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작성한 찰리 심스는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학생이고 대학 LGBT 센터와 LGBT 권리 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이다. 지금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와서 공부하면서 한국 LGBT 권리 운동 단체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 글은 그가 작년에 자신이 참여한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8 반대 운동 경험에 대해 쓴 글이다. 생생한 활동 경험과 주민발의안8 운동 참가자로서 운동에 대한 반성적인 평가를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글이다.
주민발의안8이 통과된 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 중 하나였다. 여름부터 법안이 통과된 날까지 나는 수많은 시간을 사람들에게 반대투표를 설득하기 위한 전화 작업과 집회에 힘을 쏟았는데 한순간에 동성 커플의 결혼권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동시에 주민발의안8은 미국의 LGBT 단체들에게 너무나 필요하던 경종을 울렸다. 주민발의안8 통과에 뒤이은 반응 속에서 LGBT 활동가 커뮤니티의 많은 구성원들의 인종차별주의와 종교적 편협함이 분명히 드러났던 것이다.
동성결혼이 캘리포니아에서 합법화됐을 때, 나는 컴퓨터과학 수업 중이었다. 캘리포니아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결정을 웹사이트에 올렸고 나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판결문을 다운로드 받으려 애쓰고 있었다. 결국 다운로드를 받았지만 판결문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172페이지짜리 복잡한 법률 문서였던 것이다. 마침내 캘리포니아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는 것을 깨달자 나는 수업 중에 큰 소리로 합법화됐다는 것을 외쳤고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동성결혼 합법화를 축하하기 위해서 대학 LGBT 센터의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결혼 자유의 날" 행사를 조직했다. 학생들은 화이트 광장에 모여 결혼식 케이크를 먹고 음악을 들으며 대학 랍비가 집전한 가상 결혼식을 올렸다. 2달이 지나지 않아 동성 커플들은 결혼 증서를 신청할 수 있게 됐고 그해 여름 나는 내 생애 최초로 동성결혼식에 참석했다. LGBT들이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지역인 텍사스에서 자란 나는 동성결혼식에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동성결혼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동성결혼 지지자들이 LGBT 권리의 승리를 축하하고 있을 때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미 캘리포니아 대법원 판결을 뒤집고 동성 커플이 결혼할 권리를 빼앗기 위한 발의안을 냈다. 이 시기에 승리에 도취된 많은 동성결혼 지지자들은 동성결혼 합법화를 유지하기 위한 운동을 건설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6월 샌프란시스코 LGBT 자긍심 행진에서 나는 LGBT 정치 단체에 자원해 자원활동가들을 모집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성결혼 반대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말을 건 사람들 대부분이 걱정하지 않았는데, 정말로 실망스러웠던 것은 이 사람들이 결혼권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그때는 캘리포니아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고 불과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LGBT 자긍심 행진이 열리는 장소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원활동에 관심이 없었지만 캘리포니아 대법원 판결 때문에 흥분과 기쁨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동성결혼 합법화 두 달 뒤, 2009년 샌프란시스코 자긍심 행진
그해 여름, 나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레즈비언게이 종교 신앙활동 연구소(Center for Lesbian and Gay Studies in Religion and Ministry)'에서 활동하면서 캘리포니아의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종교의 반응에 대해 조사했고 LGBT들을 받아들이는 교회들을 알 수 있었다. LGBT 활동가로서 나는 신앙을 가진 LGBT들로부터 배웠을 뿐 아니라 신앙이 LGBT 활동을 하는 이유인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다. 나는 종교가 사람들에게 동성결혼에 반대해 싸우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또한 종교가 동성결혼을 지지하면서 싸우도록 고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종교는 순전히 좋은 것 또는 순전히 나쁜 것이라고 어느 하나로 못 박을 수 없다. '레즈비언게이 종교 신앙활동 연구소'에서 활동한 경험 덕분에 나는 주민발의안8 통과에서 종교가 한 복잡한 역할을 이해할 수 있었고, 주민발의안8이 통과된 이유가 종교 때문이라고 종교를 싸잡아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학기가 시작했을 때 일단의 학생 활동가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동성결혼권을 방어하기 위한 운동을 계획했다. 이때는 발의안에 이름이 없었지만 11월 주민투표에 발의안이 올라갈 것이라고 발표된 상황이었다. 우리는 학생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주민발의안 통과 저지 운동을 시작한 주요 LGBT 권리 단체들에 연락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주요 단체들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전화작업 모임을 조직해서 캘리포니아 주 선거인으로 등록한 사람들에게 전화해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한 발의안에 반대 투표할 것을 설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발의안에는 주민발의안8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우리들은 활동에 박차를 가해서 매주 두세 번씩 전화작업 모임을 가졌다. 내 중요한 임무는 전화작업 모임에 온 30~50명의 사람들을 위해 음식 배달을 주문하고 확인하는 일이었다. 나는 운동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서 판매한 티셔츠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곧 학교는 온통 보라색 물결이 됐고 가는 곳마다 그 보라색 티셔츠를 볼 수 있었다.
등록유권자에게 전화 홍보를 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
전화작업은 아주 힘든 경험이었다. 대체로 사람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전화를 받으면 LGBT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례하고 혐오 섞인 말을 했다. 지지하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을 때도 자원활동에는 관심이 없었다.
