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웹진 기획팀)
‘노-오-력’.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으로 메꿀 수 없는 것을 자꾸만 노력하라고 하니, 이를 비꼬는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노-오-력. 여성의 평균 임금이 남성 임금보다 낮은 것은 여성의 노-오-력이 부족해서다거나, 당신이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부모를 잘 만나려는 노-오-력을 안 했다거나.
이 메시지는 영화 〈히든피겨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캐서리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 이 세 인물은 흑인 여성으로, 1960년대에 NASA에서 근무했다. 이 세 사람은 영화 제목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숨겨진 인물들)’처럼 NASA의 업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여했으나 성별/인종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들이다. 영화에서 봤듯 이들은 아름답게 ‘능력으로’ 투쟁한다. 캐서리 존슨은 당시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했던 수학능력 덕분에 주요 부서에 투입돼 업무를 완수하고, 도로시 본은 최초의 흑인여성 우주 비행사가 되고, 메리 잭슨은 흑인여성 최초로 NASA에서 주임이란 직급을 달게 된다. 내가 이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왜 차별을 당해야 하느냐는 분위기를 타면서, 차별을 거부한다.
만약 이 여성들이 노동조합을 만든다거나 권리 신장을 위해 거리에 나섰다면, 이 영화는 애당초 독립영화로 분류돼 지금과 같은 흥행을 얻지 못했으리라. 감독도 나 같은 관객이 이런 생각을 할 것이라 예상을 했는지, 영화 내에 이런 대사도 있었다.
“그건 당신의 투쟁 방법이지, 나의 투쟁 방법이 아니에요.”
도로시 본이 흑인 인권 운동을 하는 자신의 남편에게 한 말이었다.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고 집에나 있으라는 남편의 말 때문에 덜 부각된 편견이지만) 그녀의 이 대사는 묘하게 모순을 낳는데, 예컨대 이렇다. 나처럼 노력하면 이렇게 빨리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왜 집회를 열고, 시위를 하느냐. 백보 양보해서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그녀들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 노력이 노-오-력으로 들리지 않을까.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을 한들, 차별당하는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만큼의 능력치를 성취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이미 만연한 차별 자체가 문제’라는 문제 제기도 어렵고, 차별 당하는 이들의 능력치 상향 평준화(?)가 강요되는 이상한 결론이 도출된다. 노력이 아니라 N-O-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영화의 이러한 메시지 때문에 일부 관객들은 이 영화를 ‘여자’ 히어로물 이라는 태그를 서슴없이 붙이기도 했다.
하물며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어떠한가. NASA에서 멋들어지게 능력을 뽐내던 그녀들은 늘 돌아올 핵가족(아빠, 엄마, 자녀들)이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고, 양육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포장됐던 그 장면에 세뇌될 지경이어서 이 영화를 누가 페미니즘 영화라고 소문내고 다닌 것인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그 당시 시대적 정서를 따졌을 때 그녀들의 남편이 아이들을 공동육아 하는 것은 판타지에 가깝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을 이질감 없이 볼 관객을 보고 의도한 영화일 테니 말이다.) 이런저런 것들을 다 재 볼 때, 나는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르기가 어렵다. 내게 페미니즘은 개인의 능력치, 성별, 성적지향, 나이, 학벌, 인종, 신체에 따라 불평등해지는 상황을 막는 가치다. 여성 개인이 능력치를 획득해 타자화를 막을 수 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로 현실을 가리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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