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를 환대하는 공간

Posted at 2018.01.14 12:42// Posted in 회원 이야기/회원 에세이


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2017년이 지나고 2018년이다. 지난해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던 일은 심리 상담 치료가 종료된 것이다. 재작년부터 받은 심리상담은 내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였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상담 치료 중 들었던 말이 이번달의 키워드 ‘공간’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많은 성소수자가 꺼려하듯, 나 역시 치료자에게 내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말하지 못했었다. 치료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야 눈꼽만한 용기로 목소리를 냈다. 잔뜩 움츠러든 내 어깨가 민망할 정도로, 커밍아웃을 들은 치료자는 무덤덤 아니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 공간은 모두에게 평등합니다.”


꽤 당연한 듯한 이 말이 내게 울림을 준 까닭은 대다수의 공간에서 ‘평등’이 적용되지 않으며, 성소수자에게는 커밍아웃을 한 그 순간부터 크고 작은 불평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의 문장 “낙인을 지닌 개인이 정상인들로부터 존중의 의례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이처럼 적절하게 처신하는 한에서이다. 자신의 존재가 조건부로 수용되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정상인과 똑같은 권리를 누리려 드는 낙인자는 곧 제재에 부딪칠 것이다.” (P. 125 인용, 김현경 지음)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나였다. 내 안에는 헤테로 이성애자인척 훌륭하게 연기하지 못해(때때로 안 해) 끊임없이 배제되고 차별받고 제재된 경험이 흘러 넘쳤다. 하지만 위의 무미건조한 대답을 들은 후 삶의 태도가 조금은 바뀌었다. 변화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원동력은 그 말에 숨어 있던 무조건적 환대가 나의 마음에 전해졌고, 내가 잊고 있던 성원권을 되찾은 덕분이다. 그 날 상담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얼마나 울었는지. 긴 울음 끝에, 나는 비로소 한국 사회라는 공간에 희미하게 나마 ‘존재’하는 것 같았다.


상담이 종료되고 반년 뒤, 내 생애 최초의 공간이 생겼다. 내가 퀴어임을 밝혀도 어느 누구도 내게 환대를 거두지 않는 곳. 그 곳은 지역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 공간에서 차별을 받지 않았거나, 배제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모임에 참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강의에 섭외할 사람으로 레즈비언 인권운동가를 추천하자 ‘우리에게는 너무 이른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 이르다는 말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그럼 언제쯤이 이르지 않은 시기인지 되물었다. 찬물 끼얹은 듯한 정적 속에 그 날 모임은 정리됐다. 그 이후로도 이같은 순간은 반복됐다. 긴장과 갈등으로 엉킨 시간을 거쳐 그 실타래를 풀어 나가면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었다.  


나의 일상은 소소하게 변화했지만,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는 퀴어를 위한 공간이 협소하다. 성소수자가 교복을 입고 한 토크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이유로 음란하다는 소리를 듣는 걸 보면, 이 사회가 퀴어를 정의하는 방식은 무서울 정도로 단일하다. ‘음란하다’고 낙인찍고, 조용히 있길 원하는, 그것이 누군가가 원하는 퀴어의 존재 방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바람일뿐이다. 현실 속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시끄럽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모여 파도를 이루고, EBS 사옥에 누워 있는 이들에게 부디 ‘문란’하고 ‘음란’하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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