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헌(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

 

 

 

모임 소식을 들은 건 또 대판 윽박지른 며칠 후의 일이었다. 살다 보면 이따금 '이건 아무래도 운명의 한줄기야.' 싶을 정도로 믿음을 강제하는 사건들이 있다. 일 년에 한 번 계획한다는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지방 모임이 때마침 나의 주거지라는데 그렇게 믿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로서 효라는 개념이 있다.

그 개념의 정합성을 면밀히 따지지 않아도 나는 성소수자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손쉽게 불효자로 호명되곤 했다. 이에 반발하여 언중이 승인하든 말든 자식에 대한 부모의 도리로서의 개념을 조어하고, 그 내용을 주장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명명을 '혀'로 할까, '휴'로 할까, 그래서 '불혀모' 내지는 '불휴모'라고 호명해야 하나. 뭐 물론 그것이 중요하다기보다 자식이 선택할 수 없는 어려운 길 위에 놓여 있을 때 자식을 이해하고 도우려 하는 배움의 의지를 보여 주지 않는 상황을 개탄하고 싶었다.

 

성소수자의 형편이 그리 좋았던 때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지금 이 나라는 퀴어문화축제가 무려 서울 시청 광장에서 열리고, 수십 명의 해외 대사가 무대 위에 올라와 축사하는 시대를 굴러가고 있다. 소위 선진국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동성결혼이라는 이름으로든 시민결합이라는 이름으로든 성을 불문한 모든 커플을 인정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조금만 찾아보아도 알 수 있는 시대다. 이렇게 부모가 지적으로 게으를 수 있었을까 싶어서 분노한 때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온전히 나의 정념과 입장이고, 그 호소만으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기에 다른 소통 경로와 기회가 필요하다고 막연히 느끼고는 있었다. 또한, 나 혼자 떠드는 것은 무릇 권위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냥 같이 갈 데가 있어."라는 말로 참여하게 된 부모모임이다.

 

 

처음 모임 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토록 얼은 엄마 모습은 정말 생경한 것이었다. 그와 달리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활동가분들과 인사하는 게 너무 반가웠다. 지금의 이 온도 차가 모임 말미에 가서 어찌 변할지 기대에 가까운 감정이 들었던 듯하다.

 

다들 둥글게 마주 보는 형식으로 착석하여 자기소개를 마치고 느닷없이 진행자분이 "먼저 말씀하시고자 하는 분 없으니 피아헌님부터"라고 지목하시기에 어색하게 운을 뗐던 거 같다. 어느 정도 예상한 대로 공통적인 대화 주제는 커밍아웃-아웃팅 내러티브였다. 재미있다고 표현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부모님들의 반응은 각가지였고, 천양지차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전교에서 몇 등이었고~" "모범생이었고~" "여자한테 인기가 많았고~" 등의 성소수자 자녀를 옥의 티로 묘사하는 언술들이 있었는데, 당신께서 받은 충격의 대비를 강조하려는 수사였겠으나 성소수자를 떠나 자식이 부모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선 참 여러 교차된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야 하는구나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몇의 부모님들께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는 고백을 하시기도 했는데, 자식을 자기 자아의 확장으로 여기느냐 아니냐 혹은 덜하냐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자녀가 커밍아웃할 적에 양자의 태도와 톤에 관한 지적이 있었고, 그것이 위계에 기반해야 한다기보다 전략적인 이해에 기반해야 된다는 필요가 언급되었다.

 

나는 성소수자 당사자나 부모나 근원적인 불안이 있고, 그래서 더욱 자신(자식)이 성소수자임을 받아들이기가 곤혹스러움을 이야기했다. 환대의 경험과 그것을 준거로 한 환대의 전망이 인간의 삶에서 필수적이라고 지적하면서 그 경험을 부모가 증여하면 최선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책이나 이론을 공부하고, 커뮤니티에서 활동가들을 만나고, 이미 퀴어프랜들리한 제도를 갖춘 사회를 참조하면서 가용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오늘 이 모임이 참 유익하다고 너스레를 놓았다.

 

모임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엄마의 음성과 표정은 한결 이완되었다. 극도로 민망한 '아들 자랑'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부모님들께서 식음을 끊고 대화의 실마리가 도무지 아득한 많은 사례보다 그래도 대들고 싸우는 게 건강하다고 여러 번 북돋아 주신 덕인 듯도 했다. 나는 그저 성소수자라는 주제를 두고 그래도 이처럼 훈훈한 분위기를 엄마와 체험할 수 있었다는 거에 더 바랄 것은 없었다.

 

아직까지도 엄마는 내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못 버리겠다고 한다. 뭐 '돌아갈 원점'이 없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이젠 성을 두고 이야기할 적에 경직된 분위기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성에 대해 해설할 자신과 준비가 있다. 어찌 되었든 이 일련의 과정은 행운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갈 데가 있다는 말에 대충 눈치를 채고도 많은 말 없이 같이 가 준 엄마에게 고맙고, 운명이라 믿고 싶은 기회를 만들어 주신 활동가 분들께도 대단히 감사하다.

 

 

 

예전부터 행운은 독점하는 게 아니라 잘 정리하고 나누어 지복으로 치환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있다.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고유한 역할과 역량이 무언지 숙고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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