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한국게이코러스 G_Voice 단원)


 

▲ 영화 <위켄즈> 포스터

 

'퀴어 영화'가 한 해를 장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LGBT 서사를 다룬 작품들이 예년 대비 다수 등장했다. <아가씨>를 필두로 <대니쉬걸>, <로렐>, <캐롤>, <연애담>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이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고,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명작'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2016년을 마무리 하는 영화 중에서도 돋보이는 퀴어 영화 한 편이 있다. <위켄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국내 유일 게이코러스 합창단인 '지보이스'의 이야기를 다룬 <위켄즈>는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파노라마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손에 쥐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삼십 여곳에 달하는 국내외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으며 작품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12월 22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각종 영화 관련 사이트의 <위켄즈> 평점란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후끈하다. 영화에 대해 관객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애석하게도 <위켄즈>의 경우에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열기 또한 느껴진다. 무작정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식의 성소수자 혐오적인 댓글이 계속해서 달리고 있는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시국이 어지러워 국민들의 마음이 무거운 상황에 하다하다 게이들 영화가 개봉하지 않나...'라는 문장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시국을 어지럽게 만든 건 이성애자들인데(혹시나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걸 수도 있지만), 게이들 영화가 무슨 잘못이 있나 싶어 실소를 터뜨렸다. 일부 이성애자가 어지럽게 만든 시국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 속 게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나 하는 소리일까.

 

그래서 준비했다. 어지러운 시국, 당신이 <위켄즈> 속 게이들의 노래를 들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말하려 한다. 나의 리뷰가 어지러운 시국을 타개하는 데 있어, 이성애자/성소수자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함을 알게 되는 작은 하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렇게 사는 나 

▲ 영화 <위켄즈> 갈무리

 

 지보이스 단원들이 서로 공유하는 하루는 대부분 일요일이다. 한 단원의 말을 빌려오자면, 평일은 각자의 삶을 분주하게 보내고, 토요일은 불타는 게이 라이프를 즐긴 뒤, 일요일이 되면 연습을 하기 위해 모여들기 때문에 그렇다. <위켄즈>의 도입부는 단원들의 연습 장면에 카메라를 가져다대는데, 공연을 앞둔 것 치고는 상당히 엉성한 실력의 노랫소리가 스크린 밖으로 흘러나옴과 동시에, 극장 안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화면 속 지휘자의 얼굴은 허탈한 실소로 가득하고, 그 순간만큼은 지휘자의 표정과 관객의 표정이 하나가 된다.

 

그렇다. 지보이스는 안타깝게도 아직, 미모와 격조에 걸맞은 노래 실력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관객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그들에게 비웃음이나 야유를 보내지 않는다. 지보이스의 노래가 갖는 보편성 때문이다.

 

선율에 올라탄 가사가 단원 개개인의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을 통해, 그들은 각기 다른 삶에 숨어있던 보편성을 공유하게 된다. 그런 지보이스의 모습은, 현실에 다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종로로 달려오는 그들의 마음과 꼭 닮아 있다. 출발지는 달라도 목적지는 언제나 종로 내지 이태원인 '액티브한 게이'의 주말 일상.

 

관객이라고 다르겠는가. '웃고 떠들고 마시는' 시간을 보내며 속 안에 갇혀있던 것들을 게워내는 청춘을 보내고, 술잔 부딪히는 박차에 맞춰 서글픈 노래 가락을 뽑아내는 중장년의 모습. 그렇기에 <위켄즈>는 모두에게 내재된 '추(醜)의 미(美)'를 지닌 장면들을 가감 없이 드러냄으로써 관객에게 다가온다. 일상과 연습의 병행에 대한 피로를 토로하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단원 모두 앞에서 부끄러운 노래 실력으로 망신을 당하는 장면은, 이리저리 치여 숨 가쁘게 살아온 우리 생의 흐름과 같은 궤도를 보여준다. <위켄즈>는 이와 같은 흐름의 군상들을 과장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 노래를 매개로 서사의 끈을 풀었다 감았다 조절하며, 뮤직 다큐멘터리로서의 미덕을 지킨다.

 

그렇다면 그들의 노래는 어디서 오는가. 지보이스의 노래는 대부분 자작곡이다. 술자리부터 블로그에 이르기까지, 가사와 리듬의 원천은 무궁무진하다. 연애와 이별을 시작으로 추억, 신세한탄, 외로움, 그리움, 자긍심, 그리고 죽음과 삶에 이르기까지, 단원 개인의 소회는 지보이스 전체의 가사에 녹아든다. 지보이스의 가사를 이루는 언어는 모든 가식과 허위를 벗어던지려 한다는 점에서 특유의 미학을 구축한다.

 

그러한 견지에서, 편견에 기인한 검열 장치 역시 그들이 가장 경계하는 대상 중 하나다. 특히 지보이스는 구습적 남성성에 기인해 규범처럼 강요되는 있는 '일틱'과 '평범'의 메커니즘을 과감히 벗어던짐으로써, 퀴어 서사를 다루는 데 있어 보다 넓은 스펙트럼을 확보한다. '착한 게이 노래 말고', 있는 그대로의 게이가 사는 모습을 담은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는 음악감독의 인터뷰가 더해지며, 지보이스의 음악적 경향성은 하나의 우주가 되어 스크린을 장악한다.


