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권소식/해외 인권소식

민주적인 사회를 꿈꾸는 이란민중들의 행동을 지지한다

by 행성인 2009. 7. 6.

 


2009년 6월. 1백만 촛불이 한국을 뒤흔든 지 1년이 지났고, 우리는 웹진을 통해 지난여름 수많은 밤을 거리에서 보냈던 성소수자들의 활동을 되돌아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지개 깃발을 들고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는 시위에 함께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얻었는지, 더 나아가 촛불시위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를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활동을 함께 논의하고자 했다.


작년 1백만 촛불 속에서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준비한 무지개 깃발 아래 혹은 주변에 있었던 대열이 1백 명은 족히 넘었다. 무지개를 부담스러워했던 이들까지 생각한다면 적지 않은 성소수자들이 촛불과 함께한 것이다. 전체 대비 0.01% 정도 해당하는 숫자라고 비웃을지 몰라도 성소수자들의 삶의 조건을 고려하고 퀴어퍼레이드와 같은 대규모 행사를 제외한다면 촛불은 퍼레이드 다음으로 성소수자들의 참여가 높았던 행동이었다. 어쩌면 퍼레이드보다 효과는 더 컸을지 모른다.


이제 질문을 던질 때다. 우리는 양심적이고 분별 있는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인가? 아니면 촛불 속에서 동성애자 평등,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이 촛불운동 속에서 그와 관련된 어떤 희망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인가?


그런데 답을 함께 찾기도 전에 이란 소식이 들려왔다.





이란에서도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이란 정부의 탄압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으면서도 훨씬 더 끔찍하다. 인터넷을 통해 전해진 시위 진압 장면은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의 이면에는 정권과 지배층의 뿌리 깊은 부패에 대한 분노와 억압적 통치에 대한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이란인들은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쳤다. 2주가 넘는 시위 물결은 대대적이고 잔인한 탄압으로 잦아들었다. 이란 정부 발표만 보더라도 20명이 죽었고(대부분 정부를 지지하는 우익 민병대의 발포로 인한 것이다.)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체포됐다. 인터넷, 휴대 전화에 대한 통제, 언론 통제도 심각하다.


그러나 이런 탄압이 사람들의 불만과 저항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대규모 시위는 줄어들었지만 사람들은 저녁에 옥상에 올라가 '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는 소극적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이란 민중은 수십 년 간 문제되어 온 신정체제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이란 정권이 미국과 대립하고 있다는 이유로 정권에 반대하는 이란 민중의 저항을 지지하는 데 소극적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정의를 요구하는 이란 민중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은 서방의 위선을 반증할 뿐이다. 미국은 늘 중동 민중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일굴 능력이 없다면서 침략을 정당화했다. 한편으로 제국주의적 위협은 이란 지배자들의 억압통치의 구실이 됐다. 그러나 옷차림과 행실을 감시하는 도덕경찰은 평범한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이다. 1979년 이란 민중이 왕정을 타도하며 원했던 사회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국주의의 위협이 자유와 인권의 제약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란 민중은 미국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 흔히 이슬람혐오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는 논리를 반박하듯, 이번 민중시위에서 이란 여성들은 적극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이란 민중은 그들의 힘과 민주주의와 자유, 정의에 대한 열망을 보여줬다. 이것은 이란의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동성애자 사형을 집행하는 국가, 이란


이란은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하는 대표적인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2005년 7월에는 이란 후제스탄에서 두 소년이 공개 처형되는 사진이 언론을 통해 세계에 알려지면서 비난의 화살을 받았고 대통령 아흐마디네자드는 2007년 9월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이란에는 미국과 달리 동성애자들이 없다고 얘기했다가 망신만 당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이란의 레즈비언 인권활동가 페가 에맘백시가 영국에 망명신청을 했다가 거부당한 사례가 있었다.(이를 위해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 성소수자들은 페가 에맘백시가 강제송환되지 않도록 온라인서명에 시작했다.) 이란은 여성들 간의 성교에 대해 채찍질 100회, 3회 이상 되풀이 된 경우 사형에 처해진다고 한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4000명 이상의 동성애자가 이란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동성애자로 의심받는 수많은 이란 남자들이 재판 없이 구금되고 고문에 의한 자백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란 동성애자들이 지금의 민중항쟁 속에서 어떻게 위치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이란인들이 원하는 정의와 자유에서 동성애자들이 예외일 수는 없다. 현재 이란 여성들이 시위를 주도하며 사회 활동을 철저히 억압한 사회에 맞서 싸우는 것처럼 이란의 동성애자들도 변화의 한 가운데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찾을 가능성을 발견하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도 우리는 이란인들의 저항을 지지해야 한다.




나라 _  동성애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