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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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 중인 , BYE!’(2017. 1. 20~ 1. 31) 전시에 걸린 이구영작가의 <더러운 잠>이 시끄럽다표창원 더불어민주당의원 주최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등록된 작가 20명이 기획한 전시의 작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여성 누드에 합성하고 침몰하는 세월호 배경 앞에 주사바늘 다발을 들고 있는 최순실이 사드와 박정희 전대통령의 초상을 올려놓은채 누워있는 박대통령 뒤에 '시녀'처럼 서 있는 작품 말이다.

 

<더러운 잠>은 세월호 침몰 7시간동안 박대통령이 최씨가 공급한 주사를 맞았다는 의혹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언론에서 귀에 박히도록 언급하듯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1863)를 패러디했다는 것도 쉽게 읽어낼 수 있다.

 

박대통령에 대한 패러디는 이전부터 논쟁이 되었다. 대개의 구도는 여성혐오와 성적 대상화의 비난에 맞서 정치적 풍자를 명분삼은 표현의 자유가 부딪히는 형국이었다. 굳이 지난한 논쟁의 궤적과 결들을 지면에서 자세히 살필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더러운 잠>에 대해서는 단순히 젠더감수성 없는 남성작가의 그림이라고 묻어두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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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더러운 잠>이 패러디한 마네의 <올랭피아>19세기 중반 근대도시로 탈바꿈한 파리의 고급 매춘부를 모델로 그린 그림이다. <올랭피아> 역시 조르조네의 <풍경 속 잠자는 비너스>(1508-1515)나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1538) 와 같은 여성누드의 전형을 패러디했다. 마네는 성 판매 여성을 고스란히 화면에 드러낸다. 이는 기존 남성작가들이 여성 누드를 성녀와 여신의 누드화로 포장한 역사를 드러내고, 나아가 성 판매 여성을 모델삼아 성녀와 여신의 누드를 그림으로써 여성을 비천과 성스러움의 이분법으로 대상화했던 남성중심 미술의 뒤틀린 전통을 폭로한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

 

과거 미술이 견지했던 여성 신화를 벗겨내 성 판매 여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과감함은 형식에도 나타난다. <올랭피아>의 여성 누드는 육감적인 굴곡의 이상화된 표현보다는 창백한 평면의 납작한 몸으로 그려졌다. 모델이 자신의 성기를 (가리기보다) 손바닥으로 누른 채 도전적으로 정면을 응시하도록 표현한 것이나, 부끄러움이나 욕망을 갈구하는 유약함 없이 시선을 화면 밖으로 던지는 것 또한 이전에는 없던 시도다.

 

티치아노 베첼리오,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 조르조네, <풍경 속 잠자는 비너스>, 1508-1515.


 

기존의 미적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여성을 표현해낸 것도 그렇거니와 성 판매 여성을 고스란히 재현한 작업은 당시 부르주아 남성들의 욕망을 폭로한다당시 아카데미 신고전주의 미술에 취해있던 언론과 비평가들에게 <올랭피아>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입체감 없는 몸은 '벽지'나 '유령'과 같다는 비아냥을 받곤 했다.

 

하지만 이후 <올랭피아>19세기 유럽 근대사회의 도시 모더니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히게 된다. <올랭피아>가 근대사회의 도시문화를 사회학적으로 관찰한 그림이라는 평가는 여느 미술사적 관점에서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근대의 고전이 되어버린 만큼 작품은 수차례 비판받고 패러디되었다. 래리 리버스의 <나는 검은 올랭피아가 더 좋다>(1970)처럼 인종적 관점에서 패러디되는가 하면, 흑인의 계층성과 여성의 성적대상화라는 비판적 관점에서 접근되기도 한다. 여성 모델은 남성으로 바뀌거나, 드랙을 한 모리무라 야스마사의 초상처럼 자의식 넘치는 작업으로 변주되기도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반도에서도 마네의 <올랭피아>가 패러디되었다.

 

래리 리버스, 나는 검은 얼굴의 올랭피아를 좋아한다, 1970. 모리무라 야스마사, 초상화,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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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랭피아>의 교과서적인 설명을 지면에 할애한 것은 그만큼 <더러운 잠>에 대한 비판의 지점을 세공하기 위함이다. 처음 필자가 썸네일 이미지를 보고 느낀 것은 젠더감수성 없는 남자작가가 이상한 패러디를 했다는 관성에 가까운 것이었다. 한데 의뭉스럽게도 박근혜 얼굴을 붙여놓은 몸은 <올랭피아>가 아니다. <더러운 잠>의 여성 누드는 <올랭피아>의 컨셉만 가져다썼을 뿐, 마네가 패러디한 조르조네의 <풍경 속 잠자는 비너스>의 몸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이성애 남성의 관점으로 이상화되고 대상화되었던 유혹적인 포즈, 유려한 실루엣과 성기를 가리고 시선을 내리깐 모습은 도상학적으로도 여성의 성적대상화를 의도한 것으로서, 남성 관객의 관음과 시선 폭력에 어떤 대응이나 방어 장치 없이 노출되어있다.