 

사랑 또 사랑이었네

 

▲ (상)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결혼식을 축하 중인 지보이스 / (하) 호모포비아가 무대에 난입해 인분을 투척하는 모습

 

<위켄즈>에서 지보이스가 빛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서는 무대에 있다. 지보이스의 무대에 경계란 없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거리와 광장을 막론하고, '서는 곳이 곧 무대가 된다'는 교조적 명제를 실현시키는 힘을 가진다는 점만으로도, 지보이스는 충분히 스크린 안에 담아낼 만한 가치가 있는 캐릭터다.

 

또한 지보이스는 성인 게이만의 삶을 논하는 차원을 넘어 트랜스젠더, 청소년 성소수자 등 '소수자 내 소수자'에 대한 고찰로 담론을 확장시키는 노력 역시 전개했다. 물론 많은 단원들은 자신이 노래하고 춤추는 행위를 '인권운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각자의 표현이 다를 뿐, 결국 지보이스의 노래는 광장의 품을 넓히는 일이므로 운동이란 표현을 과장이나 허위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표현의 상징인 '무대'는커녕, 삶의 터전에서조차 배제와 억압의 굴레에 갇혀 있던 이들이, 무대에 서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저항이란 쉽게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는 세상의 중심에서 누구보다 크게 목소리를 내려는 지보이스의 자태는 <아가씨>의 숙희, 히데코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고매함을 보여준다.  

 

특유의 재기발랄함으로 무장한 지보이스의 무대가 끝나면, 그곳이 어디든, 대부분의 관객은 그에 합당한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위켄즈>가 비추는 관객석은 그것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의 세계다. 십자가를 들고, 신의 이름을 외치며, 소수자를 저주하고 모욕하는 저들의 힐난과 조롱까지도, 스크린 안으로 과감히 초대한다. 행진을 막아선 채 '대한민국은 우리가 지킨다'고 부르짖고, 심지어는 무대에 난입해 단원들에게 인분을 투척하기까지 하는 이들의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다. 끝까지 밝은 모습으로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단원들이 인분 묻은 셔츠를 벗고, 서로의 몸을 닦아주는 모습에 이르러서야, 관객은 '현실의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비상식적인 혐오 범죄에 대해 '낯섦'을 느껴야 할 장면들이, 가까운 일상을 목격하는 '익숙함' 측면의 감정으로 재확인되기 때문이다.

 

추후 진행된 인터뷰 장면에서 한 단원은 무대에서 맞은 것이 '똥물이어서 다행'이라 이야기한다. 흉기나 화학물질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언어를 빌려 쓴 것이다. 그러나 날것 상태의 역겨운 혐오나 차별을 마주하는 순간은 처음이든, 처음이 아니든 늘 괴롭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들의 의연한 반응과 대처는, 차별을 저지르는 자들의 억지스러운 비난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만연한 혐오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와 방법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자들에게, 껍질뿐인 사랑의 이름표를 단 자들은 얼마나 많은 죄를 범했나. 그럼에게도 회개하지 않는 저들에게조차, 지보이스는 노래한다.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 '너희가 미움을 가르칠 때'조차도 '우리는 사랑을 하'겠다고, 뿐만 아니라 '노래하리라'고.

 

 

 오 피스 코리아

 

▲ (좌) 2012년 평택 쌍용자동차 철탑농성장 앞에서 공연 중인 지보이스 / (우) 2015년 아이다호데이 기념행사에서 공연 중인 쌍용자동차 노래패 ‘함께 꾸는 꿈’


 <위켄즈>가 후반으로 달려갈수록, 지보이스가 서는 무대는 더욱 더 넓어진다. 쌍용자동차 철탑농성장 앞부터 팽복항에 이르기까지, 지보이스는 '인권운동계의 아이돌'이라는 칭호를 발판으로 눈부신 연대의 역사를 보여준다. 눈이 푹푹 쏟아지던 날, 지보이스가 당시 고공농성 중이었던 쌍용자동차 투쟁 현장을 방문해 노래 부르고, 3년이 지난 후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노래패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T) 기념행사무대에 올라 답가를 전한 일화는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건이기도 하다. 그들의 '콩그레츄레이션' 콜라보 무대는 묘한 시너지 효과를 이루며, <위켄즈>의 모든 장면 중 한 손 안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순간으로 각인된다.

 

레인보우 페미니스트 비혼여성 코러스인 '아는 언니들'과 함께한 팽목항 문화제 공연 역시 <위켄즈>를 통해 보여지는 지보이스의 값진 경험 중 하나다. 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로 대표되는 사회적 폭압의 대척점에 선 채, 자신을 옭아매는 부조리와 억압에 괴로워 울부짖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줄로 세우는 저들의 질서를 가로질러' 불의와 차별 없는 '우리의 길로' 가는 행진 대오에서 만난 서로의 손을 맞잡고 노래한다. 모든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모르쇠로 일관한 채, 후안무치의 태도로 무장한 권력과 자본에, 이들의 연대는 강력한 공명(共鳴)과 화음으로써 경종을 울린다.

