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퐁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첫눈이 내렸다. 공교롭게도 150만의 촛불이 모인 그 날이었다. 첫눈을 보고 있노라면 한 해의 끝이 보인다고 했던가. 수많은 촛불의 불빛들처럼 따스하게 날 감싸는 눈송이의 향기가 지난 1년의 잔상과 함께 맴돈다.


내가 ‘행동하는성소수자 인권연대(이하 행성인)’에 회원으로 들어온 지는 이제 8개월쯤 되었다. 심지어 도중에 한달 간은 육군훈련소를 다녀왔으니, 행성인과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긴 편은 아닌 듯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들 중,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어느 때보다 알차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고 확언할 수 있다. 행성인과 함께하면서, 나는 성소수자로서 모습을 드러냈고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속하게 됐으며 마침내 잃어버렸던 프라이드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처음 행성인에 가입하기 전에는 사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내가 과연 ‘행동하는 성소수자’로서 준비가 되어있는가? 자신의 가치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한 자가 누군가의 인권을 위해 싸울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하고 싶다”고 느꼈던 그 오묘한 이끌림에 나는 행성인에 왔고, 어느 정도 기대했던 바를 쟁취했다.


물론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었다. 괜찮은 척 연기를 했지만 종로나 이태원에 가본 적도 없었고 퀴어프라이드도 없었던, 그리고 내면의 끼(!)를 계속 억제하고 살았던―물론 그럼에도 흘러 넘치긴 했다―나에게, 자신의 젠더-섹슈얼리티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행성인 회원들은 멋져 보이기보다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성소수자에 대한 최소한의 공부는 했다고 생각했는데 나 자신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을까, 막상 현장에 오니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맞나 싶었다. 그런데 “최고의 공부는 경험”이라고 했던가. 점차 많은 모임에 나가고 잦은 소통을 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당당해졌고, 내 안의 혐오를 조금씩 지워나갔다. 그러다 눈을 떠보니 어느덧 나도 행성인의 일부가 되어있더라. 행성인과 같은 성소수자 단체의 가장 큰 장점이자 중요한 역할이 ‘퀴어-사회화’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의 퀴어 프라이드를 높여준 일련의 과정에서 행성인과 함께한 몇 가지 활동들이 무지갯빛 잔상처럼 기억 속에 부유한다. 역시 가장 짙은 스펙트럼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6월에 있었던 내 생애 첫 퀴어문화축제다. 미디어에 노출된 것들만 생각했던 나는 생각보다 너무 평범한(?) 복장들에 실망을 금치 못했지만 정말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그 순간들 하나하나가 참 좋았다. 행성인 트럭을 쫓아다니면서 춤추다가 혐오세력들과 대치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뉴스 기사에 실리기도 한 유쾌한 추억들. 이쁜 굿즈들을 죄다 사다가 텅텅 비어버린 통장잔고를 뒤늦게 확인하고 당황한 경험, 그리고 행성인과 함께 대구까지 가서 깃발을 들고 행진했던 그 긴장과 해방의 줄타기는 평생의 기억에 아주 행복하게 남을 것이다.


여기 또 하나의 짙은 잔상이 있다. 그것은 퀴어문화축제 때 찍은 영상으로 크게 화제가 된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내가 처음 갔을 때, 아마도 8월 쯤의 기억이다. 누군가의 부모님이실 분들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그리고 그분들이 나와 같은 자녀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는 것 또한 나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수많은 공감과 함께 여러 가지 답답한 오해들도 오갔다. 어느 순간엔 복잡하게 얽힌 생각의 줄들이 내 가슴을 옥죄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심난한 마음에 감정을 꾹꾹 누르고 있다가, 여러 가지 오해의 말들을 관통하는 뽀미님의 말씀―
“우리 아이는 참 외로웠을 거예요.”
―한마디에 갑자기 ‘펑’ 하고 눈물이 터져버렸다. 눈물로 범벅이 된 나에게 친구들은 휴지와 위로의 말을 건네었고, 이 소중한 경험들은 내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 그 동안 참 외로웠다. 애인의 유무는 이 독한 외로움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곁에 누가 있어도 있는 것 같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행성인과 함께한 최근의 몇 개월을 돌이켜보면 ‘함께’한다는 느낌을 참 만끽했던 것 같다. 나에게 당당할 수 있었고, 최소한 이 공간에서만큼은 자유로운 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언제나 편하고 든든한 나의 친구가 생긴 느낌이었다.


물론 나도 행성인도, 모든 것이 완벽한 친구는 아니다. 청소년이 참여하기 힘들었던 인권몬 캠프 시기, 모임 때마다 스쳐 지나간 수많은 문제적 발언들 등 짧은 시간 동안 마주한 크고 작은 아쉬움들도 있었다. 완벽한 사람도 없는데, 그러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가 완벽할 수 있으랴. 다만, 자정(自淨)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도,  내년에 있을 ‘언프리티 토크’와 ‘육우당 추모제’ 등 굵직한 행사를 참석하며 행성인과의 무던한 추억을 쌓으려고 한다. 내년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깊게 참여할 수는 없겠지만,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성장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와 함께 젠더 퀴어와 바이, 청소년 등 운동권내에서도 주목 받지 못하는 자들에 관한 모임의 장도 함께 열렸으면 한다.


2016년이 마무리되고, 언젠가는 촛불이 꺼지더라도 우리들의 아름다운 회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일련의 모임과 소통의 과정에서 행성인 그리고 내가 무지갯빛 잔상으로 남아 이렇듯 따뜻하게 기억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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