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예전에 학창시절에 학교 가는 길이 어땠었는지를 떠올렸다. 구불구불. 졸음 때문에 그렇게 보이던 길, 손에 쥐어진 버스표, 그리고 아직 섬유유연제 냄새가 남아있는 교복에 헉헉거리면서 투덜대게 무거웠던 가방, 다른 한손에 쥐어진 쳐다보지 않던 영어 단어장까지. 그렇게 학교 가는 길은 나에게 좋은 추억만의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친구를 보러가는 날은, 또 재밌는 수업이 있던 날의 등굣길은 가끔 쑤욱. 힘이 나게 해주었다.
무지개 학교에 가는 길도 그랬다. 학창시절이 지나간 나이지만, 재미있는 수업과 친구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즐거운 발걸음을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처음 나는 무지개 학교에 등교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
우리는 학교에서 참 많은 과목을 배운다. 십여 과목들이 가지런히 배열된 시간표에 따라 학교는 수업을 진행하고, 시험을 본다. 그 과목들은 국가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듯이 학교는 사회로 나아가기 전에 사회화를 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적소수자를 배타시하는 우리 사회는 교육기관에서 성적소수자에 대한 교육은커녕 배려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아웃팅의 위험은 크고, 게이나 동성애를 혐오와 놀림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며, 공공연하게 에이즈가 동성애가 주된 원인이라고 가르친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숭고하며, 그들이 아이를 갖고 가정을 이루는 과정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가르치는 우리 학교에서 성적소수자 청소년들은 서있을 공간이 없다.
무지개 학교는 이런 학교를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학교다. 학교에서 말 못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준다. 학교에서 맘껏 부리를 수 없는 끼도 부릴 수 있다. 학교에선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사랑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도 맘껏 할 수 있다. 통제자도 없고, 규칙도 스스로 만들어간다. 학생이 주인인 학교는 정말 이런 학교가 아닐까.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학교에 등교한 학생들은 더욱 고조된 분위기였다.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빙고게임을 통해서 서로에 대해 인사하고, 성소수자의 삶을 이야기해보는 시간도 가졌으며, 여러 가지 상황극을 통해서 우리의 현실을 느끼기도 하고, 우리 사회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공유했다.
조별로 나뉘어 상황극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다.
더 많은 색들이 만들어가는 학교
프로그램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모두 끝내는 길을 아쉬워했다. 나도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안심이 되었다. 사실 내 학창 시절 때는 나와 같은 성소수자가 주위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나만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청소년일 때 이런 학교가 있었다면, 나도 내 자신을 더 긍정하면서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이런 학교 프로그램을 알고 오는 참가자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오늘의 만남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안심이 됐다.
앞으로 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고,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하는 무지개학교는 아마 지금보다 더 풍성하고 더 재밌는 학교가 될 것이다. 많은 참가자들이 ‘그들이 다니고 싶은 학교’,‘참여하고 싶은 수업’을 만들어 가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무지개학교가 더욱 많은 학생들을 등교하게 하는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색이 그들만의 색을 반짝거리면서 무지개를 만들기를 바란다.
욱 _ 동성애자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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