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1. 남일 같지 않은 남 얘기
이불을 뒤척이다 여느 때처럼 폰을 만지작 거리며 페이스북을 본다. 지난 월요일 새벽에 올라온 이태원 클럽 '르퀸'의 마지막 영업일 사진에 시선을 멈춘다. 화면에 떠오른 맨 몸의 얼굴들. 토요일의 열기는 다소 빠진 모습이다. 끝을 즐기는 기분을 읽고 싶었는지 얼굴과 표정, 흥건한 몸에 눈길이 간다. 땀에 젖어 부대끼는 살들이 플래시에 반사되며 반짝인다.
클럽은 내게 ‘다른’ 영역으로 밀려난 세계였다. 정신없고 시끄러운 공간, 무엇보다 육덕진 어둠 속에서 육덕지지 못해 마주해야 했던 고립의 기분은 숙취보다도 떨치기 힘들었다. 한밤의 정신분산적 쾌락은 아침이면 이불킥을 불렀다. 밤새 논 뒤 혼자 첫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 밀려드는 공허함이 싫었다. 이유가 하나 둘씩 늘었고 클럽은 풍문의 소재로만 남겨뒀다.
르퀸도 그들 중 하나였다. 다만 꾸준히 올라오는 사진들과 공연영상은 놓지 않았다. 클럽과 클러버의 친밀함이 파티와 사석을 넘나들며 SNS로 전달된다. 장소 불문하고 접속만 가능하면 현장의 대기를 나눌 수 있는 경험은 이전에 없던 감각이다. 클럽을 가지 않아도 방문자들의 페이지에 올라온 문자와 이미지, 음악과 영상은 물리적 장소와 향유의 범위를 넓힌다. 나 역시 클럽문화의 영향권 아래 ‘좋아요’를 누르고, 나를 모르는 그들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발산하는 쾌락을 감상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결속’의 문턱을 의식했고, 나와 다른 체형과 취향의 사람들이라는 자격지심을 곱씹으며 경계를 놓지 않았다. 결국 나는 화면 바깥을 넘지 못했다. 나의 것이 아닌 기억으로 남으며 르퀸은 커뮤니티 역사로 남게 되었다.
일련의 망설임은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동경과 욕구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무엇이 시선을 묶어둔 것일까. 최근 업소와 사용자 간 형식적 관계를 넘어서는 커뮤니티 모델을 구상하고 상상하는 지점에 르퀸은 큰 축을 담당했다. 호텔포차와 MouM, 클럽 루킹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상호 교차시키며 커뮤니티의 블록을 형성하는가 하면, ‘셀럽’부터 종태원의 다른 업소들과도 관계를 아우르며 '자매애'를 다진다. 연중 중요한 행사들의 주요 기획자 또는 후원자로 참여함으로써 사적 서클을 차원 이동하는 것 또한 커뮤니티의 생경한 시도들이다. 게이로서 자신의 몸과 체취를 드러내고 과시하는 클럽 본연의 역할에 트랜스젠더여성과 헤테로 드랙퀸이 함께하는 공간은 확장된 게이커뮤니티, 게이커뮤니티로 국한되거나 묶이지 않는 '퀴어' 공동체의 모습이다. SNS는 업주와 방문자를 끈끈하게 엮는 새로운 관계의 매개로서 물리적, 시간적 제약을 보충한다. 관계를 지속하면서 쾌락에 경조사까지 챙기고 사람을 모은다. 식과 섹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들을 나누는 공간, 춤추고 술 마시‘며’ 새로운 활동들을 만들어내는 공간으로서 르퀸은 클럽 버전의 ‘신생 공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저런 시도들을 변주하며 문화 활동을 조직·지원하고, 인권단체들과의 공조도 적극적이었다. 최근에는 추모의 장에 동참하는가 싶더니 집회현장의 성소수자들까지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멀지만 또 다른 동질감이 쾌락과 사회운동의 평행선을 가로지른다.
