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가슴을 찾아 떠난 엠버가 화제다. 유명걸그룹에 속해 있는 엠버가  소위 ‘여성’답게 꾸미지 않은 채 활동을 쭉 해 왔고, ‘일부’ 대중들이 한결같이 그의 특성을 걸고 넘어졌다. 그들의 딴지는 다음과 같다.


왜 머리가 길지 않느냐.

왜 치마를 입지 않느냐.

왜 문신을 하고 다니냐.

왜 굴곡진 가슴이 없느냐.


이 지속적인 딴지는 엠버의 유튜브채널 WTP(What The Pineapple)까지 이어졌고, 혐오댓글로 발화됐다. 엠버는 위트있게 영상으로 받아쳤다.


“I think I should start looking for that I think I’ve been that putting that off for too long.

So.. umn.. Let’s go then! (내가 가슴을 찾는 일을 너무 오래 미뤄 왔었지. 그래, 이제 한 번 찾아볼까 해.)”


엠버는 그의 친구 브라이스와 함께 시내 곳곳을 누비며 가슴을 찾아 다닌다. 중간중간 다른 혐오댓글에 대한 깨알 코멘트도 아끼지 않는다. ‘문신한 여자 가까이에 있지 마라’는 댓글에 대한 답변으로, 브라이스를 멀리하며 뛰어다니는 액션을 열연하기도 하고, ‘우리집 알바생 같아서 보기 싫다’는 댓글에 ‘보기 싫으면 눈 감으세요’라고 과감히 말한다. 영상의 후반부쯤 엠버는 아주 큰 (빨간 고무 풍선)가슴을 찾는다. 이로써 엠버는 그들의 바람대로 걸그룹에 어울리는 여성이 된걸까? 그가 큰 가슴으로 여성젠더를 획득했다면 (혹은 획득한 것이 맞다고 가정한다면), 왜 가슴 트랜지션을 진행한 MTF 트랜스젠더를 여성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는걸까.


이런 모순적인 상황을 다소간 정리한 주디스버틀러의 책 『젠더트러블』을 펼쳐보자. 그는 ‘젠더수행성’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젠더는 박제된 불변의 명사가 아니라, 애매모호하고 유동적인 동사에 가깝다는 것이다. 어떤 몸을 여성 혹은 남성이라고 지칭하는 데에는 그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닌 신체가 근거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규범화 된 여성성 혹은 남성성을 신체가 얼마나 잘 구현했는지가 관건이라는 이야기다. 버틀러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젠더는 “본질의 외관, 자연스러운 듯한 존재를 생산하기 위해 오랫동안 응결되어 온 매우 단단한 규제의 틀 안에서 반복된 몸의 양식이자 반복된 일단의 행위” 라고. 치마를 입고, 머리를 기르고 같은 행위를 하도록 정해진 어떤 몸일 뿐이지, 그 몸이 타고날 때부터 어떤 젠더이다 라고 명명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시 엠버 이야기로 돌아가 아까 했던 질문에 대답해 볼까 한다. 엠버는 이제 가슴을 찾았으니, ‘여성’이 된 걸까? 버틀러의 개념까지 인용하지 않아도, 대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두드러진 가슴을 가졌다고 여성인 것은 아니다.  브래지어를 착용한 덕에, 눈에 띄는 가슴을 가진 사람‘만’이 여성이라고 명명되는 건, 성별이분법에 따른 편견일 뿐이다. SNS에서 어떤 MTF트랜스젠더가 여성으로 패싱된 뒤 트랜스젠더임이 밝혀지자, 여성이 아니라고 부정당하는 것, 이 역시도 편견이다. 여성이란 젠더에 실체가 없는데, 여성의 몸에 실체가 있을까. 있지도 않은 걸 찾으려고 하니, 억지스러운 편견과 아집만 늘어갈 뿐이다.


엠버가 가슴이 어딨냐는 무례한 질문을 받았듯, 머리가 짧은 나 역시도 공중화장실에 가면 종종 무례한 질문을 받는다. “여자 맞지요?”라는 정도의 질문은 부드러운 편이고, 욕설을 섞어가며 “아, X발, 깜짝 놀랐어.”라는 말을 들으라는 듯이 읊조리고 간다. 쪼그라든 나의 마음과 짜증이 뒤섞여 욕한 사람 뒤통수를 노려봤지만,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나도 엠버를 따라 가슴을 찾아 따라 나설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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