 

왜 작가는 19세기 마네의 작품에 굳이 16세기 구태의 도상을 가져다 붙인 것일까. 마네가 패러디한 대상을 굳이 합성한 작가의 저의는 무엇인가. 그 역시 정치적 풍자의 전략이라면, 의도가 무엇이란 말인가. 도전적인 모습의 여성누드는 용인할 수 없어서? 그림으로라도 박대통령은 아름다워야 해서? '여성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복수?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는 '곧, BYE!' 전시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정치적 한방이라는 표창원 의원의 취지는 너무도 쉽게 읽히지만, 과연 이런 전시들이 효과적이라 할 수 있는지는 확답할 수 없다. 

 

우리는 <올랭피아>에 등장한 성 판매 여성을 여성 대통령에 대한 쉬운 비난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아닌지 물어야 한다. 창녀의 대극으로서 성녀와 여신으로 여성을 재현했던 누드 표상의 악순환을 그대로 이용하여 재차 여성을 성적 대상화에 가두는 것이 아닌가도 물어야 한다. 여성의 누드를 패러디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지, 그렇다면 남성의 누드는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누드의 의도와 표현방식에 포커스를 맞춰야하는가도 이야기해야 한다. 성적 대상화의 패러디효과를 위한 공론장의 논쟁과 조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최소한 국회에서 어떤 전시를 해야하는 것인지, '어떤 검열이나 개입도 하지 않은' 표창원 의원의 태도에는 어떤 책임이 필요한 것인지는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사건은 삽시간에 다른 갈래로 전개되었다.

 

논란이 일자 더불어민주당은 발빠르게 윤리심판원에 회부하기로 결정한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의원들은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인격 살인’, ‘성폭력 수준의 표현이라며 국회 윤리의원회에 제소한다 밝혔다. 급기야 24자유민주주의 수호시민연대출범식과 기자회견에 참석한 보수단체 회원들은 그림을 던져 파손했고, 박사모는 <더러운 잠>을 패러디한답시고 표창원과 부인의 얼굴을 박아 넣었다.

 

24일 국회의원 회관에 전시된 <더러운 잠>을 보수단체 시민들이 파손했다. 출처: 포커스뉴스

 


여기에 <더러운 잠>을 제작한 이구영 작가의 언급이 가세한다. 사건이 불거진 직후 작가는 빠르게 대응했다. 25일 오전 전시현장에 나와 작품을 자진회수하는가 하면, 라디오와 언론 등을 통해 입장해명에 나섰다. 그는 여성 성희롱이 아닌 대통령을 풍자한 것이라 밝히며 다른 장소에서 전시를 이어갈 것이라 언급했다.

 

필자는 처음 사건을 접하며 미술사적 감식안과 젠더감수성 없는 작가의 엉성한 직관을 탓했다. 하지만 그의 직관은 엉성하지 않았다. 외려 제작과정에서 인물을 배치하고 시선을 조정하는 디테일까지 집어삼켜버릴 만큼 그의 정치적 표현은 근대의 젠더의식을 16세기적 관점으로 전치했다.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명 또한 국정농단과 베일에 싸인 대통령의 비이성적 혐의들을 드러낸다는 점에 고야의 작품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1799)를 참조한 듯 보이지만, 위의 관점에서는 젠더이분법적 구분 아래 여성을 비이성적 존재로 대상화했던 전통과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작가는 '블랙리스트가 문제의 핵심'이며 '진실을 왜곡하지 말라'고 하지만, 애당초 박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타자화된 여성 프레임으로 표현함으로써 진실을 오염시키는 주체가 누구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새삼 깨닫는다. 여기는 바로 전까지만 해도 날선 비판과 논쟁의 공론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강고했던 공화국임을. 세기의 미술사양식을 짜깁기한 작가의 '탈근대적' 작업형식에서 뿌리깊이 박혀있는 '전근대적' 그림자는 괴이할 지경이다. 쏟아지는 저질의 패러디들을 논쟁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세태도 개탄스럽지만, 강제적 규제와 검열, 저질성 공격이 저질의 패러디를 덮어버리는 말문 막히는 상황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여력마저 박탈한다. 지뢰밭의 공격에 반성은커녕 표현의 자유 투사를 자임하며 뒤틀린 민주시민의 모습은 더 이상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가 다분한 신념이 올바르지 않은 반격에 의식의 방향타를 놓친 채 잘못된 열정으로 승화되고 있다.

 


) 어제 행성인에 몇차례 전화가 왔다. 대부분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의 기독교단체 방문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F뉴스는 표창원 의원의 전시논란을 물었다. 하고 많은 단체들 중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에 이를 물은 이유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덕분에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 겸연쩍긴 하지만 정리에 동기부여가 되었던 ‘F뉴스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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