어느 공간이든 관계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소통을 다변화하고 일상의 공간으로 확대하는 시도들 속에서 생성되는 잉여적 관계와 의미들은 일개 업소를 ‘커뮤니티’로 그려나간다. 그동안 업소의 흥망성쇠는 몇 차례 접했지만, 업소의 범주가 커뮤니티 차원으로 언급되는 것은 근래까지 관찰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무엇보다 르퀸은 퀴어 공간이 어떻게 마지막을 맞을 수 있는지, 특정 장소의 마지막과 커뮤니티의 가능성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질적이지만 친밀한 기운이 이불 속을 휘젓는다. 담백하고 소소한 마무리를 훔쳐보면서 지금의 이 감정은 선망이나 동경, 또는 질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상관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재차 고민선상에 올린다. 다시는 없을 장소에 반짝이는 얼굴들은 새삼 이제 없는 관계들을 소환시킨다. 내가 ‘친구’로 불렀던 이들에 대한 ‘이 바닥’의 기억들. ‘동료’나 ‘동지’와는 다른 결의 문자들. 친구는 결속을 공적으로 증명하고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 정치적 노선과 의견을 조율하고 맞추는 관계와도 결을 달리한다. 게이 커뮤니티에서 친밀함은 사전적 의미를 미끄러지며 어딘지 쾌락공동체 같은 인상도 준다. 저들 역시 예쁘게 꾸미고 누군가로부터 쾌락을 추구하며 쾌락의 대상이 되기를 앙망하는 이들임을,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았을지라도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이들임을 본다. 이런 생각을 이불 속에서 혼자 하고 있다. 남들 노는 사진을 보며 관계를 고민하는 게 억울했던 걸까. 성소수자로 살면서 나에게 친구는 어떤 의미였을지, 성소수자에게 친밀함은 어떤 의미인지 상념에 잠긴다.
2. 남일 같이 되어버린 내 얘기
중학교를 졸업하고 ‘데뷔’를 했다. 동성애자로서 나의 정체성은 인터넷과 함께였다. 군소 사이트에서 채팅방을 기웃거리다가 종묘에서 첫 번개를 하고, 학교와 단절된 생활을 시작했다. 번개와 데이트, 연애를 반복하다 신촌에 첫 ‘정모’를 나갔다. 당시 대표적인 청소년커뮤니티인 ‘아쿠아’나 ‘애니79’는 사람이 많았다. 두어 번 나가다가 포기하고 여기저기 군소 신생 홈페이지들을 배회하다 같은 시기 만들어진 ‘포미앤유’를 아지트 삼았다.
팬시한 치약브랜드를 따온 모임의 홈페이지에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홈피에는 게이와 레즈비언 말고도 (지금의 언어로) 바이섹슈얼과 퀘스쳐너리, 안드로진, 호모 플렉시블, 앨라이와 팬픽이반이 어색하지 않게 어울렸다. 청소년이 태반이던 모임은 정기적인 회합을 가졌다. 단속을 피한답시고 들어간 후미진 골목 여관 옥탑방에서는 전국구에서 찾아온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하룻밤동안 봉인된 끼를 풀고 진한 시간을 보내며 오장육부를 두들겼다. 한달에 한 번 있는 정모는 동성애자로서 내가 식찾아 성애만 하는 존재가 아님을, 온라인에 갇혀 자조하는 존재가 아님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같이 놀던 일원 중 누군가가 우리를 ‘패밀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망설임 없이 저마다 역할을 분담했다. 패밀리는 모계가족모델을 따랐다. 몇 살 차이도 나지 않으면서 ‘00째 딸’ 쯤 되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이모나 엄마 어디쯤으로 불렸다. 사람이 불어나면서 나는 ‘자식’들의 얼굴도 분간할 수 없게 되었고, 더러는 가족들과 몸을 나누며 ‘족보’를 만들기도 했다. 패밀리의 몇몇 일원이 따로 파생 서클을 만들면 내분이 일어났다. 당사자는 암묵적으로 모임을 떠나거나 상대를 내보냈다. 내밀한 관계는 터치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패밀리가 생채기 나면 그들 중 누군가는 모임을 나오지 않았다.
모임들이 통과의례처럼 생애를 거쳐 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청소년사이트에서 학교모임으로 둥지를 옮겼다. 학교 이반모임을 몇 년간 나가고 지금은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붙박이가 되었다. 그 사이 사이트는 사라지고, 사진 몇 장만 기록처럼 남았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구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저마다의 커뮤니티에 활동하느라 자연스레 멀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을 하지만, 어떻게 멀어졌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억이 없다. 다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대부분 연락이 되지 않고, 연락을 취하지도 않는다.
