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풍이 도는 거실 한 가운데에 박스 세 개가 놓여있다. 모서리마다 고양이 털이 나부낀다. 세 개 중 하나는 아직 입을 벌린 채로 내용물인 운동화들과 모자들을 보이고 있다. 3년 전, 기념일을 맞아 똑같이 맞췄던 운동화 중 하나를 남은 공간에 가지런히 넣는다. 이제 신발장에 남은 그녀의 신발은 단 한 켤레도 없다.

여러 가지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지만 짐을 싸달라는 요구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가 누워있는 병실 앞에서 1층 흡연구역까지 끌려가듯 내려가는 동안, 그녀의 아버지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뒷모습만 봐도 나를 의식한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로 경직된 걸음걸이에 계단을 밟는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는 흡연구역에 서서 담배를 두어번 깊이 들이마신 뒤에야 나를 바로 마주봤다

“와봤자 도움 될 것 없으니까 자꾸 올 필요 없다. 정 도와주고 싶으면 애 짐 싸는 거나 부탁하자. 깨어나도 고향집 가서 요양해야지, 서울에서는 안 산다.”

찰과 의사가 칭했던 가벼운 사고와 가벼운 수술 끝에 그녀가 깨어나지 못하는 상태로 내 앞에 놓였을 때부터 하루도 병원에 오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녀에게 의식이 있었다면 아마도 반기지 않았을 그녀의 부모님에게 연락을 드린 이후로는 잠시 얼굴만 보고 돌아서기도 했지만, 매일 병실 앞을 지켰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녀가 떠나고 내가 그 사실을 가장 늦게 알게 될 것 같아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에도 조바심이 났다.

반려자로 10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그녀와 나는 자주 이런 상황을 상상했다. 맛있는 저녁을 해먹고 설거지를 마친 뒤에, 푹신한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서 장난을 치다가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둘 중에 누군가가 먼저 떠나게 되면 남은 한 명은 무엇이 될까. 두려움은 거듭되는 이야기의 마침표로 남곤 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 속의 두려움보다 훨씬 무거운 무력감이다. 나는 아무것도, 누구도 아닌 채로 입이 막히고 손발이 묶인 것처럼 무력하다.

하나씩 그녀의 물건들을 박스에 넣을 때마다 그 물건과 그녀가 담긴 기억들이 밀려들었다. 침실에서, 부엌에서, 욕실에서, 고양이들이 사는 작은 방에서 수 십, 수 백명의 그녀가 뛰쳐나오다가 바위에 부딪힌 파도처럼 부서졌다. 나는 부서지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박스에 머리를 박고 울었다. 울음은 두 박스를 꽉 채우고 나서야 음소거 될 수 있었다.

나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커밍아웃했던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빠른 일처리를 막아서지 않았다. 직접 커밍아웃하지 않았을 뿐, 이미 오래전부터 나와의 관계를 의심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깨어나지 못하면 짐 뿐 아니라 그녀와 나의 집도 반으로 갈라 가져가겠노라고 통보했다. 한 몸처럼 모든 것을 함께 했던 우리가, 너무 쉽게 개인과 개인으로 갈라지는 순간이었다.

세 번째 박스에 테이프를 붙이기 시작하자 작은 방 문틈으로 고양이들이 얼굴을 내밀고 나를 부른다.

“너희들도 모두 팔아서 딱 절반 금액을 준다고 할까?”

고양이들은 방문을 열어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거실로 나와 테이핑한 박스들 위에 오른다. 한 마리씩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 마리의 고양이가 각각 박스 위에서 우는 소리를 뒤고 하고 침실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면 아버지가 병실을 떠나곤 했다. 내가 그녀를 편하게 마주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침실 한 켠에 둔 가방을 챙겼다. 침실 벽에 붙어있는 열 댓장의 사진과 그림들이 나를 바라본다. 웃고 있는 그녀와 나, 그녀의 뒷모습과 나의 옆모습,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우리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혀 그림으로 그려준 친구의 선물.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사진은 숲길을 걷는 우리를 친구가 멀리서 찍어준 것이었다. 연인이 된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았을 시기에, 이십대 중반의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숲길을 걷다가 파안하게 웃었다. 친구가 카메라를 들어 어색하게 걷는 내 걸음걸이에 그녀가 크게 웃었고 그런 그녀를 보며 나도 웃었다.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높은 나무들 사이로 여름 햇살이 쏟아졌다. 사진은 그 순간의 행복을 새기고 있다.