 

광장과 촛불의 시대, 지보이스의 목소리가 거리에서 힘을 갖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보기로 한다.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세상이 지독한 '밀실'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휩싸이게 된다. 비선이 국정을 좌지우지 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이들을 창살 안으로 구겨 넣는 세상. 날선 혐오가 소수자와 약자를 압제하고, 존엄과 평등,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쉬쉬하게 만드는 세상. 반대편이 보이지 않을 만큼 드넓은 방 안에 나 홀로 갇혀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해보라. 나라면 아무리 고래고래 외쳐 봐도 결국 아스라이 사라지고 마는 목소리에 좌절하고, 아무런 소리도 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건너편으로 걸어가거나, '거기 누구 있느냐'고 외치는 일까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 할 것이다.

 

하지만 같이는 다르다. 목소리가 모이면 수십 배의 크기로 증폭되어 전달된다. 누군가 지치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 더 큰 소리를 내줄 것이며, 각자의 구역을 나누어 출구를 찾아보기도 하고, 이마저도 힘들다면 아득한 건너편 끝을 향해 손잡고 걸어나갈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지보이스는 '밀실'을 '클럽'으로 전환시키는 힘을 지닌다. <위켄즈> 속 지보이스는 규범과 기준을 뒤흔들며 단순한 존재 의미의 '있음'에서 다양한 존재와 삶을 연결하는 '이음'으로의 발돋움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아울러 <위켄즈>는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밀려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삶들을 꿰어내고, 두려움에 찬 이 땅의 무수한 '벽장문'들을 하나씩 두드린다. 그들의 노크는 강력하되 경쾌한 리듬을 놓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연대'가 가진 일말의 전형성도 남기려 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서로 돕고 도움을 준다, 라는 원론적인 연대의 의미를 넘어, 모두가 함께 즐기고 힘을 얻는 자리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힘쓴다. 이러한 사실은 <위켄즈>에 출연하는 무수한 동지들의 증언으로부터 확인된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고동민 동지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얻고, 벅찬 감동을 얻을 수 있기에 지보이스의 무대가 좋다"고 말하는 장면을 통해, 지보이스의 연대가 일궈낸 같이의 가치가 드러난다.


 

벅차게 살아온 당신을 위해

 

▲ ‘무지개농성장’에서 공연 중인 지보이스

 

극장을 나오며, 당신은 <위켄즈> 속 지보이스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들려오는 '콩그레츄레이션'을 들으며, 작년 이맘때와 마찬가지로, 약간의 소망을 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 라는 이야기를 꼭 적어두고 싶다. 어차피 미래는 녹록치 않을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울게만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가야할 곳은 어디인지를 고민하는 날도 여럿일 것이다.

 

그래도 좋다. <위켄즈>는 그런 모습의 서로를 확인하는 자리다. 소주 한 잔에 설움과 아픔을 털어내려 애쓰는 우리. 퇴근길 남몰래 노래 한두곡 흥얼거리며 내가 주인공 되는 무대를 꿈꾸는 우리. <위켄즈>가 주는 가장 벅찬 감동을 꼽으라면, '모두가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답답하고 꽉 막혀있기 그지 없는 밀실에서,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증폭시켜줄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로 하자. 스크린에서의 <위켄즈>는 두 시간도 되지 않아 끝나버리겠지만, 이번 주 일요일에도, 심지어는 일상에서도 그들의 <위켄즈>를 지속시킬 테니까.

 

지보이스의 노래는 계속될 것이다. 서툰 음정과 박자, 절절한 그들의 가사 모두를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좋다. 다만 그들의 호흡만은 기억 한 편에 꼭, 새겨두기로 하자. 소리를 꺼내기 위해 세상의 숨을 빌려다 쓰고, 이야기와 날숨으로 이를 갚아내는 독특한 호흡법은 <위켄즈>가 보여준 지보이스의 생(生) 그 자체다. 한숨을 이어쉬며 얼음장 같은 편견의 경계를 녹이는 마음들이 그리운 요즘, <위켄즈> 속 지보이스의 뜨듯한 숨결이 정겨운 이유는 아마도 그 호흡법이 주는 울림 때문일 것이다.

 

<위켄즈>를 보게 된다면 당신은, '거리는 우리가 접수한다'는 당차고 유쾌한 이들의 선언을 무심코 떠올리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확률이 높다. 지보이스는 언제나 무대를 준비하고 있으며, 무대를 향해 걸어나가고 있다. 모든 무대는 당신 곁에, 우리의 일상에 있다. 혹시라도 당신의 일상과 접점이 되는 곳에 무대를 꾸려 올라온 지보이스를 보게 된다면, 서로의 친밀함을 과시하듯,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길 바란다. 혐오와 차별에 맞서 뜨거운 <위켄즈>를 살아내는 지보이스에게, 당신의 찬사만큼 힘이 되는 것도 없을 것이므로.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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