우리에겐 오마이스쿨 같은 사람 찾기 서비스가 없다. '사람찾기' 게시판이 있다 한들 태부족한 정보로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카톡이나 텔레그램은 커녕 그나마 교류했던 싸이월드는 이제 쳐다도 보지 않는 흑역사의 묵은 창고가 되었다. 모임이라 해봐야 정관은커녕 설명도 없다. 모임을 나가지 않은 이후 몇몇 친구들은 SNS로 겨우 연이 닿지만, 닉네임을 시도 때도 없이 바꿔서 찾는 것도 힘들뿐더러 지금의 관계들에 잊히고 묻힌다. 더러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밤의 종로나 이태원에서 술을 먹다가 우연히 마주치지만 15년을 훌쩍 넘은 공백은 어색함만 남긴다. 잠깐의 머뭇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쌩하니 서로를 지나치기가 부지기수, 그와 나는 알아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정서적 유대와 친밀함을 바탕으로 하는 관계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관계는 반짝하고 오래지 않아 빛을 잃는다. 당신을 기억하기 위한 자세는 몸에 익지 않았고, 시도할 의지도 없었다. 서사가 없는 이름들, 우리를 묶어냈던 매듭들이 도시전설처럼 잊혀지며 풀려나가는 시간들을 나는 방관했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보듬을 여유나 시간을 내기에 주말은 짧았다. ‘우리’를 엮을 수 있는 커뮤니티의 고리 또한 엉성했다. 성소수자로 정체화 했지만, 세상은 아직 성소수자로 살아갈 여건을 마련하지 않았고, 나 또한 성소수자로 세상을 살기 위한 책임을 익히지 않은 셈이다. 기억을 준비조차 하지 못한 이들에게 역사는 침묵하고, 성소수자로서 나의 짧지 않은 지점들은 공백으로 남는다.
인터넷으로 게이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은연 중 ‘인생 독고다이’를 마음에 품었다. ‘사람들한테 마음을 다 주지 말라’는 모친의 혼잣말을 오랜 시간 격언으로 삼았다. 하지만 혼자 살겠다는 말은 성소수자로서 인생을 살기 위해 준비되지 않은 나의 결핍과 무책임을 가리는 문장이기도 하다. 어떤 노력을 해야 했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우리’를 기억하기 위해, 우리를 의미부여하기 위한 다른 시도들을 보면서 새삼 뭉클해지는 이유가 여기 있는지도 모른다. 문 닫는 르퀸을 보면서, 개봉을 시작한 <위켄즈>를 보면서 다시금 옛날 생각들이 송글송글 맺힌다. 어떻게 우리를 기억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 우리를 기억하고, 다른 우리와 연결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만들고 구축하고 남겨야 하는가. 기억 위에서 어떤 시간들을 만들어야 하는가.
3. 당신과 나를 기억하기
더러는 소속과 상관없이 인연에 서사가 붙고 시간이 누적되면서 관계가 이어졌다. 기억의 뼈대는 서사보다 HIV/AIDS, 탈가정, 폭력, 자살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로 점철된 사건들을 중심으로 집중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강렬한 사건은 여운과 과정을 남기며 당신과 나를 '우리'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공동체 안에 소속되어 있고, 그 안에서 언어를 다듬으며 어떻게 서로를 지지할 것인가 고민한다. 고민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기억은 그 자체로 무력하다. 하지만 기억하기 위한 의지를 갖고, 기억하기 위한 제도들을 요구하며, 기억하기 위한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은 나의 비빌 언덕을 확보하고 세상을 향한 외침을 위해 힘을 키워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기억하기 위한 노력은 우리를 설명하고, 공동체의 역사를 이어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정과 사랑을, 즐거움과 고통을 남기고 있는가. 성소수자로 살면서 공허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의미로 남아야 하는가. 우리는 이름 뿐인 '성소수자'가 아니다. 서로 만나고, 쾌락과 배움을 나누며, 평일의 시간을 견디는 동안 저녁과 주말을 기다리고, 성소수자로 살아갈 수 있는 평일을 모색하기 위해 숨기거나 견디고 부딪히고 싸우는 구체적 개별자들의 이합집산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많이 만나고 이야기 나눠야 한다. 동료들이 모여드는 공간 뿐 아니라, 뿔뿔이 흩어져 일상을 버티는 시간까지도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져야' 하고, 그렇기에 '할일이 많다.' 1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는 동명 영화의 ost이다. 포미앤유가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국내에 번역된 영화 제목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지금시점에 새삼 의미심장하다. 군국주의 전쟁 속에서 전범국 장교와 포로의 야릇한 감정이 피폐한 대기 위로 스며든다. 자바 섬의 이국성과 아련한 동성 성애의 감정이 아스라하다. 수삼십년 전 사카모토 류이치와 데이빗 보위는 젊고 아름답다. 하지만 전쟁 같은 삶 속에서 감정을 기억하는 것은 누군가의 노력과 시도가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기억을 미화하는 것을 경계하지만 미화될 수 있는 기억, 그나마 미화되었던 기억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 지금은 허전함 뒤로 절박함이 따른다.
하여 이 글은 성소수자로서 나의 공백을 바라보기 위한 반성의 시도이다. 지금 나와 같이 커뮤니티를 스치고 부대끼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먼 우정의 깜박임이고, 오랜 시간 기쁨과 아픔을 같이 하며 나를 지나쳐간 이들에게 보내는 헌사이다. 외로움에 고립되지 않기를, 우리는 계속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말자. 메리 크리스마스.
- G_Voice, Congratulations (콩그레츄레이션) 가사 中.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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