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 편집자 주: 본 글에는 스포일러성 내용이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애담>은 주인공인 윤주와 지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윤주와 지수가 만나고, 사귀면서 우여곡절을 겪는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비춰준다. 우리는 이성애중심적 로맨스의 정형화된 패턴을 이미 알고 있다. 영어로는 "Boy meets girl"서사라고 하기도 하는 이 전형은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이 과정에서 소녀의 눈길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이에 비춰 보면, <연애담>은 한국사회에서 레즈비언들이 연애하는 것의 전형적 서사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시작은 지수가 신분증을 놓고 와서 담배를 사지 못해 쩔쩔매는 것으로 시작한다. 윤주는 지수에게 담배를 사주고, 이것을 호감의 신호로 생각한 지수가 자기가 일하는 술집에 놀러오라며 윤주를 초대한다. 담배와 술은 이들 관계에서 서로의 감정을 묘사하는 상징으로 계속 쓰인다. 지수는 활짝 웃으면서 "이건 애인하고 먹고 싶어서 아껴두던 술인데"라고 말하며 윤주와 같이 술을 마시고, 당시에는 자신이 퀴어라는 자각이 없던 윤주는 지수의 관심 표시를 제대로 캐치하지 못한다. 그 이후에 사귀게 된 둘은 같이 바에가서 술을 마시고, 애정표현을 하고, 같이 담배를 피는 든ㅇ 열심히 연애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지수가 술에 많이 취한 후 들어오면서 이런 달콤함은 일시적으로 깨진다. 윤주는 지수를 걱정하고, 그런 윤주에게 지수는 "어련히 혼자 할 수 있다" 며 답한다. 술, 담배의 상징성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지수는 결국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자취하던 방에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지수는 집에서 아버지에게 계속 "결혼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윤주는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지수를 보러 오는데, 윤주가 지수에게 담배를 건네자 지수는 "냄새가 밴다"며 거절한다. <캐롤>에서처럼, 담배는 지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 그 때문에 역으로 지수의 자율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지수가 자기 자신으로서 자취하며 살 때 담배를 피지만, 집에 들어와서 아버지가 원하는 딸의 모습에 맞춰 이성애자 연기를 할 때 지수는 담배를 피지 못한다. 윤주에게는 지수가 그런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율성"의 상징이다. 가장 큰 근거는, 룸메이트에게 지수와의 관계를 얘기하자 룸메이트와의 관계가 틀어지고, 결국 윤주가 예전에 지수가 살던 곳으로 자취방을 옮기는 장면이다. 윤주는 지수와의 관계 때문에 나가서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처음 지수에게 과자를 주는 장면과 윤주가 지수를 보러 온 후 같이 술을 마시다가 버스가 끊겨 사과하는 의미로 과자를 주는데 지수가 이를 받지 않는 장면은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후자는 윤주가 더 이상 지수와의 관계에 자유로움을 의탁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 그걸 깨달은 은주는 근처 모텔에서 지수가 물을 건넬 때 거부한다. 지수와의 관계에 모든 것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서로 묘하게 엇갈리고, 상대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상처가 될까봐 못 말하는 사이, 그렇게 조금씩 어긋나면서 이 둘은 연애상태를 이어간다. 윤주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자기 작품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계속된 작업에 대한 크리틱으로 인해 "왜 나는 잘 하는 게 없을까"등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작업을 접고 교수님의 작업을 도와주는 쪽으로 들어간다. 지수는 아버지의 "이제 남자친구를 사귀고 결혼해라"라는 말 때문에 교회 권사가 아는 어느 집 아들과 마음에도 없는 드라이브와 데이트를 한다. 둘 다 연애가 지속될수록 자신의 자율성을 조금씩 잃어가고, 이것은 윤주와 지수 모두를 지치게 한다. 윤주는 시간이 갈 수록 지수에게 실망해 가고, 지수는 들킬까봐 윤주에게 냉담하게 대하다가도 같이 자신이 자신으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인 바에 갔을 때는 한껏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에 윤주는 냉담하게 반응한다. 처음에 지수와의 관계가 윤주에게 자유로움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면, 끝에 가서는 윤주와의 관계가 지수에게 자유로움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바뀐 것이다. 둘의 위치가 바뀌면서 영화는 아직 자고 있는 지수와 일어나서 담배를 피고 있는 윤주를 비추면서 열린 결말로 끝난다.


나는 윤주나 지수가 헤어졌다고, 혹은 헤어지지 않았다고 속단해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둘 모두 이 연애를 통해 성장했고, 특히 윤주의 경우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둘이 계속 사귄다면 좀 더 성숙해질 것이고, 만약 헤어진다면 지수는 지수대로, 윤주는 윤주대로 그 다음 파트너를 만나고, 다시 사랑할 것이다. 이번 연애가 어떻게 되든, 그 둘은 다시 행복해 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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