식은 판결의 무게를 겨우 버텨내며 연신 삐걱이는 모습이다. 남자의 수트를 입고 있는 영정의 모습은 어떤 보정을 거쳐도 어색하다. 생전 모르던 본명으로 계속 불리는 것 역시 적응되지 않는다. 마지막 가는 길 무엇이 네 것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마지막 K를 본 날, 그는 자기주관 없이 관계를 잘 관리하지 못하는 본인의 성격을 한탄하고 자책했다. 자신이 좋다 고백하는 남자들에게 본인 의사도 어필하지 못해 힘들다는 말에 복에 겨웠다는 타박을 했건만. 40여일 전, 장지에서 채 식지 않은 유골함을 붙잡으며 네 몸이 따뜻했다고, 넌 사람 만지는 걸 좋아했다는 인사에 어머니는 곡을 멈추고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외롭다는 말을 노래처럼 읊조리던 것과 달리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가득 채운 모습에 당황했다고도 한다.
 
가족이 모르는 K의 생애와 우리가 몰랐던 K의 이름. K는 사람들에게 이름불리기를 싫어했고, 밝히는 것조차 꺼려했다. 멀리서 부고를 처음 접할 때, 충격 받은 사람들은 정작 K의 주민등록상 이름을 알지 못해 확인할 길 없이 발만 굴렀다. 가까스로 가족에게 연락할 수 있었던 건 누군가 네 이름을 놀려 얼굴을 붉히며 불쾌해하던 어디선가의 상황을 기억에 담아둔 덕이었다. K가 살았다면 굳이 부딪힐 일 없고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을 흔적들. 이질적인 두 생애의 예기치 않은 대면, 하지만 너는 없다.
 
기숙사에서 빨래를 널고 방청소를 마치고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본가 동네에 내려 언저리를 거닐다 여관방에서 자고 아침에 카페에서 커피한잔을 사마신 후 소싯적 동네를 돌던 목마 리어카가 섰던 골목 어디쯤 갔으리라는 마지막 동선이 카드내역서의 조각들로 재조합되었다. 방에는 50리터 종량제봉투와 검은 봉투가 고이 접어 놓여있었다고 울먹이는 어머니 전언은 그가 떠나던 상황을 추리한다. K에 대한 기억을 편집하고 솎아내는 것 역시 산자들의 몫이다. 전공은 화학인데 자동차디자인수업도 듣고 심리학책도 뒤적였는데 자신의 힘든 마음을 학문에 의탁해 읽어내려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아버지의 전언. 극단적으로 염세적인 세계관을 설파하는 철학자들 중에서도 자살한 사람은 없더라는 주지의 뇌까림에 부모는 침묵한다. K는 말이 없다. 묵언. 영가에 잔을 돌리면서 지친 단어들이 젖은 채 겨우 나온다. 어머니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고, 그 와중에 한 마디 울음이 너 같지 않은 영정사진과 공명하며 폐부를 관통한다.
 


                                        잘 가라. 이제 우리 언제 보냐.
 


가는 길 어머니는 우리에게 꼬깃한 돈 봉투를 쥐어줬다. 너네 어떤 애들인지 안다는 마지막 인사. K의 빈자리에 모인 낯선 생애들이 정동을 가라앉히고 맞이한 어색을 깨버린 섬광의 순간, 우리에게 한마디 인사를 건네기까지 K의 가족들은 생전 몰랐던 자식의 얼굴을 접했을지 모른다. 어떤 이물을 삼켜내지 못해 입안에 오물거리며 너희는 똘똘 뭉쳐 살아야 한다는 인사를 빚어냈는지 모른다. 필시 그건 연고 없는 M마을 주지가 의식 마지막에 펼쳐 보인 '함께 사는 사회' 족자의 휘갈긴 글씨, '그냥 그렇게' 라는 제목의 자필 시집과는 다른 무게일 것이다. K의 부재로부터 K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의 시간들. K에 대한 불완전하고 이질적인 흔적들을 대면할 수밖에 없는 낯선 순간들. 슬픔과 고통 속에 낯선 만남들이 오랜 고민의 산통 끝에 겨우 주파수를 조율하고 헤어짐을 앞둔 잠시의 사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