선거 전 주말에 우리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가장 큰 전화작업 모임을 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270명이 넘는 학생들이 1만 5천 명에게 전화를 걸어서 투표에 참여해 주민발의안8에 반대표를 던질 것을 설득했다. LGBT 권리 운동의 일부라는 것은 아주 힘들었지만 즐거운, 정말로 놀라운 느낌이었다. 나는 우리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 아주 기뻤지만 선거 예측 조사 결과가 거의 50대 50으로 갈린 상태였기 때문에 너무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유권자들에게 주민발의안8 반대투표를 설득하기 위해 전화작업을 하는 학생들
선거 당일, 학생들을 모아서 우리는 주민발의안8에 대해 마지막으로 알리고 반대투표를 설득하기 위해서 베이에어리어 전역의 투표소로 갔다. 새벽 5시부터 저녁까지 우리는 전단을 나눠주면서 팻말을 들고 최선을 다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에게 소리를 쳤고, 어떤 사람들은 미소를 보내며 지지를 표시했다. 긴 하루가 가고 우리는 LGBT 센터에 모여 선거 결과를 지켜봤다. 그 날 초저녁에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 당선자로 발표됐다. 미국 역사에서 정말 놀랍고 대단한 순간이었다. 여전히 노예제의 유산과 깊이 뿌리내린 인종차별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나라에서 역사상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통령이 당선한 것이었다. 감정이 고무돼 우리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 강렬한 순간 눈물을 흘렸다. 오바마가 승리하고 몇 시간 뒤 주민발의안 투표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역별 선거 결과가 발표되면서 주민발의안8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10시쯤 되자 거의 통과가 거의 확실했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 소식이 공식화될 때까지 밤새 자리를 지켰다.
새벽 1시 경 LGBT 센터, 주민발의안8 통과가 확실해지고 사람들 대부분이 집에 갔을 때
우리가 주민발의안8 통과를 막기 위해 쏟아 부은 그 모든 시간과 에너지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너무나 믿기 힘들었다. 52퍼센트 대 48퍼센트라는 결과는 우리가 더 많이 활동했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이 오바마 선거운동을 지지하고 자원활동을 한 우리들에게 그 순간은 아주 씁쓸했다. 오바마의 승리는 너무나 멋진 순간이었다. 그와 동시에 유권자들이 동성 커플의 결혼권을 박탈하기로 투표한 것도 처음이었다.
선거 결과가 공식 발표된 뒤 우리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이유는 캘리포니아가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동성결혼을 금지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LGBT 권리를 위한 투쟁에 뛰어들게 됐다. 그날 아침 우리는 학교 한가운데서 주민발의안8 통과에 항의하는 집회를 벌였다. 우리는 가장 붐비는 교차로를 점거했다. 50명으로 시작한 시위가 순식간에 200명으로 불어나 퀴어 권리를 지지했다. 대학 시위 말고도 우리는 수천 명이 참가한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진 시위에 나갔다. 집회가 샌프란시스코 자긍심 행진이 열린 곳과 같은 장소에서 열렸기 때문에 불과 몇 달 전 LGBT 권리 운동에 완전히 무관심하던 사람들을 생각하게 됐다. 실망스럽고 화가 나는 일이었다. 그런 에너지가 투표 전에 존재했다면 결과가 다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발의안8 통과에 항의하는 학생들
주민발의안8 통과에 대한 반응에서 실망을 자아내는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투표자들의 민족에 대한 통계가 나오자 LGBT 활동가들은 주민발의안 8 통과가 유색인들 탓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유색인들이 오바마에게 투표했고 주민발의안8에도 찬성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틀린 말을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이야기가 LGBT 커뮤니티의 유색인 구성원들을 소외시킨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민족이 아니라 종교가 주민발의안8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였다. 게다가 주민발의안8 반대 운동은 LGBT 권리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지지금을 받았지만 그 돈을 찬성 운동 측만큼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주민발의안8 찬성 운동은 소수인종 커뮤니티에 광범위하게 접근했다. 특히 각종 언어를 쓴 타겟 광고를 통해서 그렇게 했다. 주민발의안8 반대 광고는 영어로만 이뤄진 반면, 찬성 광고는 스페인어, 중국어, 한국어 등의 언어로 방송됐다. 반대 운동의 무능과 인종주의에 대한 더 많은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선거 패배는 훨씬 더 슬픈 일이 됐다. 동성 결혼이 불법이 됐을 뿐 아니라 LGBT 활동가들은 LGBT 커뮤니티 구성원들을 따돌리는 식으로 선거에 대한 실망을 표시한 것이다.
중국어로 된 주민발의안8 찬성 광고
주민발의안8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주민발의안8은 LGBT 권리에 신경 쓰지 않던 사람들을 갑자기 관심을 갖게 만든 한편, 미국 LGBT 커뮤니티의 인종주의와 종교적 편협함이라는 문제를 드러내 보여줬다. 주민발의안의 적법성을 문제 삼기 위해 소송을 낸 법률 단체들은 패배했지만 다행이 법원은 동성결혼이 합법이던 시기에 한 동성결혼은 계속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지금 LGBT 단체들은 동성결혼을 2010년이나 2012년에 다시 주민투표에 붙일지 말지를 결정하고 있는데 언제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지든 활동가들은 모든 커뮤니티에 다가가 지지를 이끌어내고 LGBT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을 소외시키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활동가로서 우리가 주민발의안8 반대 운동의 과오로부터 배워서 캘리포니아에서 동성결혼권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진 주민발의안8 통과 항의 시위 모습
찰리 심스(Charlie Sy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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