사진을 벽에서 떼어내 가방에 넣고 침실을 나선다. 고양이들을 다시 방에 들여보내고 그녀의 신발이 단 한 켤레도 남아있지 않은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다. 빼꼼하게 열린 신발장 사이로 텅 빈 공간들이 어둠을 머금고 있다. 애써 신발장에 시선을 주지 않고 집을 나선다. 문이 닫히고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를 듣는다. 그녀와 내 생일을 쭉 이어놓은 도어락 비밀번호를 떠올린다. 집을 나설 때마다 번호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계단을 내려온다. 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고, 꼭 한 달 뒤인 그녀의 생일도 다가오고 있다.

 

심시간에 딱 맞춰 도착한 병실 안에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앉아있다. 병실문에 난 작은 창으로 보이는 그들은 그녀를 뒤로하고 텔레비전을 본다. 문을 열자 왁자지껄한 예능 프로그램 소리가 병실 안을 채우고 있다. 그녀는 예능 프로그램을 싫어했다.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걸그룹 애들한테 애교 시키고, 보이그룹 애들끼리 팔씨름 시키고, 민망하게 신인들한테 춤 시키고 그런 거 불편해. 약자를 희화화하는 프로그램들도 불편해. 누군가가 참아야만 하는 거, 그런 거 싫어.”

내가 들어서자 그녀의 아버지가 텔레비전 소리를 줄인다.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녀 앞에 선다.

“지나가던 길에 들렀어요.”

얼굴 근육을 밀어내는 기분으로 웃어 보이고 그녀를 바라본다. 창백한 얼굴과 가만히 놓인 손을 본다. 입 안으로 입술 안 쪽 살을 씹으며 숨을 참는다. 등 뒤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헛기침을 한다. 그녀의 손을 잡고, 볼을 쓰다듬고, 사진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오늘은 틀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내가 자리를 떠날 때까지 자리를 비우지 않을 것이다.

“우린 좀 일찍 점심 먹었는데, 너도 그만 가서 점심 챙겨야지.”

그녀의 어머니가 긴장한 목소리를 낸다. 돌아보니 아버지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나를 노려보고 있다. 어머니는 그 옆에 서서 난처한 표정으로 나에게 고갯짓을 한다. 병실에 들어선 지 5분. 나는 꽉 쥔 주먹 속에서 손톱으로 손바닥을 짓누르며 병실에서 나온다. 걸음마다 그녀가 발목을 붙드는 것 같은 저항감을 느낀다. 복도를 걸어 코너를 돌자마자 그녀의 어머니가 팔목을 잡는다.

“너 다녀가고 나면 쟤 아빠가 매번 날 볶아댄다.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할 테니까, 그냥 기다려주면 안되겠니? 아줌마가 힘들어서 그래. 응?”

선채로 빠르게 말을 쏟아낸 그녀의 어머니는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는 내 어깨를 두 번 두드린 후, 황급히 병실로 향했다. 멍하게 복도에 서 있다가 인적이 드물어 자주 찾았던 코너 끝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이 떠올랐다. 헛기침과 어깨 두드림으로 더 이상 창백한 얼굴조차 보지 못할 나의 내일들이 예고된 재앙처럼 놓였다. 가방 속 사진을 꺼낸다. 큰 창을 통과한 정오의 햇볕이 복도와 의자와 그 위의 내게 날카롭게 박힌다. 사진에 이마를 대고 몸을 웅크린다.

“제발, 제발...”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애원한다. 제발, 돌아와서 이 모든 악몽을 끝내주길. 부서지지 말고 달려 나온 그대로 나를 안고 아무것도 견디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길. 병실 문조차 보이지 않는 복도 끝에서, 나는 그녀를 기다린다.

 

 

※ 편집자 주: 이 글은 행성인 회원의 경향신문 퀴어 백일장 당선작 글입니다. 경향신문 퀴어 백일장과 동시 게재 되었습니다.

경향신문 퀴어 백일장 당선작 <악몽>:

 http://news.khan.co.kr/kh_storytelling/2017/queer/view_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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